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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책-시

원시인에게 - 임문혁

원시인에게

             

                          임문혁(1983.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인)

 

 

어느 날 부턴가 가까운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신문에 까만 벌레들이 가물가물 기어간다

팔을 뻗-어 멀-리 놓고 보아야 더 잘 보인다

 

축하합니다, 노안老眼이십니다

입때껏 작은 것, 쓸데없는 것, 못된 것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것들까지

다 보고 사시느라 얼마나 힘드셨나요

 

허허, 이제 내가 원시인이 되었구나, 그래 이제부터는

코앞의 일, 눈앞의 푼돈, 발 밑 길바닥만 보지 말고

저 멀리 아마존의 밀림, 북극의 빙하, 아프리카의 퀭한 눈을

보아야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야지

저 멀리 하늘나라까지도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몸의 여러 부분들이 태어나서부터 수십 년을 사용하다보면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눈의 경우도 예외일수는 없다. 책을 많이 읽거나 바르지 않은 자세로 인하여 눈이 나빠진 경우에 해당된다. 어렸을 때 가까이 있는 것만 잘 보여 근시여서 교실 칠판이 안 보여 앞자리에 앉기를 원하던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차츰 가까이에 있는 것을 보려면 침침해져 불편을 겪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멀라 있는 것들은 잘 보여 원시라 하였다. 그런 눈을 노안이라고 불렀다. 그런 사람을 원시인이라 부르기로 하고 제목으로 붙인 것이다. 신문 글자들이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가물가물할 뿐이다.

  그동안 온갖 볼 것 못 볼 것을 다 보느라 애썼다는 위로의 말이 튀어나왔다. 이제는 멀리 있는 것을 시야를 넓혀 보지 않았던 것들을 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물론 치료나 보조 도구를 써서 성능을 복구할 필요도 있다.

  문제는 우리의 생활 자세를 바꾸어 보자는 주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야기의 매체는 원시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시의 울림은 보다 넓게 퍼져나가는 힘을 지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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