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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창작시

신발과 당신 신발과 당신 나는 당신의 삶을 감싸고 내 몸이 열이 나도록 살기 편한 신발이 되어 뛰고 또 뛰었다 당신이 하자면 하자는 대로 어떤 이유도 달지 않고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가진 정성 다했건만 당신은 원하는 대로 다 하고나서 한 번도 고맙거나 미안하지 않았다 언제든 바꾸어 신으려한다 가려진 앞을 파악하지 못하고 불편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고집을 피워가며 수렁을 마다 않고 빠지려한다 더보기
풍경(風磬) 풍경(風磬) 바람이 흔들어 고요한 가슴끼리 부딪혀 슬프게 우는 것이냐 가고 싶은 데 가려는 헛된 생각을 하게나 하고 가려운데 긁어주기를 바라는 나약한 의타심 자극에 간지러워 웃는 것이냐 눈치나 말귀가 어두운 답답함을 풀어볼까 새벽녘 살며시 발걸음하여 들려두는 당부일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를 울림 해맑은 음성으로 찾아주는 너의 소리는 내 귀 보다 마음이 먼저 마중 나온다 더보기
움막 아리랑 지금은 불 타 없어진 아리랑 움막 낙월전시관 움막 아리랑 - 공정식 시인을 추모하며 윤 제 철 정병산 자락 움막 아리랑 낙월전시관 이름 모를 들꽃에 묻혀 듣는 산새소리를 뜯어 붉은 실핏줄 원고지에 얹었다 온몸으로 울던 음성 세상의 소리로 승화시켜 보릿대 공예로 담아내며 세월의 공백을 메웠다 약속을 하지 않고 만나니 좋다고 종이컵에 나눈 소주 한 잔 비우지 못하고 아직도 남은 하고픈 말 하얀 머리칼에 앉았다 더보기
불빛 불빛 불을 끄고 내다보는 창밖 까만 집집이 옹기종기 엎드려있다 고양이처럼 잠도 안자고 무슨 생각에 잠겼나 노란 눈을 켜고 빤히 마주쳤다 저 멀리 아파트에도 무얼 하느라 이 늦은 밤에 여러 개의 별빛이 환하게 동네를 비추고 있다 불편한 생각을 벗어나려 잠나라로 빨리 나갈 수 있도록 위로해주는가 기특하기도 하다 어둠속에 몰래보고 있는 불빛은 나를 매달리게 한다 더보기
설거지 설거지 윤 제 철 나나 남들이 밥 먹고 남은 흔적 쌓아두고 바라보기 싫었다 먹을 땐 누가 뺏을까봐 욕심내어 움켜잡고 정을 주었는데 돌아서서 배가 부르니 먹고 난 찌꺼기나 기름기 보기도 싫지만 만지기도 싫었다 뱃속에 들어가면 모두 섞여서 이 모양이나 다를 게 없을 텐데 그동안 마다않고 치워준 손길 그 정성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하나하나 씻어내다 보면 홀가분하고 깨끗하게 비워지는 게 우리들의 때를 닦는 거였는데 더보기
대포(大浦) 주상절리(柱狀節理) 대포(大浦) 주상절리(柱狀節理) 윤 제 철 해변 낭떠러지 밑에 찍힌 육각형 발자국 파도로 매일 씻어 내리며 뒤졌어도 밟힌 자국마다 내미는 질퍽한 흔적만 남아 어디론가 가버린 존재를 찾아내지 못해 몇 번이나 왔지만 또 치는 허탕 푸른 바닷물과 어우러진 절경으로 유혹하는 바람에 본래의 목적을 잊은 체 으스러지고 마는 나약한 심지(心志) 냉각과 응고에 따른 부피 수축에 의해 생기는 또 다른 다각형 기둥이 된다 더보기
그리고 사라지듯이 그리고 사라지듯이 -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줄지도 않는 수량이 높은 위에서 아래로 한 생애를 떨어지는 동안 쉬지 않고 그들은 똑같지 않은 표정으로 내려가야만 하는 시간마다 생각을 달리하는 변화를 남겼다 바라다보는 나에게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련만 그들은 그저 물의 모습을 하고 떨어지느라 겨를 없이 감춰질 뿐이다 모든 게 작가의 조정에 따라 움직이는 그들은 폭포라 불릴 수도 없고 빛과 영상으로 벽에 비쳐지는 사진도 그림도 아닌 형태 빛과 영상으로 부여받은 생명 어두운 미술관 전시장에 살고 있다 더보기
동백동산 동백동산 윤 제 철 한낮에도 어둑한 동백동산에서 오래 전에 쌓였어도 반질거리는 낙엽 호젓한 숲속 길에 잘게 잘린 검은 돌들이 깔렸다 나무들은 다닥다닥 붙어 숲이라는 면을 만들어 반겼고 잡다한 상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잃어버리고 살던 나를 만났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만을 간직하고 지나치는 우릴 보고 화들짝 놀라서 동백나무와 함께 종가시나무, 후박나무 그리고 빗죽이나무 등이 들어서는 만큼 한발씩 물러서고 있다. *동백동산 :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산 12에 있는 재주도 대표 숲인 곶자왈 숲길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