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못 잊겠어요
박 경 호(시인)
잊겠다는 말을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그대를 잊겠노라고 끝없이 되 뇌여 다짐하는데
푸른 바다위에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그리움을 차마 막을 수 없어
그 파도에 몸을 던지고 싶다 죽더라도
그 숨소리도 한 알의 보석 같고
코끝에 스치는 그 향내는
내 숨통을 끊어 놓을 듯
가슴을 후벼 파는데 어찌 잊으리
차라리 죽으리라 그대를 잊으려니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이 잊는 것이다. 잊겠다는 건 고의적으로 잊을 결심을 하는 것이다. 한용운 시인은「나는 잊고저」에서「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잊고저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라고 표현하듯「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그리움을 차마 막을 수 없어/ 차라리 죽으리라 그대를 잊으려니」라고 고백하고 있다.
한용운 시인은 잊고저 하는 당신이 조국이지만 박경호 시인은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사랑하는 그대를 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생각이 나는 걸 무슨 수로 막아낼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그대를 보내면서 약속하고 다짐했던 기억을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하여 고의로 지워버리려는 걸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남기고 간 흔적들을 보살펴 그대를 만난 듯 사랑을 아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더 갈고 닦아 윤이 나는 존재로 이 세상을 밝히도록 만들었다. 홀로 남는다는 혹독하고 처절한 상황에서 참고 견디면서 잊지 않고 살아온 화자의 사랑이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