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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석천(石泉) 이봉하 고문의 유고집 「이승과 저승 사이」 발간

석천(石泉) 이봉하 고문의 유고집이승과 저승 사이발간




이봉하 고문은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정장에 흰모자 쓴 어른.




  사람의 인연이란 사후에도 잊을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이봉하 고문의 유고집(2018130일 발행)이승과 저승 사이가 발간되어 며칠 안 되어 2권을 받았다. 간행위원회 대표간사를 맡아 수고하신 박수진 (朴水鎭) 시인께서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를 마치고 건네주셨던 것이다. 마치 이 고문님을 만나 뵙는 것 마냥 반가웠다.

  26일 화요일 오전 10시에 고인께 봉정을 위해 부인 하순희 여사님 댁에서 이천호국원으로 출발하기로 하였다며 시간이 있는 분들의 참여를 권하는 문자메시지를 받고도 시간이 겹쳐있는 강의 때문에 참여를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제 1부 문학과 인생, 2부 추억은 세월을 남기고, 3부 인연, 그리고 예술, 4부 지구별 여행자(사진 화보), 5부 받은 서신과 추모의 글로 구성되었다.이승과 저승 사이라는 제목은 고() 이봉하 고문의 시 작품 제목에서 사용된 것이다.

 

그곳은 끝없는 공간도 아니요

끝없는 생각도 못 하는 곳

()가 아니요

생각과 생각 아님도(想非想)도 아니요

그곳은 이 세계도 아니요

저 세계도 아니다

변하지도 않고

만들어지지도 않느니라

형상도 갖지 않는 곳

불변 부장(不長) 무형의 세계이려니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느니라

머무름도 없으며

죽음도 없고 태어남도 없으려니

욕망이 없고

휴식이 있는 곳

 

그곳은 슬픔의 끝이리니……

- 이봉하의이승과 저승 사이전문

 

  시낭송회에 참석하신 시인들과 함께 뒤풀이를 위하여 식당으로 이동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분 또는 사람이 상황이나 일, 사물과 맺어지는 관계에 관한 것을 인연으로 놓고 생각해보았다. 인연이란 우리에겐 쉴 새 없이 다가와 만났다 떨어져나가 헤어지는 것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으로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단순히 만났다 헤어지는 그런 만남 보다 만나서 함께 일을 하면서 쌓아지는 신뢰와 사랑이 지속되는 관계가 짧은 것 보다 긴 것을 위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가 좋으면 인연이 있고 나쁘면 인연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옛말에는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옷깃이 어디일까 물어보면 옷고름이나 소매 정도로 생각하여 아주 흔한 걸로 알지만 옷깃은 요즘 옷에 카라로 보면 동정을 달았던 부분이다. 그렇다면 정말 스치기 힘든 게 옷깃이다. 그러니 인연을 만난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힘들었다.

  이봉하 고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자체에 대하여 기쁜 마음이다. 책을 찬바람 맞을세라 끌어안고 식당을 향해, 회원님들께서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하시길 바라며 연신 뒤를 바라보며 걸었다. 그리고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 음식이 나오기 전에 책장을 넘기면서 몇 쪽을 넘겨보았다.






  문득 2009년도 9월 이 고문님은 만 84세였는데 관악문화원 문학반황순원문학관문학기행 일행 중에 짙은 남색 양복 정장에 흰 모자 차림으로 참여하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일정 중 먼저 들른 곳이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하수처리장에 있는피아노폭포로 절개지에 철골로 따로 구조를 세웠고 인공암반 틀을 이용해 인공절벽을 만들어서 하수처리장에서 나오는 방류수를 펌프로 끌어올려 흘러내리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황순원문학관문학기행을 훨씬 아래 연령의 회원과 다름없이 다녀오셨었다.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시려 가급적 말수를 줄이셨다. 문학관 1층 원두막과 수숫단 흉내 낸 볏집을 세웠고 문학관 2층 마타리꽃사랑방, 남폿불영상실, 문학관 3층 옥상 쪽빛구름쉼터를 돌았었다.

 

2018210일 오후

윤제철(시인, 전 관악문화원 문학반 지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