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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책-시

빈 깡통

 

빈 깡통

 

최 동 현

 

 

빈 깡통을 무심코 발로 찼다

깡통은 아픈 소리를 내며

저만큼 굴러간다

 

나도 빈 깡통처럼 차여서

아픈 소리를 내며

저 멀리 굴러간 적이 있다

 

나에게 빈 깡통이 된 사람은 없을까

아픈 소리를 내며

아니 아픈 소리도 내지 못하고

멀리 굴러간 사람은 없을까

 

빈 깡통을 주워들고

한참을 귓가에 대어본다

 

 

빈 깡통처럼 길거리에 버려져 굴러다니는 존재를 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보이는 빈 깡통을 발로 찼다.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통을 호소하는 비명이나 신음을 내는 소리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지 않고는 들을 수도 없겠지만 그 아픔을 모른다.

차인다는 것은 약자다. 강자로 하여금 무시 받고 짓밟히는 순간의 존재감은 사정없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이 인간의 모순된 행동 중에 하나다. 강자에게 받은 푸대접을 약자에게 분풀이하는 심리현상에서 나온다.

과부가 과부사정을 안다는 말처럼 당해본 사람만이 아는 속사정이 있다. 나와 같은 경우에 놓인 사람에겐 그런 억울함을 겪지 않도록 해주어야겠다는 생각 말이다. 그러나 당한 것만큼 되갚아주겠다는 못된 근성도 있다.

그러나 시 속에서 이야기하는 시인은 무심코 찬 빈 깡통에게 미안하다. 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기억하고 그의 고통을 이해하려한다. 빈 깡통은 길거리의 단순한 깡통이 아니다.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약자를 대변하는 비유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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