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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첵-수필

함성 - 황영원

                                                                                       함성

                                                                      

                                                                                                                                                         황영원(수필가)

 


 예상을 했었지만 한 뼘이나 자랐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박스의 비닐을 걷어 내었을 때 그들은 내 멱살을 잡기라도 할 기세로 창백한 팔을 위로 휘젓고 있었다. 어쩌면 만세를 외치는 무리의 함성 같기도 하고 부당한 구금에 항거하는 폭도들의 섬뜩한 눈빛 같기도 했다. 미안하다, 이런 당혹감뿐 아니라 거기에는 독이 들어있는 걸 알기 때문에 집으려던 손이 잠시 멈칫 했다.

  이런 모양은 아내와 제주도에 여행 갔을 때 보았던 굼벵이 동충하초를 떠올리게 한다. 겨울에는 벌레로 살다가 여름에는 풀로 산다 하여 동충하초冬蟲夏草라 부른다. 가여운 곤충의 몸을 숙주로 삼아 모든 것을 빼앗는 잔혹성과 그 정직하지 못한 삶이 못내 가증스럽다. 이것도 종을 초월하는 어떤 기이한 우화라고 하면 옳을까?

  감자의 싹은 이런 기생균류의 약탈 과정이 아닌 식물의 지극히 자연스런 생장 현상인데 선입견 때문에 잠시 오해를 했던 것 같다. 감자는 오랫동안 햇볕에 놓아두면 초록색으로 변하며 아린 맛이 난다. 솔라닌이라는 독성 물질 때문인데 구토와 현기증이 나고 심하면 호흡곤란까지 온다. 특히 싹에는 강한 독이 들어있어서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얼마전 얄팍한 상식으로 싹을 도려내고 맛있게 먹었기에 그 애물단지 같은 폭도들을 이남박에 담았다. 식물에 독이 있다는 것은 자신의 종을 번식시키기 위함일까? 아니면, 우리를 더 지혜롭게 만들기 위함일까?

  이 감자는 우리 텃밭을 부치는 고향 모교회 지 권사님이 열심히 가꾸어서 한 박스 나누어 주신 것이다. 흙을 털어내고 좋은 것만 골라 담은 감자 박스에서 권사님의 정갈한 성품과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우리 밭에서 얻은 대부분의 소출은 교회에서 주일날 점심 자원봉사에 드려진다고 했다. 이렇게 서로 섬기고 굄을 받는 삶은 아름답다. 내가 박스 밑에다 신문지를 몇 장 깔고 위에는 검은 비닐로 덮어서 나름 차광을 한다고 했었지만, 박스의 작은 틈새로 들어온 희미한 빛과 축축한 습도가 잠자는 감자를 깨웠던 모양이다. 감자는 통풍이 되는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두면 좋다.

  비단 감자의 순 때문에 놀라며 잃은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감자를 깎을 때 육질을 파고드는 칼날에서 경쾌한 소리가 난다. 이 소리는 인위적인 장치에서 듣는 그런 복잡한 음이 아니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정직한 음이다. 사과를 과도로 깎을 때 나는 거친 소리와는 느낌이 다르다. 감자와 칼이 차분히 순응하며 조우하는 교감의 음이다. 삼십 년 넘게 아내와 살아오면서 그녀의 물음에 내가 이렇게 경쾌한 음으로 살갑게 대했던 적 있었던가? 나는 사랑의 빚이 많다.

감자의 육질에는 결이 없고 수분과 전분이 많아서 칼의 날을 받아들일 땐 매끄럽고 삶으면 쫄깃하다. 이렇게 고요한 아침에 감자와 내가 소리로 교감하며 한 생명을 감사로 받으며 그 사명을 완수하도록 돕고 있다.

  이렇게 감자를 벗기면서 아무런 미동도 없는 이 식물의 어떤 고귀한 사명을 생각해 본다. 마치 미문을 통해서 대제사장의 앞으로 나간 양과 같다. 양을 고통 없이 잡아서 피를 제단에 뿌리고 번제를 드리던 그 시간으로 들어서며 묵상한다. 이렇게 연상의 꼬리를 물고 가다 보면 결국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만나게 되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한없이 가라앉는 내가 위로 들어 올림을 받는다.

  어느 겨울철 아침 햇살이 유리창으로 들어올 때 무꽃이 화사하게 혼자 피고 있었다. 아무런 도움 없이 오직 빛과 공기만이 몸을 감싸고 제 몸에 있는 수분으로 밀어 올린 꽃대에서 조그마한 가냘픈 맑은 미소를 보았다. 난 그보다 더 아름다운 꽃의 추억은 아직 없다. 자라는 환경이 열악해도 그가 받은 소임을 다하는 기특하고 정직한 꽃을 보면서 실로 광야에서 들어 올린 놋뱀만큼 힘찬 외침의 파문이 인다.

  터앝에 몇 줄 채소를 심고 밭둑에 호박도 심었다. 부지런한 호박벌이 아침부터 찾아와 노란 꽃 속을 드나들며 잉잉거린다. 나는 여름의 아침마다 일용할 싱싱한 무공해 채소 한 소쿠리를 얻었다. 그 잎과 줄기와 맺힌 작은 꽃들을 쓰다듬으며 감사했다. 이것은 내 친한 벗에게 하지도 못했던 묘한 감정이며, 심어놓고 물 주고 잡초를 뽑았다는 수고의 기쁨보다 숨겨진 비밀의 뜰에 내가 한 발 들여놓은 희열이었다.

  내가 잠이 깨기도 전에 내려준 이슬과 꽃의 수정을 도운 미물들의 분주함이 내게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되고,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아침마다 물관을 밀어 올리는 식물과 장엄한 빛의 침묵을 느끼며 나는 생명의 노래를 부른다. 모든 싹은 축복을 받았다. 하나님의 약속이 숨겨져 있다.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그 약속의 말씀이 심겨져 있는 것이다.

  지나가던 이들은 마당의 포도를 따지 않는다고 나무랐다. 나는 포도나무 그늘이 좋고 포도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 처음에는 잎을 갉아먹는 벌레가 여기저기 나타나서 투명하게 그물처럼 뚫어 놓더니 얼마 지나자 개똥지빠귀가 날아와 그 벌레들을 잡아 주었다. 포도가 다 익은 후에는 작은 손님들이 찾아와 만찬을 즐겼다. 말벌들은 익은 포도즙을 먹고 땅바닥으로 툭 툭 떨어졌다. 그들은 "술에 취하면 떨어져도 하나도 아프지 않아!"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진실한 말씀들이 가슴의 치밀한 공간에 빼곡히 쌓인다. 모든 진실에는 힘이 있어서 어리석은 귀에는 들리지 않는 큰 울림이 있다. 오늘도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과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호산나!" 외치던 무리의 환호성이 내 귓가에 쟁쟁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