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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체벌에 대한 소고(小考)

 

체벌에 대한 소고(小考)에 관한 글이 게재된 프리데일리 지면을 바로가기로 올렸습니다.

아래 인터넷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predaily.com/newsView.html?idxno=3711&sCode=S1N8&ssCode=S2N48

 

체벌에 대한 소고(小考)

 

윤 제 철(교사, 시인)

 

 학교란 교사가 일정한 목적이나 교과 과정ㆍ설비ㆍ제도 및 법규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이다. 다시 말하면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길러주는 곳이다.

 학부모의 학력수준이 낮았던 오래 전에는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고 가르치는 것에 관하여는 교사에게 모두 일임했다. 그러나 학부모 학력이 점차적으로 나아지면서부터 교사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기 시작하고 심지어 무시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그러니 잘못해서 매를 마졌다는 개념에서 귀한 자식에게 손을 댄 것이 분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특수목적 고등학교가 생기면서 입시학원은 내신을 올리려는 학생들에게 학교 보다 먼저 어려운 학습내용을 배우려는 우수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부터 미리 앞당겨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나면 학교에서 다시 배우는 학생들은 흥미를 잃어버렸고 학습 성적이 좋던 나쁘던 그냥 있을 수 없는 학생들은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밤늦게 까지 공부를 하다가 등교한 학생들은 피로에 싸여 졸음 현상에 시달리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학원은 학습활동을 하는 곳이 되었고 학교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핵가족화 되면서 애지중지 키운 자녀들에 대한 과잉보호현상은 관심을 갖고 나무라던 교사들의 의욕을 저하시켜왔던 것이 사실이다. 다치지 않으려는 입장에서 많은 교사들이 소극적인 자세로 대처하는 수밖에 없어 결국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지도 대상인 학생을 인권차원에서 보호되어야 한다는 명목 아래 화를 내며 언성을 높여서도 안 된다. 말로 해서 듣지 않는 아이들은 매가 약이라는 말이 머쓱해진 세상이다. 자기 자식처럼 가르치던 교사들에게 이제는 남의 자식처럼 바라다보는 입장에서 지도하라는 형편으로 변화되었고 심지어 체벌을 금지하게 되었다.

 시범학교를 정하여 효과를 알아보고 문제점을 점검하여 시행하여도 늦지 않았을 것을 성급한 추진이 되고 말았다. 수업시간이나 그 밖의 학교생활 중 교사들의 지시나 주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는 학생들에게 언짢은 표정이라도 보이면 핸드폰을 들고 있다며 고발을 암시한다. 말로 타일러서 들을 경우라면 아무런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곤란을 겪고 있지만 묵묵부답이다,

 궁여지책으로 벌점제 시행을 촉구하였지만 벌점이 쌓였을 때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벌점이 상한선에 올랐을 때는 유급이나 퇴학을 시키든가 해야 할 텐데 오히려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억지로 주어 벌점을 줄여주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벌점에 대한 경각심을 주지 못하고 비아냥거리는 측면을 보게 되었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도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 따끔한 자극이 필요한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말로만 타이르는 방법은 이미 많은 나라에서 실패한 결과로 지적된 바가 있고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설령 성공한 나라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정서와는 다른 곳임을 인식해야한다.

 그나마 버텨왔던 것이 사랑의 매가 있었기 때문이다. 잘못이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납득을 시킨 다음에 다짐의 의미로 가했던 사랑의 매를 말한다. 물론 감정이 격해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는 학생에게 체벌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매를 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 풀지 못하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참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어떤 법이라도 예외 규정은 있기 마련이다. 교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무시한다던지 욕설을 퍼부어 다른 학생들에게 입장을 곤란하게 하는 행위, 그리고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에 대한 예외를 마련하여 숨통을 열어주어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한 교사의 자리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잘못을 가르치려는 교사들이 왜 제자인 학생들에게 폭행을 당하여야하는지 소식이 메스커뮤니케이션에 오르내리는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니다. 의무만 있고 권리하나 없는 교사가 설 곳은 학교에서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체벌을 금지하여 일부 교사들의 물의를 끊기 위한 조치로 시행했는지 모르지만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매를 맞는다는 의식이 머리에 잠재되어있던 사회 풍조에서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어져 해방감에 빠져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교사가 잘못을 가르쳐주는 존재가 아닌 다만 체벌을 못하는 존재로만 인식되고 있다.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수업시간에는 절대적인 존재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학습내용이든지 인품을 가르칠 수 없다. 교육의 숭고한 사명을 띠고 교단에선 교사들이 무시 받는 풍토에서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걱정하게 되리라고는 여태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얼마 안 되는 재직기간을 남기고 있는 교사로서 후배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안겨주고 떠나는 것만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체벌을 철회함으로서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되살리고 체벌로 인한 문제를 일으키는 교사들에게 대하여 징계를 요구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매를 들고 있으되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은 조건부 철회를 의미한다. 무장을 해제한 지휘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작용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말로 표현 못하는 고통을 겪는 교사들에게 사기를 드높여주어야 한다.

 메를 들지 않고도 얼마든지 지도할 수 있는데 왜들 그러느냐는 반문에 해답이 없다. 알아 듣고 잘만 따라준다면 이야기꺼리 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소수의 학생들이다. 그 소수까지도 학부모의 귀한 자녀이기 때문에 염려하게 된다. 쥐를 잡으려다가 독을 깨는 일은 아닌지 재고가 요구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