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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책-시

사월 사이 - 전용숙

사월 사이

                     

                       전 용 숙(시인)

 

 

내가 준 건 시간 이었다

꽃 피워 손등 위에

한 잎 떨어질

바람 불어 먼 곳 소식

가슴에 담길

구부정한 정신 바로 세워

새 길 바라 볼

 

사월과 나 사이에

진득한 기다림이 없었다면

봄이라 느끼지 못 할 날

바람도 그저 성가신 것 뿐

 

저 나무 사이를 돌아온 듯

곁에 선 바람 많은 사월

눈물 흘려도 숨길 수 있어

안개에 갇힌 흐릿한 눈으로

사월을 본다

 

사월이 내게 준 건

웃으며 눈물 흘리는 얼굴

꽃을 핑계로

울어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다

 

사월 사이에

난 운다

꽃이 피는 바람 속 거리를 헤매며

 

 

  사월과 나 사이에 보이는 것은 무얼까, 나는 단지 기다림을 갖고 손등에 꽃잎 떨어질 시간이나 먼 곳 소식 담을 시간, 바로 세운 길 하나 볼 수 있는 시간을 사월에게 주었다.

  너무 짧아 진득하지 못하면 봄 인줄 모르고 그냥 날아갈 사월은 꽃을 핑계로 꽃바람을 맞고 울을 수 있도록 허락해준 것뿐이다. 그러나 봄이 오더라도 새로운 생명 지닌 문명을 피워낼 수 없음을 진단했던 TS엘리엇의 잔인한 달이 아니라면 사월의 큰 선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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