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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창작시

체취(體臭)

체취(體臭)

 

윤제철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꽃이 피는 줄 몰랐다

그냥 무럭무럭 자라기만하면

할 일을 다 하는 줄 알았다

왜 꽃을 피워야 하는지 모르고

때가 되면 필거라 여겼다

 

일을 하다가 보니 나보다 나중 시작했어도

꽃을 피우고 으스대는 꼴이 보기 싫었다

벌써 피고도 남을 텐데 아직 못 피우느냐고

비아냥거리는 게 미웠다

 

눈에 띄는 꽃들은 별로 없고 자잘한 꽃들이지만

꽃이 피고 안 피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내가 피울 꽃은 어떤 꽃이기에

아직 필 생각도 없었다

 

무엇이 모자라기에 남들 다 피우는 꽃 하나

못 피우고 있는지 꽃 피는 꿈에 살다가

아주 커다란 꽃을 꿈에나 피우고 말려나 보다

 

남들이 피운 꽃들은 다 지고 가을이 다 가도록

꽃 하나 피우지 못하고

싱싱하게 주변을 밝혀주는 것이

내일이란 걸 알고부터

꽃 피우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언가 분명히 있다는 생각에 미치면서

내가 살던 대로 꽃 없이 살기로 했다

 

꽃은 피워야 하지만

아름다운 체취 보다 못하다고

나는 믿고 싶었다

꽃이 가벼운 말에 지나지 않는다면

체취는 무거운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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