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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책-시

혁대의 무늬 - 허성열

혁대의 무늬

 

                        허성열(시인)

 

 

한 발 나아갈 때

두 발 물러설 때

허리를 잡아주는 단단한 버팀목

더 단단한 혁대를 갖기 위해

뒤꿈치에 물집이 생겼다

 

하루에도 수없이 오르내리는

구멍과 구멍사이

하얀 실밥이 돋고

검은 반점이 생긴다

 

아버지는 위로 밀어라 하셨고

어머니는 지나치지 말라 하셨다

나의 중심에는 하얀 무늬가 새겨졌다

 

올라가는 길이 익숙한 나에게

성자처럼 나직이 들려오는

삶의 음성

나의 중심

- 허성열의혁대의 무늬전문

 

 

   생활 속에서 우리는 많은 매체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다. 이들에게 인격을 주어 서로 간에 대화가 오간다고 생각하면 무상으로 받던 도움이 단절되는 경우가 하다할 것이다. 어찌 보면 일방적인 요구로 강요되는 도움의 기회였던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소통이 되지 않기에 무관심하게 받아만 들였던 고마움에 대하여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혁대를 매체로 놓고 관찰한 한 예를 통해 화자는 깊이 들여다보고 입장을 바꿔 나눈 대화의 결실로 얻은 한 편의 시는 우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도움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갑작스런 천재지변으로 도움이 중단되었을 경우를 상상이라도 하고 싶지 않지만 서로는 늘 주고받는 관계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옷을 입고 벗으면서 혁대에게 주는 상처의 흔적을 그냥 넘길 수 없는 미안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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