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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오영인의 메일에 담긴 제 4시집에 관한 요약 칼럼

 

 

가려지지 않는 흠집

 

 

 

윤제철 제4시집,

가려지지 않는 흠집

-문학세계대표작가선 651,

(주)천우미디어그룹/도서출판 천우, 1판1쇄 발행 2012. 4. 5.

 

 

 

 ‘과꽃’, 가까이 다가가서 아래에서 위로 하늘을 배경으로 바다라보니 꽃은 마치 인사를 하는 듯하였다. 그리고 화분에 피어 있는 과꽃이 아닌 어린 시절에 보며 지낸 꽃들로 보였다. 어렵게 지내던 때라 추석 무렵 새 옷으로 갈아입지 못한 섭섭함에 가장 부러웠던 색깔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별’, 외롭거나 가슴이 아픈 이들에게 위로의 대상이 되어주었다. 이제는 하늘을 탁한 공기들이 가로막아 바라다봐도 잘 보이지 않고, 너도나도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별이 있다는 존재조차 인식되지 않는 상황에 살고 있다. 별은 답답하고 옛날이 그리울 뿐 다른 방법이 없자 알려주고 싶은 생각에 개나리 가지에 내려앉아, 사람들이 바라보길 기다리지만 개나리꽃이 지면서 함께 떨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냥 꽃처럼 지고 마는 것이다.

 

 ‘태극기’는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마주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이다. 국경일이면 게양을 하여 기쁨을 함께하는 날로 기려야 한다. 달아도 안 달아도 그만인 무관심한 마음 자세로는 국민이랄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기선양회에 드리는 시로 이미지화 하여 자리매김 되어 세계 어느 곳에서도 펄럭이고 있을 줄 믿는다.

 

 ‘월문리’, 사람들 수가 줄어들면서 근근이 지내는 범죄 없는 마을이라는 플래카드가 덜 자랑스러워 보였다. 감소 추세로 나가다가는 자급자족 못하는 나라로 전락하게 되어 가까운 미래가 염려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어디 월문리뿐이겠냐마는······

 

 

나를 기다리는 새 터널을 지나면서

나에게 필요한 추억을 더 만들어야 한다.

아무 이야깃거리 없이 그냥 따라가는

그런 시간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기다리는 새 터널’ 중에서)

 

짊어진 무거운 짐 하나,

누가 주워도 누구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해

쓸모없이 버려질 한 조각이지만

가리고 싶은 속을 겉으로 드러낸 부끄러움

두 손으로 가려보아도 어쭙잖은 일이다.

(‘단추’ 중에서)

 

잘 되겠지, 한순간 마음을 놓으면

빨리 끝내려고 서둘다 보면

마음먹은 것과 달리 망가지고 말지

(‘물건’ 중에서)

 

과학이 깨버린 신앙 때문일까,

절대적인 힘이 쓰러져버린 평준화 때문일까,

어떤 부문을 가리지 않고

낮은 자리에서 저마다 할 말을 다 쏟아내니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 드는 것은 높은 자리.

언제 가야 적당한 선으로 타협하여

혼란한 생활을 보내고 질서를 찾아올까,

진정 자유와 참여가 무엇인지를 알아낼까.

(‘어느 일출’ 중에서)

 

머릿속에서 제각기 다른 생각들에 잠겨

몸은 한곳에 있지만

어디를 돌아다니고 있는지 모른다.

(‘지하철 안에서’ 중에서)

 

어두운 길을 부모 손을 잡고

어린 나를 밝혀주는 작은 불빛을 따라

넘어지지 않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힘쓰던 그날부터,

내가 잘하는 일이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남이 시키는 대로 빈틈없이 잘해주거나

남이 원하는 게 무언지 알아차리기에 몰두한 것이

잘 사는 모습으로 비춰졌지만,

늦게라도 내 생활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음을 안 것은

비가 온 뒤에 구름 걷히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교육이라는 울타리 안에 불러놓고

내 좁은 시야의 사고방식으로 가르친다고

그들의 생각과 의지에 맞서서 고집스럽게 버텼던

지난날이 부끄럽고 안타깝더라도,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즐거움을 찾아

목표를 세워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고

오랫동안 꿈을 그리면서 가까이 닮아가기 위하여

자신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보다 넓은 세상의 여행을 다시 떠나야 한다.

(‘내가 주인인 세상’ 전문)

 

마음은 늘 그렇게 세월 가는 줄 모르고

그냥 있는 줄 아는데

몸이 따라 주지 않으니

꼭 허락을 받아야

무엇을 하더라도 할 수 있다

(‘몸이 하라는 대로’ 중에서)

 

바로 들어오실 줄 알고 비워둔 방에는

문을 열어 환기를 바라는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다.

(‘빈집’ 중에서)

 

찾아보면 어느 한 곳엔들

쓰일 데가 있으련만

우선 당장 필요한 곳만 바라보니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존재’ 중에서)

 

바닷물은 어디로 놀러 나갔는지

갯벌은 속살을 드러낸 채 놀라서 몸을 움츠리고,

이름 모를 바위들은 나이테처럼 띠를 두른 채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석모도 아침’ 중에서)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사라센의 긍지로

눈을 비비는 못 짓에는

서두름이 없는 여유가 서려 있다.

(‘패스의 재래시장’ 중에서)

 

온갖 주위를 휘감고 도는 고통을 뿌리치며

터질 듯 몰아쉬는 호흡과 땀으로

서러움을 내던지는 춤.

(‘플라맹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