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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해설

이점진 시집「그대를 향한 나의 그리움은」서평

이점진 시집그대를 향한 나의 그리움은서평

 

시인의 그리움, 사랑, 이별

                                                                                                                      윤 제 철(시인, 문학평론가)

1.들어가는 글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입장에서 현실을 생각하고 자신의 존재로 인하여 이 세상의 존재여부가 성립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시인들은 다른 경향을 보인다. 사물과 사건을 대상으로 보고 느끼는 감각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사고의 범주를 확장하려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특히 남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이해를 시켜 공감을 이끌어 내려고한다. 시를 읽고 감동을 주려면 먼저 공감을 얻어야 하는 것과 같아서 화자는 누구보다 많은 생각을 하며 적합한 어휘를 선택했고, 시를 쓰기 위한 풍부한 어휘와 탁월한 시어의 선택을 생활화하여 이미지를 만드는 일에 익숙해야 했다.

  코로나19로 침체된 시기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투철한 사명감을 지닌 시인으로 삶의 이상향을 꿈꿔왔지만 만나지 못한 그리움을 애절하게 묘사한 시를 가득 담았다. 오늘도 내일도 꺾이지 않는 희망을 줄기차게 뻗어나가 만나고 말리라는 의지를 키우고 있다.

  이점진 시인의 시 원고를 받아 먼저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진실로 영광스럽게 생각하면서 이 시인의 시집그대를 향한 나의 그리움은발간을 축하드리며 몇 편의 시를 골라 시세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2.시인의 그리움, 사랑, 이별

 

그리움

 

 그리움은 어떤 대상을 좋아하거나 곁에 두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애타는 마음이다. 누구든 희망이 있고 그 것이 이루어지거나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맛에 사는 의욕을 가진다.너이고 싶어에서 상상력을 동원하고 추억을 띄우면서 자위하는 전략을 펼치거나 그 목소리에서 하나의 한국화를 그려내어 시각화 속에 들려오는 목소리로 청각화를 시도하기도 한다.개나리에서 봄바람은 팔을 뻗은 듯 내민 가지에 봄옷을 벗어서 걸어놓았다는 묘사가 눈에 뜨인다. 그리움은 우리 삶의 목표를 달성하는 동력인 까닭이다.

 

강가에 서 있으면

손짓하는 빛 고운 노을

 

끝은 끝이 아니고

이별은 결코 이별이 아닌데

흐리는 말끝

 

바스락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채가고

 

그리움의 손이

잡고 있는 붓

강물을 긁적이면

노을 머금은 강물 위에

그려내는 수채화

 

늘 그 자리

강변 모래톱

너이고 싶어

나 오늘

여기 서 있다

   -너이고 싶어전문

 

  빛 고운 노을은 끝과 이별을 부정하지만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가 채가고 그리움의 손이 그리는 강물 위에 수채화이고 싶어 여기 강변에 서있다고 했다. 노을이 가면 내일이 오니 끝이 아니며 만나게 되니 이별이 아니란다. 그러나 그럴 자신이 없다.

  그리움은 어떤 대상을 좋아하거나 곁에 두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애타는 마음이다. 화자는 그리움을 해소하려 강물에 수채화를 그리려고 강변 모래톱에 서있다. 사람마다 그리움을 이기려고 방법을 다르게 써서 애를 쓸 뿐 결코 이기지 못한다.

  강가를 찾아 노을을 만나면 위로의 속삭임을 듣는다. 그리고 노을을 머금은 강물 위에 상상력을 동원하고 추억을 띄우면서 자위하는 전략을 펼치는 그 순간을 감히 너라 부른다. 현실로 되돌려 놓을 수 없지만 돌아갈 수 있는 문을 여는 것이다.

 

바람이 바닷물을 때리면

하얀 깃을 세운 파도가

달려오는 바닷가

희미한 달빛 아래

바다 위를 나르는

갈매기의 구성진

울음소리에 담긴

그 목소리

 

천년의 세월을 안고

그 자리 그대로

서 있는 해송

땅에 떨어진 낙엽

빗물에 쓸려 떠난 자리

 

흐르는 달빛 들어와

숨죽여 울면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

귓가를 맴돌며

들려주는 그 목소리

-그 목소리전문

 

  바닷가에서 사는 사람들이면 으레 바라다 보이는 갈매기 울음소리와 파도소리다. 너무 오래 계속된 소리에 관심을 갖지 않고는 그냥 스쳐지나갈 뿐이다. 관심을 갖고 관찰하는 가운데 예민한 감각으로 상상력을 자극한 시상에서 비롯한 이미지의 생성물이다.

  배경인 해송 아래와 바닷가를 수식하는 것은 등장하는 1연의 갈매기 울음소리와 3연의 파도소리에 대한 성격과 의미를 인식시켜 생명을 불어넣는 큰 역할을 맡고 있다. 바로 그 목소리에 담겨있는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등장 요소인 천년 해송아래 떨어진 낙엽, 갈매기의 울음소리 그리고 귓가에 들리는 파도소리는 장소를 수식하는 바닷가 풍경을 배경으로 하나의 한국화를 그려내어 시각화 속에 들려오는 목소리로 청각화에 성공하고 있다.

 

추워서 땅만 보고 걷고 있는데

귓가를 스쳐 가는

따스한 바람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어

씨뿌린 하늘을 본다

 

제 몸은 울타리 속에 감추고

팔 뻗듯 내민 개나리 가지에

 

봄을 실어 나르는 바람이

 

노란 봄옷을

걸쳐 놓는다

-개나리전문

 

  개나리는 3월말에서 4월초에 피는 노란 꽃이다. 진달래꽃이나 목련꽃처럼 봄소식을 전하느라 잎사귀 보다 꽃이 먼저 핀다. 꽃샘바람으로 웅크리고 걷다가 귓가를 스치는 따스한 바람은 언제나 정원의 가운데도 아닌 울타리에 서 있는 개나리를 보게 한다.

  개나리 가지에 노란 색깔로 피어있는 꽃송이들이 각각 낱개지만 모여져 넓은 면적을 가진 봄옷으로 한 눈에 담았다. 봄에 부는 따뜻한 바람이 지나가다 팔을 뻗은 듯 내민 가지에 봄옷을 벗어서 걸어놓았다는 비유가 눈에 뜨인다.

  개나리는 생각보다 오래 피어 있지 않고 잠간 동안 있다 지고 만다. 걸쳐 놓은 봄옷을 누가 걷어갔는지 모르게 없어진다. 그 후 꽃을 피우려 애쓰는 주변 나무들을 보면서 푸른 잎사귀만 바람에 흔들며 가을을 맞이하는 걸 후회하는지도 모른다.

 

사랑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사랑은 다른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다. 매체를 빌려서 사랑하는 상대를 대하듯 솔직한 고백을 털어놓기도 한다.노오란 민들레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바탕조차도 힘겹게 촘촘히 박힌 돌 틈새를 비집고 선 모습을 애처로워하거나첫사랑 3에서 그 얼굴을 떠올리고 마음은 달려가 부끄러워하지만 꿈에라도 한 번 보고 싶은 간절함을 간직한다.코스모스에서는 기다림이 되고만 사랑은 코스모스로 피어 늦가을까지 파란 잎새가 가녀리게 소녀 얼굴로 하늘거리기도 한다.

 

길가 뿌연 흙먼지 속

내민 얼굴 얼굴 가득한

노오란 미소는

정에 끌려 묶인 마음

다잡아 세운다

 

촘촘히 박힌 돌 틈새를

비집은 여린 가시 손은

실의 올 같은 흰 솜털이

내밀다 난 생채기를

감싸기라도 하듯

파란 잎새를 얼기설기

덮고 있다

 

차려입긴 했지만

! 지난. 그렇게 잊은 잊힌

여인의 아릿한 모습처럼

화려하지 않는 그대의 소박함을

그대로 닮은

노오란 민들레

-노오란 민들레전문

 

  민들레는 아주 흔하여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먹거리나 약재로서 서민들 가까이에서 많은 이로움을 주고 있는 앉은뱅이 풀로써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과 강인함을 노래하는 주제로 많이 떠오르고 있다.

  보여주는 모습은 길가 뿌연 흙먼지 속에 내민 얼굴로 시답잖지만 노오란 미소는 정에 끌려 묶인 마음 다잡아 세운다.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바탕조차도 힘겹게 촘촘히 박힌 돌 틈새를 비집고 하얀 갓털이 삿갓 모양을 하고 붙어서 바람에 날려 멀리까지 퍼진다.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것은 여인의 아릿한 모습처럼 소박함을 닮았다. 다른 꽃들은 주인을 잘 만나 온실 속에 화분에서 호강하며 살거나 화단에 거름을 먹으며 부족함 없이 사는데 들판이나 길거리에 내쫓겨 서럽게 살고 있는 존재를 발견한다.

 

뭉게구름 떠가는 하늘

거기 가 있는 마음

 

바람이 밀면 스치고 부딪치면서

구름이 그려놓은 그 사람의 얼굴

 

낙조가 손짓하면 빨리듯 다가가

발그랗게 물든 얼굴

새벽이슬 머금은 함초롬한 풀잎

풋풋한 우리들의 사랑

 

바람의 손이 찢어

구름을 저 하늘 끝으로 데려가면

 

덩그러니 혼자 남아 풀밭에 눕는다

바람에 흩날리는 백발을 오늘도

붉게 물들인다

-첫사랑 3전문

 

  첫사랑은 맨 처음으로 느끼거나 맺은 사랑이다. 해 본적 없는 사랑이라 어색하지만 나름대로 정성을 다하는 소중한 경험이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그려놓은 그 얼굴, 낙조에 발그랗게 물든 풋풋한 사랑이다. 구름이 데리고 가버리면 혼자 남아 백발을 붉게 물들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지만 버리지 못하고 가슴 한 켠에 담아두고 꺼내보는 색 바랜 흑백사진이다. 하늘에 구름을 가지고도 그 얼굴을 떠올리고 마음은 달려가 부끄러워한다.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꿈에라도 한 번 보고 싶은 간절함이 첫사랑이다.

  첫사랑은 반드시 이성을 지정하지는 않는다. 간절히 원하는 꿈의 대상을 말하기도 한다. 이루어질 듯 하면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소망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 하고 있는 일 보다 흥미가 있는 일을 여건상 하지 못할 때 언제라도 한 번쯤 시도하길 바라는 염원이다.

 

하늘가를 맴돌던 서늘한 바람이

제 곳을 찾아 땅에서 불면

이른 새벽 덮인 뿌연 안개는

가을을 연다

 

부르는 사랑의 노래는

기다림이 되어

뒤돌아보는 길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

 

여름이 사른 줄기는

낙엽 되어 마음 곳에 얽히고

아직도 남은 파란 잎새가 피운

하얀 꽃망울은

 

스산한 가을 들녘을 에운

바람이 내닫는 길목에 서서

해맑은 소녀의 얼굴로

가녀린 몸매는 하늘거리고.

-코스모스전문

 

  서늘한 바람아 불면 뿌연 안개는 가을을 열고 사랑의 노래는 기다림이 되어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 줄기는 얽히고 파란 잎새가 피운 꽃망울은 갈목에 서서 소녀의 얼굴로 하늘거리며 코스모스의 꽃말인 순정을 담고 있다.

  추석이 지나면 조석이 선선하여 동복을 입기 시작하였다. 높이 불던 바람이 낮게 내려온 까닭일까, 기다림이 되고만 사랑은 코스모스로 피어 늦가을까지 파란 잎새가 가녀리게 소녀 얼굴로 하늘거리는 꽃이다.

  신은 코스모스를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라서, 마음에 쏙 들지 않았다. 꽃이 힘이 있는 것보다는 약해 보이고, 더없이 자유스럽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가을 길을 쓸쓸히 가는 나그네를 반기는 꽃이다. 화자의 부산한 삼경은 코스모스를 에워싸고 있다.

 

이별

 

  이별은 서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떨어져 있거나 헤어지는 것이다. 같이 하던 시절을 생각하며 다시 만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이별에서 사월 꽃샘추위는 봄을 시샘하는 겨울이 가기 전에 꽃이 피는 것을 괴롭히지만 흠뻑 젖는 눈물로 가슴에 아픔을 쓸어내리고 가을비에서 예고도 없이 훅 들어와 가을을 데려가고 겨울을 데려와 싸늘하고 스산한 기운을 몰고 온다.내 마음에서 주장이 강한 내가 마음속에 하나였으면 좋겠지만 늘 심난한 전쟁을 치른다.겨울의 길목에서는 화자의 마음에도 남겨진 아쉬움이나 그리움을 떨쳐내고 싶어 한다.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잰걸음으로 봄을 데려오고

 

연초록 드레스로 갈아입고 있는

산과들판 여기저기 피고 있는

만남의 꽃

 

더디 가는 사월의 봄날

아직도 남은 추위에

떨고 있는 꽃잎

 

머잖아 다가올 이별

꽃잎은 속삭인다

 

흔드는 손

쥐어진 하얀 손수건

흠뻑 젖은 눈물

내 가슴에 비를 뿌린다

-이별전문

 

  이별은 서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떨어져 있거나 헤어지는 것이다. 아지랑이가 봄을 데려와 여기저기 피는 만남의 꽃은 사월 남은 추위에 떨지만 다가올 이별은 슬프다. 흔드는 하얀 손수건 내 가슴에 비가 내린다.

  세상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다. 운명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초인간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계절이 또한 왔다가 함께 하면서 든 정이 떨어진다는 것은 가슴 시린 일이다. 다음해에 다시 오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가는가 보다.

  화자는 계절을 매체로 빌려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헤어짐에 대한 이미지를 전달하려 한다. 사월 꽃샘추위는 봄을 시샘하는 겨울이 가기 전에 꽃이 피는 것을 괴롭히지만 간다니 손을 흔들면서 흠뻑 젖는 눈물로 가슴에 아픔을 쓸어내리는 것이다.

 

가을비가 씻긴 말간 하늘

지켜지지 않는 약속들이

도배한 벽면처럼 서 있는 가슴께로

가을하늘이 들어와 푸른 창문을 낸다

 

국화향기 그윽한 뜰

창으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불빛

거기 귀뚜라미 있어 울음 우는 밤

 

약속의 푸른 물에 마음 싣는데

몸 부대끼며 바스락거리는 낙엽

바람의 선물

 

그만 훌쩍 담을 뛰어넘어

가을을 저만치 데려간다

-가을비전문

 

  천고마비의 계절이 가을이지만 국화향기나 귀뚜라미에 가슴 시리게 하고 바람의 선물로 바스락거리는 낙엽과 함께 가을비는 겨울을 데리고 온다. 싹틔우고 꽃피우던 봄부터 열매 맺어 익히던 가을을 맞으며 풍작을 기대하면서도 보내야 하는 허전함이 앞선다.

  가을비는 봄비처럼 계절을 앞당기는 역할을 한다. 예고도 없이 훅 들어와 가을을 데려가고 겨울을 데려와 싸늘하고 스산한 기운을 몰고 온다. 가을을 보내면서 한 해 동안 지키지 못한 약속들을 마무리하려 부산하기만 한 것도 가을비의 재촉이다.

  시는 있는 그대로의 현상 보다는 비유가 제 맛이다. 한 개인의 삶을 암시하는 이미지를 슬며시 들여다 볼 수 있다. 가을비는 빠르게 몰아치는 세월이다.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아까운데 추억과 꿈 사이에 갈등을 빚는 사이 어디론가 서두르는 시점에 와있다.

 

동구 밖 나서면 휑한 벌판

거기 그대로 우두마니 서 있고 싶음은

 

흙더미 겨우 헤집고 고개 내민

파아란 새싹들

 

달빛이 토해놓은 희뿌연 빛줄기 속에

옛 껍질 머리에 그대로 붙여

가슴에 심기어 온다

 

사랑도 심는 일인지라

마음 열어 파헤쳐놓은 가슴

모난 마음 하나 다가와 뿌리내리면

돋아나는 피멍울

 

하나 이어 둘이 되곤 하는

아픔, 아픔, 아픔을

벌판을 휘젓는 바람

산새 무리 모아 함께 부는 휘파람은

닿는 마음의 날이 되어 도려내고 있다

-내 마음전문

 

  흙더미 고개 내민 파란 새싹들은 옛 껍질 머리에 붙여 가슴에 심긴다. 사랑도 심는 일인지라 모난 마음 하나 돋아나는 피멍울이다. 발판을 휘젓는 바람은 마음의 날이 되어 도려내고 우두마니 벌판에 서있다. 뿌리내린 마음 하나를 아프게 끌어안고 있다.

  사랑과 파란 새싹을 심어 자라게 하는 공통점을 발견한 화자의 감각은 예민하다. 파헤쳐놓은 가슴에 모난 마음 하나가 돋아나는 것이 관건이다. 세상사 모두가 내 마음대로 되는 건 많지 않아서 제멋대로 돋아나 도려내고 싶은 상처가 된다.

  내 마음이지만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마음속에는 내가 여럿 있기 때문이다. 서로는 다른 의견을 갖고 갈등을 겪고 나서 어떤 결정을 한다. 내가 아닌 것 같은 행동을 더러 하는 이유다. 주장이 강한 내가 마음속에 하나였으면 좋겠지만 늘 심난한 전쟁을 치른다.

 

좀 이르긴 하지만

불어 겨울을 끌어내는 바람 서천을 휩싼다

 

풀어 젖힌 가슴의 옷섶을 여미는 손끝에는

알알이 묻어 있는 지난여름

 

강 바구니에 가득 담겼던 풀잎 꽃잎 향

먼 길 달려가는 냇물에 담아 보내면

 

벗하던 피라미 붕어 봉긋거리는 주둥이

수면으로 내밀며 아쉬움의 눈망울 굴리는

눈가에 비치는 이별의 물기

 

그녀는 본다 노을빛 담아 흐르는 물길

가을을 잔뜩 머금은 나뭇잎 떠가는 서천

 

옷섶을 여미는 손끝으로 죄여오는 아픔은

물속에서 떠오르는 그의 젖은 얼굴

이별은 그녀의 가슴으로 흐르는 늦가을 강물

-겨울의 길목에서전문

 

  아쉬움의 눈망울을 굴리는 이별의 물기로 노을빛 물길에 가을이 떠가는 서천을 본다. 옷섶을 여미는 손끝에 묻어있는 지난여름 풀잎 향을 냇물에 보내며 기억을 떠올린다. 아픔은 물속에 젖은 그의 얼굴이며 이별은 그녀의 가슴에 흐르는 강물이다.

  입동을 전후해서 쌀쌀한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마른 낙엽이 겨울의 길목에 들리는 소리가 서둘러 한 해를 마무리하라는 독촉처럼 들린다. 그러나 사람의 관계가 맺고 끊을 수 없는 미련이 가로 막아 쉽지 않음을 알면서도 쫓기는 이유를 모른다.

  늦가을의 나무는 잎사귀가 다 떨어져 앙상한 채 아무 것도 걸친 것이 없다. 화자의 마음에도 남겨진 아쉬움이나 그리움을 떨쳐내고 싶다. 고인 채로 썩어 문드러지는 것 보다 깔끔하게 흐르는 강물에 아픔과 이별이 떠내려가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3.나오는 글

 

  시는 정서나 사상 따위를 운율을 지닌 함축적 언어로 표현한다. 어떤 매체를 대상으로 보고 느낀 것을 솔직하게 꾸밈없이 묘사한다. 설명하거나 가르치려고 하지마라는 성격을 지닌 시는 주장도 아닌 표현일 뿐이다. 다만 시가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공감을 해야만 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의 형상화가 필요하다.

  이점진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산란하던 마음들이 시 안으로 끌려들어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대체로 먼저 결론을 내리듯 선수를 치고 나면 시 안에 들어간 마음들이 꼼짝을 못하고 그 후에 풀어져가는 운율의 호흡에 매료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시 안에서 주제로 삼고 있는 존재들의 성격은 강자라고 자부하기엔 좀 나약한 소시민의 소박한 심성을 지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설정된 시의 무대 안으로 들어서면 배우가 된 시어들과 함께 원활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연출을 한다.

  전반에 걸친 운율의 흐름은 서두르지 않고 안정된 내면의식의 흐름과 잘 어우러지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넓은 시야와 깊이 있는 사고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이 시인의 시세계는 삶의 경험에서 오는 힘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절창의 시를 빗어낸 명공의 손맛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도 맑은 영혼과 촉촉한 감성으로 풀어 쓰는 진심에서 우러나는 좋은 시, 감동을 주는 시로 만나게 될 다음 시집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독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시집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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