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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져가는 존재에 대하여 스러져가는 존재에 대하여 - 코로나동란기 윤제철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만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찮은 바이러스가 우리의 문화를 바꿔가고 있다 그들의 진로를 막기 위한 몸부림을 지켜보노라니 갑갑하고 우울하다 못해 어처구니없이 무력한 존재였음을 반성하고 또 스러져가는 나를 부축하느라 정신이 없다 먹고 마시는 동안 열리는 마스크라는 방패가 부질없이 무너지는 순간마다 함몰되는 나약한 방어진 신무기는 우리 애를 태우고 불리한 전세는 안개속이다 더보기
어느 일요일 아침 서울대공원 어느 일요일 아침 서울대공원 일요일 아침에는 가까운 곳을 차를 타고 다녀오는 걸 공식화했다. 아들아이가 운전면허를 따고도 차를 타지 않다가 필요에 의해 연습을 하자고 나선 것이 벌써 몇 달이 된다. 처음에 서울대공원에 차를 몰고 가 빈 공터에서 주차연습을 하다가 백운호수, 남한산, 북악산 팔각정, 장흥유원지까지 다녀왔다. 근래에는 서울대공원이나 백운호수를 반복하고 있다. 오늘은 서울대공원이다. 아침공기가 차지면서 김밥을 사가는 걸 포기하고 아침식사를 하고 아침 9시쯤 출발하였다. 미술관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서 서울랜드 앞에서 호숫가를 가로 지르는 둑길로 걸었다. 날씨가 맑아 호수에 비치는 서울랜드 쪽 단풍든 산과 건물들이 투영되어 거꾸로 물에 비쳤다. 오리들이 유유히 헤엄치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 더보기
떨어져 있다는 것 떨어져 있다는 것 윤 제 철 같이 지내온 오랜 시간 이직(移職)으로 떨어진다면 병이 난 몸으로 보내는 것 보다 이 몸에 남은 짐이 이토록 무겁지는 않았을 걸 무리하는 줄 알면서도 꿈을 쫓아가는 몸짓 말리지 못하고 함께 지른 불장난이었단 말인가 떨어져가는 맥박을 추슬러 달라 울부짖으며 뜯어내는 가슴 이다지도 아픈 걸까 바람 부는 외딴 벌판으로 혼자 보내고 멀리서 바라다보는 작아져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냉정한 눈에 밟힌다 몸에 든 멍 자국 아침 세수하듯 말끔히 씻어내고 본래 얼굴로 돌아오라 용감한 벗이여 다감한 아우여 더보기
이상구 시집「서리꽃」서평 이상구 시집「서리꽃」서평 시인의 사랑과 자아성찰(自我省察) 윤 제 철(시인, 문학평론가) 1.들어가는 글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남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하는 걸 알면서도 양심을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예민한 감각과 풍부한 상상력을 갖추고 티 없이 맑은 영혼을 지닌 시인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었다. 자주 만나다가 그렇지 못했던 코로나19 동란을 무릅쓰고 한 끼의 식사를 주문 배달하여 나눈 자리에서 그 와중에 심경을 토로한 시를 묶어 시집을 내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원고가 담긴 봉투를 주셨다. 같은 또래의 나이에 생업을 퇴임하고 쉬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즐.. 더보기
이점진 시집「그대를 향한 나의 그리움은」서평 이점진 시집「그대를 향한 나의 그리움은」서평 시인의 그리움, 사랑, 이별 윤 제 철(시인, 문학평론가) 1.들어가는 글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입장에서 현실을 생각하고 자신의 존재로 인하여 이 세상의 존재여부가 성립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시인들은 다른 경향을 보인다. 사물과 사건을 대상으로 보고 느끼는 감각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사고의 범주를 확장하려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특히 남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이해를 시켜 공감을 이끌어 내려고한다. 시를 읽고 감동을 주려면 먼저 공감을 얻어야 하는 것과 같아서 화자는 누구보다 많은 생각을 하며 적합한 어휘를 선택했고, 시를 쓰기 위한 풍부한 어휘와 탁월한 시어의 선택을 생활화하여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 익숙해야 했다. 코로나19로 침체된 시기에 전혀 구애받지 않.. 더보기
갈라지는 생각들 갈라지는 생각들 하루를 열고나서 설레는 희망의 길이 자꾸만 조급해진다 하나만 생각하고 앞을 똑바로 보아야 할 텐데 초점 흐린 눈으로 서너 가지를 한꺼번에 몰고 가는 버릇이 생겼다 갈라지는 생각들이 뭐가 그리 바빠 설까 붙였다가 떼었다가 기억의 접착력도 시원찮은데 본래 것을 잃어버리고 정신 나간 짓을 안한다고 이를 깨물다가 이젠 당연시 한다 더보기
컵 안에 갈증(渴症) 컵 안에 갈증(渴症) 아직 멀쩡한 컵 안에 볼펜이며 만년필 그리고 사인펜까지 숨을 헐떡이고 있다 가늘고 기다란 파이프나 녹 슬은 촉에 말라가는 수분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목이 말라 탄다고 나를 바라보며 손짓한다 오래도록 기다렸지만 가까이 지닌 재롱만 눈에 띄어 보이지 않는 그늘이 되고 있어도 없는 듯 세월을 죽이고 있다 더보기
노각 노각 윤 제 철 제 때에 따지 않고 늙혀 크고 굵어진 몸 오래 놓아두면 쉽게 상할까봐 껍질을 벗겨내 해부하고 씨를 제거해서 섬유질로 제구실을 하는 노각 둥글게 굽은 살을 생선회를 치듯 가늘게 고른 크기로 쓸고 소금에 절여 쫀득한 식감을 위해 버무려져 살아서 보다 죽은 뒤에 세워지는 공 맛을 보며 위대한 희생의 가치를 무의식 속에 당연함으로 삼키면서 하나의 생애가 남기는 이름을 찾았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