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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여행기

북유럽 8개국 (2012.7.29)

7월 29일

 

 리투아니아에는 20여명의 교민이 살고 있다. 32℃ 건조한 날씨인 리가에서 역사의 중심인 구 시가지를 돌았다. 거리에 보이는 자유의 여인상은 독립운동의 기원을 말하고 있다. 러시아계의 인구가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곳 사람들의 월 보수는 보통 100만 원 정도, 은행원이 200만원이라고 했다. 경찰이 거의 없어 소매치기 등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특히 외국인이 위험하다. 칼크거리의 폭이 넓은 횡단로를 건너면서 어디까지인지 어리둥절하였다. 화폐 단위인 라트는 우리 돈으로 2,200원 정도라고 했다.


 두꺼운 벽으로 세워진 건축물인 군사박물관은 그냥 놓아두었다가 일반인들에게 빌려주기도 했는데 어떤 청년들이 1루블을 내고 빌렸다가 비둘기 똥을 치우다가 거름으로 팔리는 바람에 소득을 올리는 횡재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옆 건물은 한자동맹에 참여했던 나라의 이름이 벽에 쓰여 있었다.

 룬달래에 있는 바로크 스타일의 왕의 별장은 베르사이유로 불릴 정도로 화려했던 곳이었다. 지금도 외관만 촬영이 가능하고 내부는 요금을 내고 찍도록 되어있었다. 차라리 요금을 내지 않고 포기하는 편이 훨씬 편하였다. 그렇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눈에 띄는 것 마다 찍는 일에 소홀히 할 수 없어 오히려 더 피곤하기 때문이었다.


 라트비아는 라트비아인이 50%, 러시아인이 30%, 수도에는 60%가 러시아인이라서 텔레비전에 라트비아어로 자막이 나올 정도였다. 발트 3국을 모두 다 합쳐도 한국보다 작다고 했다. 자동차는 주로 수동식으로 된 것을 쓰고 있다. 9월부터 추워지는데 겨울이 6개월 여름이 6개월씩이다. 하지에는 11일몰 3일출, 동지에는 4일몰 10일출이다.


 리투아니아의 사울레이에 있는 십자가의 언덕은 러시아의 지배에 들어가게 되자 항의를 하거나 반대를 하는 사람들을 수용하였다가 시베리아로 걸어가도록 추방되었던 사태 이후에 생사여부가 궁금하고 무사하기를 비는 기도의 의미로 꽂아두었던 작은 언덕의 십자가였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이를 탱크로 밀어버리고 금지시켰으나 다음 날 아침엔 다시 세워져 있었다. 그 뒤부터는 무언의 항의로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 후 어떤 일이든지 잘되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십자가가 되었다. 결혼식을 하고 나서 꼭 들리는 장소가 되었다. 리투아니아에서 수도인 빌뉴스와 트라카이 성을 보는 일정을 십자가의 언덕으로 대체되는 바람에 일행들과 인솔자간의 알력으로 어려움을 겪은 곳이었다. 그런 결과 시굴다의 트라이다 성을 보게 되었다. 다시 리투아니아로 갔다가 일박을 하고 아침을 먹고 나서 라트비아로 들어가 트라카이성을 보고 점심을 먹고 저녁은 에스토니아에서 수도 탈렌시 구시가를 보고 게 되어있다. 세끼를 서로 다른 나라에서 식사를 하는 새로운 기억을 갖게 되었다.


 저녁식사를 거의 다 마칠 무렵 밖에서는 소나기가 무섭게 내려 다소 후덥지근하던 날씨를 잠재웠다. 잠시 머질 무렵 생수가 다 떨어져 가까이에 있는 마트에 가서 간단한 생필품을 사러가야 했다. 생각보다 생수가 싸서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다. 와이프와 함께 로비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객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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