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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책-시

가을 풍경

가을 풍경

 

이선희(시인)

 

 

가을의 손짓은 내게도 함성이다

 

청자 빛 깊은 하늘 조각구름 빚어내고

나무마다 채색 옷 가득 널어놓고

향기 익은 꽃술에 취하듯 입 맞추는

 

넘실대는 들판 황혼녘

열매마다 얘깃거리 솔솔 단내 나고

어느 품에 안겨갈까 선잠 깨어있다

 

두 팔 크게 벌린 이 산과 저산 사이

바람이고 붉은 메아리 소리

 

노란 은행잎 색 빛바랜 코트에

가을 한 장 붙이고 걸어가면

길마다 바람이 낙엽들과 수다하고

주머니 속 추억들이 가을은 참 예쁘다는

수채화를 던지며 같이 걸어간다

 

 

가을이다. 다른 계절은 다가가서 부르고 싶지만 가을은 먼저 불러준다. 그냥 살그머니 속삭이듯 부르지 않고 함성을 지르듯 우리를 부른다. 하늘부터 들판의 나무, , 열매가 부른가 하면 이산과 저산까지 더 큰 몸짓으로 불러댄다.

노란 은행잎 색깔 가을 한 장이 온갖 낙엽과 추억들과 어우러져 그려보는 수채화는 마음 벅차다. 잠깐 동안 있다가 달아나면서도 많은 것을 남기는 계절의 매력은 어느 계절 못지않다. 봄여름이 가을을 위해 있는 것처럼 정성을 다하여 정열을 다 받히는 것이다. 그리고는 모든 걸 내려놓고 겨울준비를 서두는 것이다.

한 해를 보내고 나서 이야기 거리를 많이 만든 이들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우리들의 한 해가 가을에 걸려있다. 다른 것 보다 먼저 가슴에 가을 풍경 하나 담는다. 하나의 목표가 일단락되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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