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취(體臭)
윤제철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꽃이 피는 줄 몰랐다
그냥 무럭무럭 자라기만하면
할 일을 다 하는 줄 알았다
왜 꽃을 피워야 하는지 모르고
때가 되면 필거라 여겼다
일을 하다가 보니 나보다 나중 시작했어도
꽃을 피우고 으스대는 꼴이 보기 싫었다
벌써 피고도 남을 텐데 아직 못 피우느냐고
비아냥거리는 게 미웠다
눈에 띄는 꽃들은 별로 없고 자잘한 꽃들이지만
꽃이 피고 안 피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내가 피울 꽃은 어떤 꽃이기에
아직 필 생각도 없었다
무엇이 모자라기에 남들 다 피우는 꽃 하나
못 피우고 있는지 꽃 피는 꿈에 살다가
아주 커다란 꽃을 꿈에나 피우고 말려나 보다
남들이 피운 꽃들은 다 지고 가을이 다 가도록
꽃 하나 피우지 못하고
싱싱하게 주변을 밝혀주는 것이
내일이란 걸 알고부터
꽃 피우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언가 분명히 있다는 생각에 미치면서
내가 살던 대로 꽃 없이 살기로 했다
꽃은 피워야 하지만
아름다운 체취 보다 못하다고
나는 믿고 싶었다
꽃이 가벼운 말에 지나지 않는다면
체취는 무거운 몸짓이다
'2018창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중물 (0) | 2018.04.12 |
---|---|
삼길포 일출 (0) | 2018.03.22 |
마음속에 사는 또 다른 나 (0) | 2018.03.18 |
한 번에 가는 버스를 타고 (0) | 2018.03.18 |
잘못된 욕심 (0) | 2018.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