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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한기(農閑期) 농한기(農閑期) 윤제철 겨울 한철 농한기 나돌지 못했던 논밭 지금 우리는 또 다른 농한기를 맞고 추위가 오고 눈이 쌓여 밖에 못나갔던 불편도 아닌 허공을 떠도는 공포는 긴 시간을 접지 않고 사계절이 다가도록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발걸음들이 얼어붙어 집에 갇혀 녹을 줄 모르고 의지하고 살던 호흡들이 보이지 않게 허물어지고 불투명한 그들의 거동을 알 수 없는 가운데 만만한 아스트라제네카에게 구호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더보기
심다공증(心多孔症) 심다공증(心多孔症) 같이 앉아서 이야기하면서도 딴 생각으로 듣고 말하는 분명하지 못한 방향으로 휘둘러가는 정신 줄을 갖고 엉뚱한 곳에서 꺼낸 희미한 기억을 굳이 맞는다고 고집을 피우다 상대의 속을 뒤집어놓고 꼬리를 내리며 덜덜거리는 낡은 기계의 헛기침이 슬프다 겉으로 멀쩡한 듯해도 야물지 못한 정신을 지니고 사는 심다공증(心多孔症) 환자인 줄 모르니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면 성능이 나아지려는지 마음을 다독거려 다짐하지만 돌아서면 몸과 따로 놀며 말 안 듣는 말썽꾸러기가 된다 더보기
문(門) 문(門) 윤제철 어렵고 힘들었을지라도 보내는 한 해를 큰 문(門)을 열고 편히 가게 하여라 더 큰 희망을 맞이하고 갖고 있던 근심 걱정들이 갇혀서 머물지 않게 한해의 끝날과 첫날의 사이 닫혀있는 문(門) 하나 보내고 맞이하는 역할에 충실하여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난관 잘 열고 닫아 다시 돌아오지 않도록 더보기
길 윤 제 철 모르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지만 아는 사람을 따라가면 없던 것도 생긴다 세상에 많은 길이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닌 것처럼 찾아보고 생각하고 방향이나 분야, 그리고 방법을 알아내려 걷고 또 걸어 만들어 놓으면 낯설고 새로워 놀란다 더보기
홍기연 시집「다랭이 마을」서평 홍기연 제 2시집「다랭이 마을」에 부처 - 시인의 경험(經驗) 혹은 풍자(諷刺) 윤 제 철(시인, 문학평론가) 1.들어가는 글 코로나19가 잠입한 이래 온 나라는 사회적 거리두기나 자가격리라는 용어에 휘말려 보이지 않게 허물어져 가는 문명의 위기를 맛보아야 했다. 벌써 8개월을 넘어서고 있지만 속수무책으로 안절부절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홍기연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하면서 모아둔 원고를 보내왔다. 무엇 보다 반가운 일이다. 흔히 만날 수 없는 소통의 기회라 여겨졌다. 언제 보아도 생기 있고 천진난만 한 소년처럼 명랑하고 밝은 향기가 원고 뭉치에서 물씬 풍겼다.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에서 매달 만나 호흡을 같이 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마치 홍 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듯 그 음성이 귀에 .. 더보기
화친(和親) 화친(和親) 윤제철 한 해의 문을 열고 거치적거리는 존재를 따돌리느라 세상이 봄인지 여름인지 구분하지 않았다 내안의 나를 믿고 보내야했던 희망의 터널을 파헤쳐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주고 타협하는 또 한해를 만나야한다 보이지도 않는 미래가 두렵지만은 않은 것처럼 퇴로를 열어주고 밀어내는 처방을 기다리고 있다 높이 싼 벽을 허물어내고 쫓아내기보다 손을 잡아주면 우리 앞에 또 다른 얼굴로 다가와 담판의 장을 준비한다 더보기
교정(校正) 교정(校正) 윤 제 철 워드 작업한 출력물 원고를 읽는다 책을 읽듯 훑는 그런 눈으론 안 된다 예고 없이 어느 곳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오탈자와 맞춤법 어긴 구절이 눈을 속이고 달아날지 모르니까 세상이라는 사막을 걸어가면서 간절히 바라는 일들이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애를 먹일 때 신기루가 현혹시키는 것처럼 없는 글자도 있는 것 마냥 눈을 홀린다 보고 또 봐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남이 보면 톡톡 튀어나오는 사태가 우둔의 불랙홀에 빠지게 한다 왜 나는 볼 수 없는 걸까, 그래서 남들이 2교 3교에서 이 잡듯이 뒤지나보다 끝내 잡아내지 못하고 미궁에 빠지면 엉뚱한 의미를 지니고 말도 안 되는 불구로 남아 바로잡을 수 없다 오래 두고 독자들에게 부실한 저자라는 누명을 벗지 못한 채 오금을 못 쓴다 더보기
가을 듀오 콘서트 - 소프라노 고선영과 소프라노 고유영의 얼굴과 이름 ㄱ 가을 듀오 콘서트 - 소프라노 고선영과 소프라노 고유영의 얼굴과 이름 윤 제 철 감춰놓고 남모르게 갈고닦은 노래 하나. 가려진 커튼을 열고 무대 위에 얼굴을 올린다 고선영과 고유영 듀오 콘서트는 갈라지지 않게 소리를 모우거나 가진 것 모두 꺼내 터트리는 서로 다른 색깔의 소원을 피아노 건반이 추는 춤에 따라 객석으로 날려 보내는 연기다 온갖 노력을 다 바친 지성으로 세상에 걸어놓은 이름 코로나19 동란의 그늘을 걷어내고 탄탄한 반석 위에 빛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