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칼럼

安明鎬, 그의 시세계를 말한다

한국현대시 21호(2019년7월) 


安明鎬, 그의 시세계를 말한다 *윤제철

 

바람은

 

                   安 明 鎬


 

향이 없는 너는 꽃자리에

봄 나비를 날려 보내는 심술쟁이

 

낯가림 없는 너는 한여름이면

땀을 식히는 도우미였던가

 

색깔 없는 너는 늦가을에

단풍잎을 떨구는 몰이꾼

 

정이 없는 너는 한겨울이면

고공무용의 눈발에 조련사였던가

 

주소가 일정치 않는 너는

분별없이 쏴 다니는 방랑자여

 

 

  바람은 기압의 변화 따위에서 비롯하는 공기의 흐름일 뿐 어떤 형태나 색깔이나 냄새를 지니지 않는 존재다. 바람을 본다는 것 보다는 피부로 다가와 느끼기를 따뜻하거나 차가운 정도로 옷을 입게 하고 벗게도 하는 기후요소다.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생태적 현상에서 비롯되는 결과에 대하여 나름대로 관찰하고 사물로써 빌려와 그의 생각을 화자를 대신하여 상상력을 동원시켜 말을 하도록 시도하는 것이 시의 본질이다.

  안명호 시인의 시바람은2009년 계간문학예술봄 호에 게재된 시다. 봄 나비를 날려 보내는 심술쟁이, 땀을 식히는 도우미, 단풍잎을 떨구는 몰이꾼, 고공무용의 눈발에 조련사, 분별없이 쏴 다니는 방랑자로 그 존재를 의미로 드러냈다.

  바람은 흐름을 통한 이동이나 따뜻하고 차가운 감촉으로 행한 결과를 비유한 표현이다. 봄 나비와 땀이 감촉을 빌렸다면 단풍잎이나 고공무용의 눈발과 쏴 다니는 방랑자는 이동을 빌린 것이다. 모두가 바람의 생명에 의한 변환이지만 결과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물을 용기를 바꾸어 담았을 때 그 모양은 원기둥의 수조나 사각기둥의 통, 원뿔형의 그릇의 형태에 따라 달라진 것과 같다.

 

  바람의 이미지를 두드러지게 표현했던 시는 1986년에신문학사에서 발간한시골길연작시집에 수록된시골길 20이다. 연작시로 273까지 발표한 시들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담고 있는 안명호 시인의 대표시다.

 

별도리가 없나 보오

대대로 눌러 앉은 고가들이

해동하면 다 처분해서 떠난다더니

올 농사만 짓고 나면 꼭 이사 간다고

어린 자식들에게 바람을 먹이더니만

그리 떠나기가 쉽지 않은가 보오

풀빛 물든 그들은

아마 바람이었나 보오.

-시골길 20에서

 

바람을 맞히다라는 말은 만나기로 약속하고도 나타나지 않아 허탕을 치게 한다는 오래 전에 사용하던 말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1980년대 산업사회의 발달로 몰락하는 농촌 어느 장손 댁의 떠나야만 하는 농촌에 현실이 숙연하게 그려져 있다. 머물러 농사를 짓느니 도회지에 나가 활동을 하고픈 어린 자식들의 기대를 쉽게 들어줄 수 없는 안타까움을풀빛 물든 그들은 아마도 바람이었나 보오로 결론짓고 있다.

  이렇듯바람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인가 하면보람의 방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성에 정신이 쏠려 마음이 들뜬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어쨌든 바람은 정지 되었거나 진득하니 마음잡고 머물러 있는 사물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안명호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향토적인 소재들을 폭넓고 깊이 있게 관찰하여 특별한 기교를 사용하지 않고 일상적인 용어로 전통적 가치관을 조화롭고 간결하게 표현해왔다. 매사에 맺고 끊음이 분명하여 군더더기를 남기지 않고 남에게 신세를 지는 것을 싫어했으며 옳고 그른 판단에 정의로웠던 선비기질을 본받고 필자는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