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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시 감상을 돕는 글 - 심재흥 시집 <아픔은 꽃씨 되어>

시 감상을 돕는 글


사랑과 행복, 그리고 희망의 꽃씨를 심으며

      - 심재흥 시집「아픔은 꽃씨 되어」


                                                            윤 제 철(시인, 시세계 편집주간)


1.들어가는 글


 사람이 사는 환경은 서로 다르다. 오래 동안 함께 지냈다 하더라도 말하지 않은 일들은 모르는 채 지나쳐버리고 만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일 자체만 인식될 뿐 살아가는 모습을 헤아리기가 여의치 않을 것이다. 

 시인은 자신이 말하고자하는 것들을 시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을 가리지 않고 나름대로 주제로 삼아 가슴 속에서 걸러낸다. 말로 표현하는 것 보다 남아있는 찌꺼기가 없이 깨끗하게 비우게 된다.

 시를 쓰는 한 사람으로써 오늘에 이르도록 노력했던 일도 바로 그 점이었다. 시에 응축되어 묻어나오는 삶의 모습들이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 감동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한 것이다. 수필이나 소설은 산문으로 수식을 통하여 설명이 되어 독자들에게 자신의 하고자하는 내용을 전달해 주지만 시는 설명이 없이 농축되어진 이미지를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언제나 겸손하시고 따뜻한 미소로 사랑을 나누어주시는 심재흥 시인의 여러 시편을 받았다. 자리를 같이 하실 때마다 말씀을 아끼시고 삶의 진한 향을 품어내시던 모습을 떠올리며 시를 읽어본다. 혼자 심시인의 시세계를 여행하는 것이 아깝지만 해설을 쓰게 된 것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어 다행스럽다.

 그리고 그동안 아껴 두신 사연을 가슴에 넌지시 담아주심에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뿌듯한 감회에 젖었다. 오래 전부터 각인된 별꽃이라 이름 붙여 내 주변에 피워주신 기억을 다시금 되새기며 이 글을 올리는 것이다.   


2.사랑과 행복, 그리고 희망의 꽃씨를 심으며


그 가을

가슴 허전하던 날


강가에서 주워온

하아얀 조약돌 하나


그 조약돌

손에 쥐고 생각한다


얼마나 세파(世波)에 더 씻겨야

이 마음도 동그래질 수 있을까?


어둠의 그림자 지우고

하얗게 빛날 수 있을까?


손에 쥔

하아얀 조약돌처럼.

 -「조약돌 손에 쥐고」전문


 조약돌은 작고 동글동글한 돌이다. 커다란 돌이 깨어졌거나 그 자체가 세상의 모진풍파에 시달려오다가 동그랗게 다듬어져 하얗게 빛을 발하고 있다. 손에 쥘 수 있는 하이얀 조약돌 하나,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지내온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삶의 애환을 읽고 시인은 솔직한 대화를 청하고 있다.

 나에게만 있는 사연인가 여겼던 오해의 끈을 풀고 대답 없는 사물에게 들려오는 답을 들을 수 있는 상상력이 동원되어 털어놓고 있다. 어둠의 그림자 지우고 하얗게 빛날 수 있을까, 오래도록 힘겨웠던 일과 씨름을 하며 이겨냈건만 아직도 끝은 멀고 해결해야할 실마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조약돌은 난관을 극복한 결과물로 놓고 부러워하는 대상으로 비유하고 있다. 손에 쥐고는 있어도 아직 그만 못한 자신이 작아 보이는 시인의 생각은 가슴을 허전하게 하지만, 두고두고 바라다보며 반전의 기회를 삼으려 한다.    


초겨울 일요일 아침

양말 신으니 구멍이 났네

엄지발가락이

슬그머니 튀어나왔네


구멍 난 양말 보고 놀란 듯

빨리 벗으라고 성화대는 아내

쉬는 날 집안에서야 어떠냐고

싱긋이 웃으며 벗지 않는 나


내 어릴 적

토담집 등잔불 아래서

구멍 난 양말기우시던

어머님 생각하며

오늘 하루

구멍 난 양말 신어보네

아내 성화 뿌리치고

 -「구멍 난 양말」전문


 양말은 구멍이 있는지 유무를 가리지 않고 신는 습성이 있다. 항상 중요한 시기에 들통이 나서 얼른 감추기는 하지만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흔히는 구두쇠로 놀림을 받기도 한다. 주위를 기우리지 못한 걸 후회하곤 한다.

 예전 같으면 구멍을 다른 천 조각을 대고 꿰매서 신었던 일이 귀하지 않았다. 시인은 그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 가능하면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또한 피부로 느끼고자 하는 의도가 아내의 성화를 뿌리칠 만큼 강하게 엿보인다.

 구멍 난 양말을 벗지 않고 어릴 적 토담집 등잔불 아래서 양말 기우시던 어머니를 잊지 못한 까닭이다. 구멍 난 양말은 어머니를 떠오르게 하고, 어머니는 다시 따뜻한 정을 가슴에 담아주시는 고리로 연결된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양말을 미리 챙겨주지 못한 것이 불편하다. 시인이 숨기고 즐기는 어머니의 정을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겨울 저녁

고갯길 함께 내려온

손수레 새워 놓고

할머니가 식은 땀 닦으며

쉬고 있다

수레엔 오늘 하루 주워 모은

빈종이 상자들


너 없으면

내 어찌 살꼬


수레 손잡이 쓰다듬는

검버섯 돋아난 할머니의 차가운 손

어둠도 살며시 다가와

할머니 손 어루만진다

 -「손수레」전문


 추운 겨울, 집에나 계셔야 할 나이 드신 할머니 모습에서, 독자들은 나름대로 경제적으로 어려워 벌어야 하는 딱한 사정이거나, 여유가 있어도 할 일을 찾아 적은 돈이라도 벌어 자손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겠다는 의지를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할머니는 하루의 일상이 주워 모은 빈종이 상자들에게 있다. 한꺼번에 주을 수도 없이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모은 것들이기에 소중한 것들이다. 할머니는 이들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희망으로 삼고 있다.

 자칫하면 일손을 놓을지도 모르는 할머니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은 빈 종이상자를 싣는 수레다. 수레는 친구이며 자손이다.「너 없으면 내 어찌 살꼬」수레 손잡이를 쓰다듬는 할머니의 차가운 손에 진하게 묻어있다.

 어둠이 다가오는 시간까지 수레와 함께 하는 할머니를 통하여 시인은 힘없고 가난한 소외 계층에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모두 어디 갔을까?

 

산골 마을 외딴집 버리고

봄볕 내리는 앞마당엔

살구꽃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홀로 집 지키던

허리 앓던 영감마저 먼 길 떠나고

멧새들도 날아오지 않고

길 잃은 바람만 잠시 머물다 갈 뿐


봄이 왔건만

살구꽃 웃을 줄 모르며

뜰 가득히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만 빈집 지킨다

 -「살구꽃 피었는데」전문


 우리 생활의 바탕이었던 농촌이 산업화를 거듭하면서 노동력은 도회지로 나가고 남아 있는 노인들이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 현실을 파헤치고 있다. 산골마을 외딴집은 농사지을 밭이나 논이 변변치 않아 더욱더 어려웠을 것이다.

 노인들이 살다가 세상을 뜨면 누가 와서 실아야살 것인지 걱정이 태산이다.「멧새들도 날아오지 않고/ 길 잃은 바람만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도회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터전이 송두리째 없어질 위기에 놓여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지만 누구 하나 반겨주지 않는다. 해마다 희망을 걸고 피워보지만 반기지 않으면 점점 의욕을 잃고 피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비어 있는 집은 관리가 되지 않아 폐허가 되고 잡초만 무성하다. 허물어져 아무짝에도 쓸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사람도 나이 들어 주변에 드나들던 친구나 친지들이 차츰 줄어들면서 소외되는 과정을 그려볼 수 있다. 살구꽃은 피었는데 찾는 이가 없다. 

  

늦가을 들녘 보고 싶어

한 밤중에 살짝 다녀왔더니


이튿날 호박 밭 싱싱하던

잎과 줄기 엎드려 흐느끼네


몰랐구나

내 모진 발자국


차라리

단풍구경이나 할 것을

 -「첫서리」전문


  수확을 앞두고 호박밭 싱싱하던 잎과 줄기가  밤사이에 내린 첫서리 때문에 넋을 놓고 엎드려 까불어졌다. 어두운 밤을 틈타 살짝 다녀온 들녘은 나름대로 관심을 가져주고 궁금한 나머지 이루어진 외출이었다. 화자의 뜻과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벌어진 실수를 뉘우쳐 본다. 내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했을 뿐 상대방이야 어떻게 되었든 관심이 없었다.

 무심코 한 말 한 마디가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듯 날카롭게 다가와 두고두고 이를 갈게 한다. 말을 할 때는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표현해야 하는 것처럼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뒤늦게 후회해야 아무 소용이 있을까?

 일순간에 잃어버리는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로 표현 하여 무슨 수로 되돌려 놓겠냐마는 미안함을 떨칠 수가 없다. 차라리 다른 구경을 했으면 그런 상처를 주지 않았을 것을, 화자는 과오에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공교롭게 내린 첫서리가 원망스럽기만 한 것이다. 본의 아닌 결과에 책임져야하는 일이 애석하기 짝이 없다.

     

꽃가게가 문 닫았네

꽃이 팔리지 않아 문 닫았네

창밖엔 봄비 내리는데

굳게 문 닫힌 가게 안

쓰레기처럼 버림받은

화초들이 봄비 바라본다


미칠 듯 목 타는 데

돌아오지 않는 꽃가게 아줌마

누르스름하게 시들어

소리 없이 떨어지는 이파리들

값지고 예쁜 애들은

문 닫기 전 미리 빠져 나가고...


가로수 새싹들은 봄비에 젖어

연두 빛 더욱 짙어 가는데

문 닫은 꽃가게 남은 화초들은

숨 할딱거리며 봄비 바라본다

 -「봄비 바라보며」전문


 꽃가게라 하더라도 문을 닫으면 제대로 손을 보지 않는 까닭에 꽃이 아무리 목이 타지만 누구 하나 해결해 줄 사람이 없다. 밖에 장마가 진들 베란다에 화분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견디다 못해 시들어 떨어지는 이파리를 보아도 아줌마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

 이미 팔려나간 꽃들이야 어느 주인에게 호강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먼저 선택을 받아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버리고 나중에 남아 곤란을 겪어야 하는 남은 것들의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쓰레기를 버린다

그냥 버리는 생활 쓰레기

다시 쓰여질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하여 버린다

쓰레기를 버릴 때 마다

머리 스치는 생각 하나

머언 훗날

우리들이 한목숨 다하여

흙으로 돌아갈 때 우리들도

쓰레기처럼 분류되지 않을까?

살아 숨 쉬는 동안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사람들 가슴에 살아남기도 하고

곧 잊혀지기도 하리라

쓰레기 분류되듯

뒷사람들에 의하여

 -「쓰레기를 버리며」전문


 마구 버리던 쓰레기를 분류하여 버리고 있다. 음식물을 비롯하여 일반쓰레기는 재활용쓰레기와 별도로 버리고, 재활용 쓰레기는 더 세분하여 수거하는 날, 통을 여러 가지로 준비하고 버리는 사람들이 직접 분류하도록 하고 있다.

 재활용되는 쓰레기는 다시 쓰이는 가치를 작게나마 지니고 있어 바로 버려지는 것보다 소중하게 여겨진다. 분리수거하는 곳은 쓸모없다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를 느끼게 하는 현장이다. 귀하게 골라 쓰이느냐 버려져야하느냐가 결정되는 운명의 시간이다.

 시인은 쓰레기들과 대화를 나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나름대로 열성을 다하여 살다가 마무리를 해야 한다면 과연 어느 쪽에 분류될까? 자신이 분류하는 것도 아니고 남아 있는 뒷사람들에 의하여 평가되는 것이다.

 살아온 나날이 남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의 생각과 같지 않은 평가기준에 의하여 뜻밖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어차피 버려지는 걸 부질없는 생각일까?


허망(虛妄)하여라

산봉우리 넘어간 흰 구름

다시 돌아오기 기다리듯

이룰 수 없는 기다림으로

덧없이 보낸 반백년


가깝고도 먼 북녘 땅에서

이산(離散)의 아픔 안고

팔순 맞은 그리운 누님

상봉의 꿈 안개 속에 묻힌 오늘

이제 무엇을 더 바라리

생전에 이루지 못한 만남

먼 하늘나라에서나 이룰 수밖에


오고 감 자유롭고, 장벽 없는 그곳에서

우리 남매 만나면 고향하늘로 날아가

어린 시절 메뚜기 잡던 그 논둑 걸으며

이승에서의 분노 모두 바람에 날려 보내고

가슴에 쌓아 둔 이야기 도란도란 나누리

들국화에게도 들려주며

 -「누님 생각 ․ 5」 전문


 한 번 헤어져 기다리고 가다렸지만 만나지 못한 누님을 노래한다. 산봉우리 넘어간 흰 구름처럼 돌아오지 않아 기다림으로 반백년이 흘렀다. 가까우면서도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곳 북녘 땅, 손꼽아 기다리면서 그냥 있을 수 없어 남모르게 찾아야했던 흔적이 묻어있다. 그냥 마음속에 묻어두고 무작정 기다려야하는 체제애서 최선을 다하여 소식을 주고받았던 시인은 그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더 애틋한 그리움만 쌓였다. 그런 누님이 팔순을 맞으셨다. 이제 얼마나 더 사실런지 모르지만 만나는 것이 어려워 꿈을 안개 속에 묻어버리고 먼 하늘나라에서나 이루자고 미루려 한다.

 딸을 기다리시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누님에게 도움주려고 무던 애를 쓴 시인과 시인의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외국에 살면서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 시인의 딸의 효심이 감동을 준다.


3. 나오는 글


 심재흥 시인의 시를 읽어보면 일상을 통해 어우러지는 생활도구나 자연환경에서 접하는 주제를 선택하여 그들과의 대화에서 얻어지는 시상들이 많다. 그리고 그 것들과의 대화를 나누는데 가까이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나 가족들을 떠올리고 있다. 특히 이산가족인 심시인은 6 ․ 25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속절없이 헤어진 누님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을 작품「누님 생각 ․ 5」에서도 달래고 있다. 주어진 생활환경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어머님과 누님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귀결되어진다.

 시를 쓰시는 마음은 늘 높이 날아 넓게 볼 수 있었던 시야로 하고 싶은 일들을 굽히지 않고 펼쳐나갈 수 있었으며 보다 큰 성과를 꽃피울 수가 있었다. 시는 생활의 모든 부분을 모아주고 단속해 주는 종교로서의 역할이었다.

 아름다운 생활을 만드시기에 오늘도 부지런히 문 앞을 나서시는 꼿꼿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를 사랑하여 행복하였노라고 자부할 수 있는 창작의 세계를 실현하시길 빌며, 앞으로도 쓰여질 많은 시들이 큰 날개를 달고 독자들을 찾아다니며 심어 주실 희망의 꽃씨가 활짝 꽃피우리라 믿는다. 사랑, 행복, 희망의 꽃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