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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제 4시집「가려지지 않는 흠집」

제 4시집「가려지지 않는 흠집」

 

시집을 내면서

부지런히 공부하고 반성하는 마음

윤제철

 

 

 1.

 시의 저변확대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만든 사랑방 시낭송회가 한 걸음씩의 걸어가다 보니 상당한 세월을 보냈다. 벌써 시작한지 18년이 흘렀으니 다녀간 시인만 해도 연인원이 수천은 넘을 것이다. 매달 한 편의 시를 새로 써서 보물처럼 소중히 시첩에 담아 낭송을 해왔으니 그 시의 수만 해도 상당한 수가 된다.

 지난 시집「나를 앉힐 공간하나」를 발간한지 어느새 6년이 지났다. 점차 시의 소재가 다양해져 사물이나 사건과의 대화가 많아졌다.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나서 창작에 임하면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무리 없이 풀어나갈 수 있어 좋다.

 또한 나름대로의 시론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갖다보니 더욱 시야를 넓혀 시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것 같아 스스로 놀랄 때가 많았다. 열심히 들어주신 관악문화원 회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그로 인하여 강의 준비를 하려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고 남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문예지로 신인상을 응모해온 많은 작품들을 접하면서 장단점을 발견해내며 심사를 하는 곳에서도 적지 않은 공부가 되었다. 그리고 신인으로 등단하시는 분들께 문단활동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소양교육을 맡아 해오면서 역시 반성의 기회를 얻었다.

 써놓은 시들을 묵혀두고 싶지 않아 시집을 낸다는 것은 아직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덜 다듬어진 시를 그냥 묶어만 놓은 것은 아닌지, 말로는 5년을 넘기지 말고 주기를 지켜보자 마음먹었던 터이지만 해를 넘기고 만 것이다.

 

 2.

여태껏 시치미 떼고

초록빛 몸뚱어리로 살면서

언제 삼켜 두었는지

짙은 분홍빛 꽃잎을

여러 겹 게워냈구나

가슴을 열고 하늘 맑은 물에

묽게 녹아내는 가을 인사말

어렸을 적 바라보던

부러운 옷 색깔을

들길 따라 입은 꽃.

-「과꽃」전문

 

  과꽃은 모습이 국화와 흡사하여 어릴 적에 들국화란 이름으로 부르며 자랐다. 직장 옥상에 간이식 온실에 화분에 피어있는 짙은 분홍 색깔 과꽃을 보고 초록빛만 띄고 있는 그 몸에서 내밀고 있는 모습이 산뜻하였다.

 또한 가까이 다가서서 아래에서 위로 하늘을 배경으로 바라다보니 꽃은 마치 인사를 하는 듯하였다. 그리고 화분에 피어있는 과꽃이 아닌 어린 시절에 보며 지낸 꽃들로 보였다. 어렵게 지내던 때라 추석 무렵 새 옷으로 갈아입지 못한 섭섭함에 가장 부러웠던 색깔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가을을 보내며 농산물을 거두는 풍경을 지나치다가 들길 따라 피어있는 꽃이다. 과꽃에 빨려 들어가 동심의 세계를 날아다니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져 있다. 지하철 상왕십리역 안에 써놓은 시로 아직도 독자들의 사랑에 지지 않고 피어있다.

 

외롭거나 가슴이 아픈 이가

애절하게 매달리면

따뜻한 눈빛으로

위로해주던 별들을

 

자신이 누구란 걸 세상에 알리고

빛을 내며 사는 스타를

바라보고 사느라 잊었다

 

간 밤 은하수에서 내려와

동작대교 밑 88대로 진입로

개나리 가지에 앉아

 

꿈을 일깨우려 찾아왔건만

별로 알아보기도 전에

땅에 떨어져 꽃이 되었다

-「별」전문

 

  별의 의미가 달라져 인식이 예전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대기오염이 심하지 않던 시절에 하늘은 별들이 시원하게 보였고 마치 쏟아지는 것처럼 많았다. 그러다 보니 외롭거나 가슴이 아픈 이들에게 위로의 대상이 되어주었다.

 이제는 하늘을 탁한 공기들이 가로막아 바라다봐도 잘 보이지 않고, 너도 나도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별이 있다는 존재조차 인식되지 않는 상황에 살고 있다. 별은 답답하고 옛날이 그리울 뿐 다른 방법이 없자 알려주고 싶은 생각에 개나리 가지에 내려앉아, 사람들이 바라보길 기다리지만 개나리꽃이 지면서 함께 떨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냥 꽃처럼 지고 마는 것이다.

 각기 제 하는 일에 인정을 받아 스타가 된 사람들을 바라보며 살면서 모든 걸 위로 받고 사는 데 별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별은 스타고 스타는 별인데 왜 그리 다른지 모르겠다.

 

 조명등이 밝은 천정 위에서부터

폭이 좁고 결이 얇은 소리 한 겹 두 겹

해금에서 나와 달라붙고,

낮은 바닥 아래에서부터

폭이 넓고 결이 두꺼운 소리

첼로에서 나와 쌓여 높아지면서,

음악회 무대 위에는

많은 소리들이 모아지고 있었다.

건반을 두드리는 연주자의 손으로

잡아당기는 소리에 매달은 줄은

자리 잡고 앉으려는 소리들을

잡아당기거나 놓아버리는 바람에

허물어져서 나동그라지고

관객석으로 굴러 떨어져버려

서로를 구분할 수 없도록 뒤섞어져

색다른 소리로 입을 맞추고 있었다.

-「음악회에서」전문

 

  겨울도 아닌데 스산한 가을밤에 열리는 음악회를 예고 없이 가게 되었다.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해금이 어우러진 연주였다. 너무나 대조적인 두 악기의 조화가 잘 이루어 지지 않으리라 여겼는데, 생각보다는 효과를 극대화 시키고 있었다.

 음이 높고 날카로운 해금의 영역과 음이 낮고 부드러운 첼로의 영역은 서로 갈 길이 다른 상대였다. 화자는 음에 존재하지 않는 음의 부피를 적용하고 있다. 해금의 음은 얇게 차곡차곡 천정에서부터 두껍게 쌓여 내려오고, 첼로의 음은 두껍게 차곡차곡 바닥에서부터 쌓아 올라가다가 서로 만나 허물어져 관객석으로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피아노 건반소리에 맞추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제각각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어우러지듯 사람들도 성격이 다르다고만 탓하지 말고 어우러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오히려 서로 같은 것 보다 다른 것이 더 유리하다는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가슴 속에 펄럭이는 너는

오늘도 쉬지 않고 뛰는 맥박.

내 나라의 모든 것이 담겨 우러나는 활력

언제나 가까이 두고 마신다.

역사의 발자취가 면면히 살아 끌어주고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사기를 북돋아 밀어주는

무한한 저력을 소유한 깃발.

작은 영토, 적은 자원을 갖고서라도

세상을 상대하여 굴하지 않고

마음먹은 모든 것을 누리며 날고 있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도 펄럭이는

은근과 끈기의 끊임없는 노력이 살아있는 한

나가야 할 길 멈출 수 없다.

손과 발에, 그리고 눈과 귀에서

떠나지 않고 함께 살아야 할 친구.

거센 바람이 몰아쳐도 힘을 모아

꿋꿋하게 버티고 서서 내일로 간다.

-「태극기」 전문

 

  태극기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존재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본에게 빼앗긴 조국을 찾아 나선 삼일운동과 만주에서, 상해에서 싸우거나 항거한 독립군은 태극기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태극기 안에는 피와 땀으로 얼룩진 우리나라가 걸어온 발자취가 담겨있다.

 작은 나라가 현실을 슬기롭게 역경을 파헤쳐나가 큰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누어 활보하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 잘 사는 나라로 거듭 태어나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긍지로 삼아야 할 것이다.

 태극기는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마주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이다. 국경일이면 게양을 하여 기쁨을 함께 하는 날로 기려야 한다. 달아도 안 달아도 그만인 무관심한 마음자세로는 국민이랄 수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기선양회에 드리는 시로 이미지화 하여 자리 메김 되어 세계 어느 곳에서도 펄럭이고 있을 줄 믿는다.

 

아침은 여전히 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혼자 나선 낯선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옥수수며 콩이 손을 흔들더니

포도 파란 송이가 포장 속에서 늦잠을 청하고

넓게 자리를 차지한 파들의 정렬로 풍기는

그들만의 함성을 들려주었다.

이맘때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버티고 서서

오가는 사람 죄다 바라다보며 큰소리치던

파릇파릇한 논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동네 애견훈련소 길을 돌아 나오다

모퉁이에 숨은 좁은 논을 발견하고 바라다보니

무얼 안다고 쓸데없이 걱정을 하냐고

개들한테 들켜 짓는 소리에 놀라 뒤돌아보는 월문리.

범죄 없는 마을로 이름표를 달고 가슴을 펴보지만

젊은이들 모두 도회지로 씻겨 나가버린 뒤

돌아오지 않아 하늘에 원망을 걸어놓고

노쇠한 호흡으로 사수하는 나이든 인력만

하나 둘 길을 나서며 동네가 열린다.

-「월문리」 전문

 

  월문리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자손 대대로 농사를 짓고 살아온 이 마을에 하루 밤을 자고 일어나 돌아본 아침나절 느낌이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벼농사로 파릇파릇한 손짓이 한참이었을 텐데 다른 작물로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한 모롱이를 지나 밀려나 웅크리고 있는 논이 눈에 띄었다. 발길을 멈추고 들여다보노라니 애견훈련소에서 눈치 챈 개들의 짓는 소리에 깜짝 놀라 뒷걸은질 쳐야했다.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노인들 밖에 없었다. 젊은이들은 모두 도회지로 나가 살고 나이든 인력만 나서고 있었다.

 사람들 수가 줄어들면서 근근이 지내는 범죄 없는 마을이라는 플랜 카드가 덜 자랑스러워 보였다. 감소 추세로 나가다가는 자급자족을 못하는 나라로 전락하게 되어 가까운 미래가 염려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어디 월문리 뿐이겠느냐 마는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에는

이슬람 사라센의 왕궁이 숨 쉬고 있다.

다시는 그 오백년 동안의 치욕을 겪지 말자고

바라다보면서 다짐을 하고 산다.

예술을 사랑하는 눈으로 찬란했던 유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관광객들에게 보여준다.

오랜 전통을 귀하게 여기는 생각들이 뿌리내린

든든한 긍지가 자존심을 살려준다.

남의 나라가 들어와 살았어도

우리가 살았던 모습을 어떻게 버릴 수 있냐고

소중하게 관리해야한다고 가르쳐주었다.

사대문 안에 조선시대 유적을 새롭게 뜯어고친다는

미명 아래 신시가는 구시가를 무너뜨렸다.

일제치하의 잔재가 남아있어서는 안된다며

하나라도 눈앞에 보이지 않도록 부수어버려야만 했던

옹졸한 마음가짐이 부끄러웠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보려고 오는

외국인들에게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남의 나라 안에서 외로워졌다.

세계화를 부르짖는다 하더라도

내 것 하나 남기지 않고 남의 흉내만 내다가

내가 설 바탕마저 잃어버릴까봐 불안하기만 했다

-「알함브라 궁전의 교훈」전문

 

  외국에 나가봐야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스페인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은 이슬람 사라센 왕조가 5백년식이나 지배한 흔적을 카톨릭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보존하고 있다. 치욕의 역사도 우리 역사라면서 다시는 겪지 말자고 다짐하며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남의 나라가 지배했다 하더라도 우리가 살았던 모습은 버릴 수 없다는 그 생각이 부러웠다.

 그리고 지배를 했던 나라의 잔재는 흔적을 남기지 말고 모두 부수어버려야 한다는 우리의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옹졸한 사고방식으로 흔적을 없애버리고 말면 조상들이 살았던 모습 조차 찾아볼 길이 없어지고 만다.

 가장 우리다운 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세계화일 텐데 치욕의 과거를 모두 없애버리면 역사의 흐름을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정체성을 면치 못할 것이다.

 

3.

 나의 시는 따로 시간을 정해놓고 쓰지 않았다. 일상 속에서 떠오르는 시상을 메모를 통하여 다듬어진 것들이다. 외출을 하려면 돈이 없이는 집을 잘 나오지만 메모지가 없이는 그냥 나올 수가 없다. 싱이 떠오를 때 메모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기억에서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상 하나하나는 로또복권 1등 당첨이나 다를 바가 없어 귀하기로 말하면 그 어느 것과도 견줄 수가 없다.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 사물의 형태와 움직임, 사건의 성격과 파장을 대상으로 쉬지 않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관찰하고 있다. 그 것을 그 대상과 대화를 나눈다고 말한다. 대화가 충분히 나누어졌을 때, 비로소 비유가 원만하게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자면 대상을 통한 사람의 유사성이나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성질을 파악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대상 속에 하고자하는 말을 대입시킨다.

 창작이란 이 세상에 처음으로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물건을 만들었다면 그 것은 발명이다. 보는 방향이나 생각하는 각도가 다른 표현 방법으로 선구적인 입장을 고수하여 쓴 시를 말한다. 덜 다듬어진 시를 독자들에게 마구 남발하는 일은 삼가야한다. 지면에 실려 있는 시들은 시인을 대신하여 독자를 만나고 있으니 어설픈 시는 시인을 어설프게 여길 수밖에 없다.

 시의 주제는 시를 쓸 때마다 다르기 때문에 시를 오래 써왔든지 이제 입문을 했는지를 막론하고 항상 신인의 마음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한 편의 시를 오래도록 다듬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주제를 시상에서 얻었을 때 마치 천하를 얻은 것처럼 더 이상 즐거울 수는 없다. 그러니 그 시를 다듬어 한 편의 시로 탈고 되는 순간야말로 성취감이란 행복을 만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2012년 3월

이른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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