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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시집의 가치

  


시집의 가치


윤제철


 평소에 써 놓은 시를 모아 책으로 묶어 내면 시집이 된다. 시집을 한 권 내는데 보통 4년이나 5년을 잡는다고 한다면 1년에 15편에서 20편 정도는 써야 한다. 그러자면 한 달에 한 편 내지 두 편을 쓰는 셈이다. 시를 쓰는 일이 계획에 맞추어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계기가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시낭송회에 신작을 써서 참여한다든지 청탁을 받아 원고를 제출한다든지 꼭 써야 하는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한 시를 쓰는 일은 쉽지 않다. 복잡다난한 현실 속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마땅한 시간을 얻지 못해 써야하는 데만 되 뇌이다가 만다.

 한 편의 시를 쓰기 시작하여 마무리한다는 것은 시인이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한두 가지가 아닌 많은 이야기가 담겨 함축되어 있는 운문이므로 아픔과 고통을 겪어야 하는 과정을 거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치고 또 고치고 그래도 아니면 그대로 놓아두었다가 또 다듬어서 가지고 있는 생각에 접근하기를 반복해야한다.

 원고마감에 쫓겨 덜 다듬어져 풀어져 있는 시를 그대로 던져버리는 일은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일이다. 시의 수준은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여야 한다. 기복이 심하면 시에 대한 무성의로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할 뿐만 아니라 시인으로서 인격을 의심받을 수 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하여 쓴 시를 문예지나 시집을 통하여 게재를 하면 얼마나 많은 수의 독자들이 관심을 갖고 읽어주느냐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요즘 같이 책을 읽기를 소홀히 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의기소침 하게 된다. 시집을 발간해서 아는 사람들에게 주는 정도로 오히려 뒤처리하기에 마음을 상하기 십상이다.  

 시집을 발간하는 일은 자식을 하나 얻는 일과 같다. 세상에 나가 제구실을 다할 수 있는지, 손과 발은 제대로 갖고 태어날지, 얼마나 능력을 갖고 살아나갈지, 분만실 앞에서 신생아를 기다리는 부모심정과 같은 것이다. 아이가 생긴다고 해서 다 낳을 수가 없는 것처럼 정성을 다 하여야 한다.

 시집을 많이 낸다는 것은 부러워해야 할 일이나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는 시집이어야 한다.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좋겠으나 의도적으로 만든다면 의미가 없는 허울로 밖에 볼 수 없다. 상업적으로 휘말릴 그런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시집이 발간되고 있으나 독자들에게 정말로 읽혀질 만한 시가 몇 편이나 들어 있는지를 묻고 싶다. 시집의 가치를 가격으로 매길 수는 없으나 물질적으로 정가가 붙어있지만 그것은 가치가 아니다. 누군가가 말 한 것처럼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시의 편수만큼 층수를 가지고 있는 빌딩의 가격과 맞먹는 가치가 있다고 했다.

 그런 가치를 담을 수 있는 시집을 내야한다. 그러자면 다른 시인의 시집을 많이 읽어야 한다. 내 생활의 주변이야기만을 소재로 다루어서도 안 된다. 정신적인 선구자 역할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다 넓게 보는 눈을 지니고 시를 쓰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시간이 없어서 시를 못 쓰는 게 아니라 삶에 묻혀 눈을 가리고 살기 때문에 시를 쓰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새해가 밝아온다. 눈을 크게 떠 정확하게 바라보고 냉철하게 판단하는 시를 써야겠다.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독자들의 메마른 정서에 물고를 터 주어야한다. 

      -월간 문학세계 07년 1월 호 권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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