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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책-시

나에게 오는 봄

 

 

나에게 오는 봄

 

이 춘 명(시인)

 

 

겨울 외투를 빨다

추운 날 감싸주던 고마움

채곡채곡 개어 장롱 깊숙이 넣는다

 

장갑 목도리 털모자

바람 막아주던 따스함

곱게곱게 개어 다시 겨울을 기다린다

 

나를 감싸는 명함을 벗는다

이름 앞에 달린 명예

사진 밑에 깔린 프로필

발품으로 사들인 얼굴들

한겹 한겹 내려놓고 오로지 나였다

 

겨울이 가고 삼월

모종을 위해 화단 일구듯

다시 나로 돌아와 빈 땅에 서서

초심으로 모든 것에 답례하는 봄

 

 

 

봄을 맞는다. 두껍게 나를 감싸던 여러 가지 껍질을 벗는다. 겨울 외투, 장갑 목도리 털모자, 명함, 명예, 프로필, 얼굴을 내려놓는다. 다시 나로 돌아오는 봄이다. 추워도 더워도 나를 감싸는 많은 종류의 물건들이 없이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봄은 새로 시작하는 계절이다. 그리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의미를 되새겨주는 시간이다.

모두가 돌아가고 싶은 소년기를 생각한다.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만 같던 꿈의 시절이다. 싱싱하고 아름답던 추억들이 샘물처럼 고이는 우물을 누구든 가슴에 지니고 산다. 산업의 발달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수많은 시달림 속에 빠트려 허우적거리게 한다. 내가 아닌 나로 살게 만든다. 내가 나로 돌아온다는 사실은 귀한 일이 되었다. 나를 모르고 살다가 나를 찾아 다시 살도록 나에게 오는 봄은 부활의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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