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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해설

홍기연 시집「다랭이 마을」서평

홍기연 제 2시집다랭이 마을에 부처

- 시인의 경험(經驗) 혹은 풍자(諷刺)

윤 제 철(시인, 문학평론가)

 

1.들어가는 글

 

코로나19가 잠입한 이래 온 나라는 사회적 거리두기나 자가격리라는 용어에 휘말려 보이지 않게 허물어져 가는 문명의 위기를 맛보아야 했다. 벌써 8개월을 넘어서고 있지만 속수무책으로 안절부절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홍기연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하면서 모아둔 원고를 보내왔다.

무엇 보다 반가운 일이다. 흔히 만날 수 없는 소통의 기회라 여겨졌다. 언제 보아도 생기 있고 천진난만 한 소년처럼 명랑하고 밝은 향기가 원고 뭉치에서 물씬 풍겼다.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에서 매달 만나 호흡을 같이 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마치 홍 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듯 그 음성이 귀에 들렸다.

시는 시를 쓴 사람의 삶을 조명하는 거울과 같다고 했다. 누구보다 먼저 홍시인의 시를 감상하는 영예를 누릴 수 있어 감사드리고 시집 발간을 축하하며 홍시인의 시세계를 조명하고자 한다.

 

2.시인의 경험(經驗) 혹은 풍자(諷刺)

 

경험(經驗)

 

경험(經驗) 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삶이 살아온 경로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흔적이다. 그 흔적 속에는 모두가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나름대로 남들이 갖지 못한 부분도 존재하여 반성과 의욕을 얻게 하여 희망과 발전의 발판이 되어 우리에게 공유하게 한다.

경험(經驗)은 하나하나가 뜨거운 물에 커피를 탈 때처럼 커피가 전체를 고르게 퍼져나가 커피 맛을 내는 액체로 변화시켜주는 것처럼 생활 전반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그 경험을 자신만의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시로 승화시켜 생명을 담아 더 넓은 세상 많은 독자들에게 날려 보내는 시인의 경험은 더욱 힘을 얻어 강하게 여겨진다.

 

산비탈에 매달린

다랭이 논배미를

바닷바람이 흔들어댄다

 

윗배미는

초련 먹을 이른 벼 심어

소출이라도 크게 내야

되지 않겠나?

 

새벽잠 깨어 물꼬 돋우는

어머니 발자국 소리에

벼 포기마다 새끼를 치고

꼬불꼬불 논두렁에

자줒빛 콩 꽃 피어나면

뜸북새 찾아와

우리 어머니

말벗이나 해줬으면……

-다랭이 논전문

 

다랭이는 비탈진 산골짜기에 여러 층으로 겹겹이 만든 좁고 작은 논이다. 바닷바람에 시달리는 얼마 안 되는 논농사를 지어 추수를 하기 전까지 일찍 익은 곡식이나 여물기 전에 훑은 곡식으로 양식을 대어 먹는 초련을 위해 이른 벼 소출을 걱정한다.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에 새끼 치는 벼 포기와 뜸북새 찾아와 어머니 말벗을 바라는 화자의 효심이 따뜻하다.

열악한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바닷가 다랭이 마을의 모습이 영상으로 다가와 어렸을 적 가난을 가난으로 여기지 못하고 다 그렇게 살았던 기억이 몰려온다. 그 논배미는 화자였고 바닷바람은 가난이었다. 소득이라곤 어머니의 정성으로 얻는 윗배미 소출뿐이었고 유일한 바깥말벗은 뜸북새 하나였다. 화자는 유년의 추억을 삶의 터전이었던 다랭이 논을 백지 삼아 한 폭의 그림을 눈물로 착색하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대

기다리던 음악 시간 돌아오면

이 교실 저 교실 풍금 찾아

끙끙대며 넷이서 들고 들어왔다

 

예쁘고 긴 머리에

단 한 분이었던

여자 선생님은

풍금을 치고

우리들은 소리 높여

노래 불렀다

 

재잘대던 동무들 집에 다 가고

복도 저 편에 은은히 들려오던

풍금 소리가 내 가슴 깊이

새겨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풍금 소리전문

 

풍금은 페달을 밟아 관에서 바람을 일으켜 소리를 울리는 건반 악기로 서양에서는 오르간이라 부른다. 음악실이 따로 없어 이곳저곳 찾아서 교실에 가지고 오느라 끙끙댔지만 무겁지 않았다. 단 한 분이신 여자선생님 수업시간이 당시로는 행운이었으니 노래도 즐거울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5학년 소년은 상대편 성에 대해 설레는 감정을 느끼는 무렵이니 은은히 들려오는 풍금소리 마저 예쁘고 긴 머리에 여자 선생님으로 다가온다.

소년기를 보내면서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일상의 단면을 통해 높은 공감대를 보이고 있다.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순결한 내면의식을 유지하는 동안의 많은 의문과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두드림의 연속이다. 문제의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숙제가 발생한다. 평소 사용하는 언어를 꾸미지 않고 시어로 사용하여 화자의 말을 풍금소리가 대신하고 있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뒤집히지 않는 딱지 판

친구의 두툼한 주머니를 탐하다

끙끙대며 꿈에서 깨어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책보 둘러매고 우장(雨裝) 챙기며

벤또 내 놓으라 설치대는 데

킥킥거리고 있던 누나가

아침저녁도 분별 못 하는

맹꽁이 같은 놈이라 놀려댔습니다

-낮잠전문 *벤또 : 일본어, 1950년대 초 양은도시락

 

낮에 잠이 들어 짧게 꾸는 꿈은 대체로 쫓기거나 하려는 것들이 잘 안 되어 쩔쩔매기 일 수였다. 시달리다 잠이 깨면 정신이 없으니 저녁인지 아침인지 때가 구분이 안 되었다. 때가 저녁인데도 해가 떨어지고 비가 내리니 기온이 떨어진 아침 같다.

앞 연에서는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를 상황설정을 하고나서 독자들에게 납득이 갈 수 있도록 이해시켜 화자의 무대로 이끌어내고, 뒷 연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등교소란이다. 잘못된 것을 알려주지 않고 놀려대는 누나는 이 시에 한 몫을 했다.

선은 악을 투입시켜 더욱 빛나듯 잘못된 판단을 드러나게 이미지를 강화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렇지 않았으면 단순한 산문으로 마무리 될 수 있었다. 함축, 은유, 상징의 요소를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낮잠이라는 사건을 통하여 화자의 의도를 표현하고 있다.

 

첫눈 내려서 겨울방학 줄 무렵

고실 난로 불쏘시개로

학교 뒷산에 올라가 꼼방울 줍고

10여 리 길 곰개 벌목장에서

장작 몇 개 멜빵 걸어 끙끙대다

여 너문 번 쉬어 오던 그때가

자꾸만 생각난다

 

6분단 뒷문 복도 쪽에 앉아

훈훈한 훈기 쐐보지 못한

무쇠난로

-무쇠난로전문

 

왜 그리 추었는지 자금 보다 훨씬 더 추었다. 입은 옷도 별수 없어 살이 드러나는 그런 옷을 겨울에 입었었다. 난방을 교실에 조그만 난로 하나로 의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가까이에 앉은 아이들은 볼이 벌겋게 익었지만 훈기도 없는 뒷문 복도 쪽에 앉아있던 필자에겐 야속한 그림의 떡이었다.

불쏘시개나 장작을 구하려 애를 썼건만 쐐보지 못한 훈기는 어디 갔는지, 원망스럽기만 한 무쇠난로였다. 잠깐만이라도 난로 가에 앉아보았으면 하는 기도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화자는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보다 강하게 전달하려는 의지가 충만하다. 심리적으로 기대감을 잔뜩 걸어놓고 불리한 약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안타까움이 극에 달하여 억울함이 묻어나 아픔을 공유하게 한다. 뒷문 틈새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많이도 미워했다.

 

80여 미터 물 건너

그을린 북한 병사가

총도 메지 않은 채

가끔 우리를 살핀다

 

저 너머 민둥산 아래로

움직이는 것 하나 없고

새어나오는 불빛도 없다

 

산에 나무가 없고

먹이가 귀하니

새들도 중국 땅

도문에 와 사는가보다

 

무겁게 침묵하는

동토(凍土)

- 도문(圖門)에서 전문

 

멀지도 않은 건너편 마을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중국이 아닌 화자와 같은 민족이 사는 나라였다. 아무 것도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그곳이 궁금하다. 빤히 보이는 80미터 물 건너 땅은 얼어붙고 있었다. 가로막힌 길을 뺑 돌아 남의 나라에 와서 들여다보는 화자가 미워서 백두산은 그렇게 울었나보다.

중국을 향한 총도 메지 않은 병사, 민둥산의 움직임, 불빛조차 없다. 살 곳 없고 먹이 없어 중국으로 넘어온 새들이 등장한다. 새들은 그냥 새가 아니다. 건너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비유한다. 단순히 먹이만 없는 새가 아니다. 울고 싶도록 안타까운 서글픔이 가슴을 가득 메워 시리다 못해 울어버렸다. 딛고선 땅은 이국이지만 마음은 내 조국에 서있다. 바라다 보이는 매체를 관찰하면서 떠올린 상상력은 동토를 녹이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풍자(諷刺)

 

풍자(諷刺)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사건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부정적 사건이나 잘못된 행위 등을 비유하어 비아냥거리며 질타하지만, 대상은 개인이든 사회의 부조리이든 상관이 없이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라는 단서는 필요하지 않다. 다만 특정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풍자(諷刺)는 직설적이라면 감정을 억누를 겨를 없이 서로 언쟁만 키울 뿐이지 용기가 없어서 직설적으로 던지지 못하는 표현기법이 아니다. 상대를 설득해야할 시간적 여유나 명분을 주어야 하고 시의 이미지 뒤에 얼비치는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웅크리고 숨어있는 상대를 끌어내기 위한 심리적 전략이다.

 

일하다 쉬고 있던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둘러봅니다

 

삼태기 놨던

그 자리에서

손바닥만 한

논 한 배미 찾고는

혼자 너털웃음 짓네요

-잊었던 논 한 배미전문

 

배미는 다른 논과 구분되어 있는 논의 한 구역을 나타내는 말로 면적은 얼마 안 되지만 산비탈을 일군 것이라 배미 수는 아주 많을 수도 있고 평지 보다 배미의 크기가 들쑥날쑥 할 수밖에 없다. 일을 하다가 쉬고 나서 일을 다시 시작하자면 일하던 것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것처럼 일하던 논배미가 낯설다.

너무 좁아 삼태기를 놨던 자리를 피해 주위를 찾다가 발견하지 못했다. 큰 논배미면 찾을 필요도 없지만 적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경사진 산등성이를 계단처럼 단을 만들어 넓던 좁던 모양을 가리지 않고 개간된 땅이다.

어려운 삶을 가꾸는 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화자는 오래도록 사람을 보호해온 자연을 마치 혼자 보호해온 것 마냥 손바닥만 한 논배미에 매달려 의연하게 너털웃음을 짓고 있다.

 

됫박으로 쌀독 밑바닥

긁는 소리를 들은 할아버지

곱 장려 쌀도 얻어먹기

어려운 세월이라 하셨다

 

쑥 개떡 한 볼 탱이에

찬물 한 사발로

끼니를 잇는 둥 마는 둥

어미는 시래기 줍는다며

장에 가고 없다

 

술지게미 훔쳐 먹은

아이놈 술 취해 잠들고

화산교회가 점심 한 끼

대접한다는 확성기 소리에

허리 굽은 긴 줄 섰다

-보릿고개전문

 

보릿고개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아서 농가의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이르던 말이다. 밥을 먹고 뛰기라도 하면 배가 꺼진다고 말렸던 노랫말도 떠오르는 대목이다. 먹을 것이 얼마나 없으면 술지기미를 먹고 점심 한 끼 대접에 긴 줄을 섰을까, 곡식의 생산 방법에 따른 생산량의 부족이 가져온 비극이다.

요즘은 견디기 어려운 상황의 대명사로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오죽하면 인사가 식사를 했느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비싼 이지를 준다 해도 빌릴 수 없는 지경이었으니 없는 살림에 물 한 바가지로 배를 채우기 일 수였다. 어려운 실정을 먼저 드러내놓고 모두가 식량을 구하러나서는 실태를 보여주면서 어떻게든 얻어먹더라도 기회가 있으면 발 벗고 나섰던 당시모습을 그려내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머니는 새참 내올 때도

깨끗한 무명옷 입으시고 앞가르마도

곧게 갈랐다

 

콩밭사이 열무 솎으시고

밭두렁에 동부 거두어 집에 돌아와

치맛자락에 달라붙는

도깨비바늘을 떼어내고는

앞마당에 뽐뿌 물 한 바가지

벌떡벌떡 들이켜 시장기 달랬다

 

땀에 밴 어머니 삼베등절 속 젖꼭지

내가 아수 늦게 보는 바람에

일곱 살까지 젖을 먹었단다

 

아궁이에 불 지피고 앉았으면

어머니 가슴팍에 파고들어

젖 찾아 쭉쭉 빠를 때

뒤통수는 왜 그렇게 뜨거웠던지

-어머니 잔영(殘影)전문 *아수 : 아우(동생)가 생기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어머니지만 가슴 속에 살아계셔 잔영(殘影)으로 오셔서 볼 일을 다 보신다. 그 오래된 기억까지 챙겨주셨다. 아수가 늦었기로 일곱 살까지나 젖을 먹게 놔두셨다니 무던하셨다. 단정하신 어머니를 졸졸 따라 다니며 이도 다 나고 밥을 먹어야할 큰 아이가 가슴팍에 파고들었다니 놀랄만할 뿐만 아니라 객스럽다. 오죽하랴, 아궁이에 불 지피면 바로 그 앞에 뒤통수가 온전할 수가 없다.

화자는 역설적(逆說的) 해학(諧謔)으로 어려웠던 시절 어머니의 정을 간직하고 아직도 천진난만 한데다가 개구지다 할 만큼 밝고 자상하다. 1, 2연은 어머니의 용모 단정한 모습과 생활해나가는 상태를 기억하였고 3연은 가장 좋았던 추억을 자랑하고 싶은데 4연은 오래 누리려하다 보니 많은 고통이 따랐다. 물론 이 잔영(殘影)이 다녀가신 시간은 순간이었다.

 

시집가던 날 네 모습이

청초하고 얼굴은 우유 빛처럼

하얗기만 했다

잘 살아야 한다는 말 한마디에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볼이 금방 발개졌지?

 

엄마가 되고선

부모를 다시 생각하게 될 테고

자식을 안고 친정에

오는 날에는 네가 쓰던 방이

무척이나 좁게 느껴질 게다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냇가에 물장구치며 놀다

어미가 별러서 사준 꽃신을

떠내려 보내고

얼마나 서럽게 울었던지

눈이 퉁퉁 부어오르고

소파에 아무렇게나 엎드리어

잠이든 너를 보다

아빠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단다

-시집간 딸에게전문

 

딸을 시집보낸 부모들은 안다. 곱게 키운 자식을 내주어야하는 심정이 어떤 것인가를 안다. 내 몸의 일부를 베어내는 허전함이나 못 다한 사랑을 아쉬워한다. 보이지 않게 가슴으로 울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으랴, 우유 빛처럼 하얀 얼굴은 여리고 깨끗한 자식이며 잘 살아야한다는 말에 맺힌 이슬은 멀리 떨어져 가야하는 길이다.

부모 되어 다시 돌아와 보면 부모마음 알거라는 의미를 네가 쓰던 방이 무척이나 좁게 느껴질 거라는 눈물로 떨어트렸다. 그리고 꽃신을 떠내려 보내고 눈이 퉁퉁 부어오르도록 울렸던 아빠의 슬픔이 쏟아졌다. 경사에도 잘 해준 일 보다 잘못해준 것들이 생각나 눈물이 난다. 최근의 사건에서부터 점진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순으로 추억을 불러드려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표현전략을 성공하고 있다.

 

3,나오는 글

 

사람들은 제 각각 삶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온 이야기를 지니고 산다. 지금 보다는 지난 시절처럼 좀 느슨한 문화 속에서 많은 아쉬움을 갖게 하고 그 때가 지금이었다면 그렇게 지내지 않았을 텐데 라는 후회를 경험한다. 그러나 사욕이나 사념 같은 더러움이 없이 깨끗하게 순결한 생활 모습이 그립기만 하다.

홍기연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사물이나 사건을 보고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읽는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평소에 사용하는 말을 시어로 꾸밈없이 탁월하게 선택된 시어로 결합한 구절들로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시의 내용에 등장하는 시어들은 화자가 직접 말 하지 않고 이야기를 매체를 통하여 대신하도록 시도하고 있다.

거의 잊힐 만한 어린 시절의 추억마저 엊그제 일처럼 불러내는 총기(聰氣)를 홍시인의 제 2시집다랭이 마을을 통하여 바라본다.풍금소리낮잠,무쇠난로,보릿고개,어머니 잔영((殘影)은 유년의 기억과 감성을 열어주는 열쇠 역할을 한다.

시집간 딸에게는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을 딸의 입장에서 공유하며 떨어져야 하는 슬픔을 토로했다. 어디 그뿐인가도문(圖門)에서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눈앞에 두고 괴로워해야 했던 순간을 잊지 못하고 무엇보다다랭이 논,잊었던 논 한 배미를 통하여 어려웠던 시절의 고통을 참고 견뎠던 우리들의 비밀스런 유산을 보여주었다.

자연스럽고 단순한 사건에 담은 사회의 부정적 현상이나 인간들의 결점, 모순 등을 빗대어 비웃으면서 비판한 심도 높은 풍자는 폭넓은 시야와 깊은 사고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홍시인의 시는 그가 만든 이미지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면 독자들은 나름대로 재해석되는 이미지로 맞바꿀 수 있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시집다랭이 마을의 시들은 두고두고 정의나 설명하지 않는 이미지로 생산되어 많은 독자들에게 영롱한 영상으로 남게 될 것이다.

 

 

*홍기면 시인의 제 2시집다랭이 마을발간을 축하하며 부족한 글을 서평으로 보냅니다. 부디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시집이 되길 바랍니다.

 

2020920

윤제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