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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첵-수필

어머니를 그리며 - 이경호

                                                                                 어머니를 그리며

 

                                                                                                                                                     이 경 호(수필가)

 

 

 

  새벽 4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밤늦게 또는 새벽에 오는 전화는 신경이 예민해진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드님, 어머님께서 위독하니 빨리 오십시요.”

 “1시간을 못 넘길 수도 있습니다.” 다급한 목소리가 잠을 쫓는다.

  지난해 여름은 정말 매서운 더위였다. 에어컨 바람은 물론 선풍기 바람까지 싫어하는 어머니에게는 혹독한 형벌이었다. 부지런함이 몸에 배인 탓에 매일 찾는 경노당과 성당 출입이 화를 불렀다. 노년에 체력이 약해지고 바깥환경에 적응하는 힘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오십부터는 한 해 한 해가 다르고, 육십이 넘으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또 다르고, 칠십에는 한 달 한 달이, 팔십이 넘으면 하루하루가 다르다.”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가을·겨울이 지났지만 어머니의 기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올봄에 돌아가셨다. 신정 연휴를 가족과 함께 잘 보내시고, 동생들이 돌아가자 갑자기 치매가 심해졌다. 날자와 시간을 잠깐 잠깐 혼돈하시던 이전과는 달리 불이 났다, 도둑이 들었다며 무서워하시고 공포에 떠셨다. 급기야 한밤중에 밖을 나가시거나 옷을 입은 채로 샤워를 하셨다. 할 수없이 노인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입원하신지 2달 만에 돌아 가셨다. 어머니가 그토록 기다리시던 개나리꽃은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남의 잘못한 것은 말하지 않는다. 모든 일은 본인의사에 맡기고 기다려 주신다. 어떤 일도 급하게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봄바람처럼 부드럽지만 체면을 소중히 여기셨다. 내가 어머니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머니 가시기 한 달 전부터는 식사와 대소변에 간병인 도움이 있어야만 했다. 착한 아이처럼 음식도, 간식도, 물도 잘 받아 드셨지만 매우 난감해 하셨다. 대소변은 가능한 참으셨고, 막내딸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보시곤 하였다. 하지만, 딸에게 조차도 치부를 보인다는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 하셨다. 2주 전 부터는 생명연장을 거부하는 듯 곡기(穀氣)를 끊으셨다. 미음을 준비하여 드시게 하였으나 입을 열지 않으셨다. 영양주사를 맞게 하였으나 주무시기만 하셨다.

밤공기를 가르는 택시 속에서 지난 일요일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아범아, 추위가 풀리면 아버지 산소 좀 다녀오자.”

  정신이 없는 중에도 아버지 산소의 개나리를 기억해 내신 것 같았다. 언제부터인지, 어머니는 아버지 산소 주위에 개나리꽃나무를 심으셨다. 매년 우수·경칩이 지나면 꽃나무의 가지치기와 흙덮기 등의 손질을 하였다. 봄이 되면 묘소 주위는 온통 진노랑 꽃으로 둘러싸이게 된다. 아버지에게 잘해드리지 못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제일 먼저 피는 노란 봄꽃으로 선물 하고 싶으신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형제들이 모두와 있었다. 어머니의 이마는 따뜻한데 돌아 가셨다고 한다. 숨을 가만히 내쉬기만 하고, 들이마시지는 않는다고 한다.

한 세 번, 더 숨을 내쉬기만 하다가, 그러다가 내쉬지를 않습니다.” 동생이 흐느끼며 말했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유해를 화장했다. 한줌의 하얀 재를 백자항아리 속에 넣고, 아버지 옆에 모셨다. 새파란 하늘에 하얗고 고운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봄을 느끼기에는 아직도 쌀쌀하고 춥다. 개나리꽃 나뭇가지를 스친 칼바람이 내 심장을 헤집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 육신은 한줌 흙으로 돌아갔지만, 어머니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 산소에 다녀오자던 말씀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잘못한 것만 생각난다.

이번 주말에는 어머니 묘소에 다녀올 예정이다. 산소 주위에도 샛노란 개나리꽃이 만발해 있을 것이다.

 “어서 오게.”라며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계실 것이다.

  개나리꽃을 볼 때면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개나리꽃은 내 아픈 상처를 덧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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