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집해설

「베이비박스문학회 동인지」서평

베이비박스문학회 동인지서평

 

희망을 남겨두는 베이비박스


윤 제 철

 

1.들어가는 글

 

  베이비박스는 부모들이 양육을 포기한 영아를 임시로 보호하는 간이 보호시설이다. 2009년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많은 아이들이 들어왔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오는 아이들이라 해서 모두가 버려진 아이들이 아니다. 많은 부모들은 다시 아이를 찾으러 오겠다고 그 아이들을 데려다 놓을 때 쪽지를 남기고 돌아갔다. 실제로도 상당수의 아이들은 부모들이 직접 찾아와 데려갔다. 여건상 맡겨놓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가 생길 때까지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정신을 받들어 베이비박스문인협회는 성원과 함께 창작활동을 통하여 그 뜻을 널리 알려왔다. 2019년을 보내면서 활동상황을 확인하고 의의를 다지기 위한 회원들의 작품 중에서 선정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서평으로 작품세계를 조명하기로 한다.


2.희망을 남겨두는 베이비박스

 

빛도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어둠의 바다로

오직 이르는 것은

생명의 고동 소리

 

잔물결 쉼 없는 바다를

돛대도 없이 약 삼백일

밤하늘 길잡이 북극성처럼

오로지 핏줄 따라나선 길

 

혼돈과 침묵의 깊은 동굴을 나와

하늘의 문을 여는 너의 몸짓

어느 별에서 왔을까

 

젖줄이 흐르는 나일강 위로

눈물과 소망이 바구니에 담겨져

아기 모세처럼 이른 곳

생명의 방주!

- 고은주의생명의 방주전문

 

  생명이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살아 있는 상태를 말한다. 부모가 합법적인 관계 여부를 떠나서 태어난다는 자체만 해도 엄청난 경쟁을 뚫고 이 세상에 존재를 드러내는 기적이다. 귀하디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신비의 공간에서 생겨 핏줄을 따라 나서며 자라난 생명체가 이 세상에 나와 박수를 받아 마땅한 사건의 중심에서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부모와 형제들이 함께 할 집으로 가는 평범함조차 누리지 못하고 목적지 없이 네모반듯한 모양으로 만든 배 안에 띄워지는 것이 이 세상의 출발인 줄 알고 살아갈 이름 없는 생명 하나 아픈 이미지로 다가선다.

 

고래는 바다를 떠났다고 단정했지만

밤마다 검은 이별을 할 때면

누군가 그려낸 노랑 파랑 빨강 고래는

호로의 물길 따라 틈 좁은 골목을 올랐다

어느 지하 방에서 여자를 희롱 할 때

불쑥

그 여자 가슴에 얼굴 내민 고래

,

거기 있었구나

달이 동백을 키운다는 언덕 어디쯤에서

물의 땅을 가리키는 하얀 손

다시 모호해진

남쪽 어딘가에 놓고 온

모항의 길

- 김동광의물의 언덕전문

 

  고래는 덩치가 큰 두려움을 지닌 상징적인 존재다. 이미 없어졌다고 믿고 살았지만 아직도 어두운 그림자에 묻혀 유혹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밤마다 지쳐 쓰러지는 하루가 현실과 이별을 고하는 순간에도 불쑥 얼굴을 드러내 놀라게 하고 있다.

  기억의 저편 어느 항구를 근원지로 삼고 출현해 물이 있었던가 싶은 언덕을 따라 고래가 섬뜩하게 다녔을 그 길이 그려지고 있다. 불투명한 미래를 맞이하면서 내면의식 속에 잠재되어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현대인의 심리상태를 깊이 있게 묘사하는 표현전략이 성공하고 있다.

 

당신의 아픔이 몇 도인지 몰랐습니다

계기판에 뿌옇게 엉겨 붙은 숫자들이 비웃을 때마다

성긴 마음들이 올라붙어 서는

서러워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핑계라면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알지 못 인간의 반쪽 낯이였는 지도 모릅니다

흘깃 한번 훑어보더니 반만치 달아나버렸으니까요

 

잃어버렸거나

외면해 버렸거나

느끼지 못한 미열이 온밤을 휘저어놓고

태양처럼 끓어올라 보라며 핀잔을 주네요

 

참 몹쓸 사람

- 김장미의아픔의 온도전문

 

  아픔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괴로운 느낌이나 상태다. 그 정도를 온도로 측정하고 위로하고자 한다. 당신에게 아픔은 준 상대를 나무라고 싶다. 온도가 측정된다면 그 자체를 믿으려하지 않고 오히려 화를 끓어 올리고 말 것이다. 가려져 있는지 아예 반쪽이었는지 보이지 않는 낯을 찾아낼 수가 없다. 한길 마음속을 볼 수가 없다.

  자기 본위로 반만 보고 생각하는 족속이 사람이다. 저질러 놓은 상처를 치료해주려 하지 않는다. 책임소재를 따지려 든다. 아픔의 온도는 상대방의 몹쓸 온도에 비례할 뿐이다. 본래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불량품이다. 아픔은 몹쓸 사람이 준 상처로 은유와 풍부한 어휘력이 빛나고 있다.

 

달빛이 보고 싶은 밤

그저 멀찍이서 안부를 묻는다

보고 싶다고

보고 싶었다고

 

잠시 잊은 줄 알았는데

그저 마음속에 고이 숨겨두고

홀로 짝사랑하고 있었다고

 

은빛으로 내리는 달빛에

충분히 내 창은 반짝이고

내일로 데려다줄 시간의 마법에

밤잠을 설친다

- 김정오의달빛에게전문

 

  달에서 빛이 비쳐오면 어두운 길은 밝아진다. 달이 밝은 날에는 볼 일이 많은 달이 화자를 만나려고 먼저와 기다리기도 했다. 날이 흐려서 볼 수 없는 날도 있지만 대기오염으로 시야를 가리면 궁금하여 안부를 묻고 싶다.

  상대가 생각지도 않는 줄 알고 혼자서 마음에 담고 있었다. 은빛 달빛으로도 내 창은 반짝였고 너무 환해 잠마저 쫓아내고 있다. 달빛을 매체로 화자와의 관계를 더욱 가까이 끌어 당겨 떨어지지 않으려는 긴밀한 사이를 확인하려 한다. 잠시라도 멀어질까 두려워 한시도 마음 놓을 수 없는 긴장감을 신축성 있는 리듬으로 긴장 완급을 주도하고 있다.

 

긴 터널을 지나온 듯

깜박이는 눈동자가 처연하다

잃었던 시간을

오늘 밤엔 보상받자

 

아침이면 태양의 질투에

또 다른 날은 구름의 시기에

웃는 날 만큼 슬픈 날도 많을 거야

 

별이 지면 늘

또 이렇게 노래한다

그립다 별 보고 싶다 별

 

별은 후회하지 않는다

단지,

이 밤을 마지막처럼 빛날 뿐

 

사랑한다 별

오늘 밤은

밤이라도 새려나 보다.

- 문문자의전문

 

  예전엔 가난하거나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위로 했건만 이제는 잘 보이는 날도 많이 줄고 자기 일에 성공한 스타들을 보고 위로 받을 뿐 존재가 미약하다. 그러나 오늘은 깜박이며 잊었던 시간을 찾았다. 태양이나 구름의 질투와 시기에 슬퍼했고 별이 지면 그리워지지만 항상 마지막 밤을 맞은 것처럼 빛난다.

  전성기를 보내고 존재로 의미를 갖는 것이 어디 별뿐이랴, 기왕에 기억을 찾은 오늘 밤이라도 새라는 격려에 힘을 받고 인기를 잃었다고 실망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짜릿한 전율로 가슴에 스며든다. 풍부한 어휘와 탁월한 시어의 선택은 이미지를 선명하게 비쳐준다.

 

겨우내

구부리고 잠자던 봄이

우연히 봄이 되었을까

 

온기가 있다지만

땅속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며 아팠을 봄

 

힘들게 밀어내고

우리들한테 와주는 봄이

희망이고 향기로워 참 좋다.

 

그런 봄을 보면

왠지 숙연해진다

- 박순옥의전문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구부리고 잠자던 봄이 땅속을 벗어나려 몸부림과 아픔을 하소연 했을 것이다. 노력을 한 뒤에 얻어지는 결실로 다가오는 봄은 분명 선물이다. 새롭게 무언가 이뤄보고 싶은 충동과 함께 우리에게 와준다.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듯 꽃들은 꽃이 지면 그 순간부터 다음 꽃을 피우기 위하여 준비한다.

  언제나 때를 맞춰 사계절을 번갈아 찾아주는 일을 기계처럼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생명을 갖고 사는 동물과 식물이 공생한다는 사실 앞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함께 어우러짐에 공감과 깊이 느껴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은 봄을 맞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다.


공원의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작은 나무 잎새에 내려앉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잎새

커다란 잎사귀를 쫑긋 세우고

햇살의 이야기에 신났다

 

어떤 재미난 이야기에

잎새는 저토록 간드러지는지

궁금해 죽겠는데 엄한 매미만 울어댄다

- 서수정의여름 이야기전문

 

  나뭇잎이 빽빽하여 햇살을 우산처럼 가려져 그늘에 묻혔던 작은 잎새, 비집고 들어온 햇살 이야기에 신이 났다. 엉뚱한 매미만 자꾸 울어 들으려는 햇살소리를 못 듣게 방해한다.

  두각을 발휘하려해도 주변의 여건이 좋지 않다가 우연찮게 마주한 인연에 즐거운 시간을 만난다. 남의 좋은 일에 궁금한 주변의 많은 관심 때문에 야속한 내면 의식의 흐름이 절묘하게 묘사되었다. 그늘 속에 잎새는 햇살을 만나 녹색 식물이 빛에너지를 이용하여, 흡수된 이산화탄소와 수분을 유기물과 산소로 변환시켜줘야 하는 생물학적 상관관계가 자연과 사람의 생활을 비유하여 상부상조하는 섭리를 여름이야기로 들려준다.

 

내 마음에 

행복이란 작은 주머니가

들어 있어요 

 

그 속엔 웃음도 들어 있고 

즐거움도 가득 들어 있죠!

 

조심조심 

나의 행복을 주워 담아서 

임들께 나누어 주고 싶어요 

 

너무 행복한 나머지

욕심이 넘쳐 나의 행복

주머니가 터질까 봐 

 

내 웃음을 내 이웃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요

- 선지현의행복주머니전문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행복이라 한다. 행복 안에는 웃음도 있고 즐거움도 있다. 어떤 이는 행복을 쫓아다니다 보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였다는데 투명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을 주머니에 담고도 남아 나눠줄 생각을 했다.

  부러운 일이지만 행복이 곁에 다가가도 알아보지 못하면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다. 화자의 눈에는 행복이 잘 보이고 욕심을 내서 주머니를 채웠다. 불행을 만나더라도 설득을 시켜 행복으로 만들었다. 불행을 만나더라도 피하거가 다투지 말고 잘 받아들이면 행복이 되는 걸 몰랐다. 행복 이야기 속에 얼비치는 불행이야기를 숨겨 행복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아이는

작은 손 주먹 꼭 쥔 채

잠에서 깨어난다

버려진 현실을 모르기에

배고픔에 보채며 목 놓아 울다

플라스틱 우유병으로

엄마의 젖가슴을 대신한다

 

배가 부르면 해맑은 웃음으로

다시 잠이 들고

누군가의 사랑이 그리워도

그렇다 할 줄 모르는

우리의 아기들이 오늘도

배부르면 웃고 배고프면 울고

또 하루가 간다

 

없는 줄도 모르는 엄마 대신

누군가 가슴을 꼬옥 껴안아

세상의 위로 들어 올려

빛나리라고, 네 세상이라고

하늘 아래, 하나 부족함 없는

그런 별빛이라고

그런 웃음이라고

- 손장순의베이비박스의 하루전문

 

  베이비박스는 버려진 현실을 모르는 천사들의 동네다. 엄마 뱃속에서 작은 손 주먹 꼭 쥔 채 지내던 습관을 그대로 지닌 채 하루를 보낸다. 엄마 얼굴을 익히기도 전에 탯줄로 빨던 사랑을 병우유로 받아야 하는 사랑과 아직은 부족함이 없는 것처럼 웃는 얼굴이 슬프다.

  어떤 대책도 없이 사랑만으로 잉태되었지만 생명의 고귀함을 알기에 말 떨어지지 않는 안타까움과 슬픔의 언덕을 넘으며 여유시간을 달라며 매달리는 하소연을 뿌리치지 못하는 사랑의 손길을 잡아주는 곳이 베이비박스다. 사람이 갖고 있는 사랑을 모두 꺼내주어도 갚을 수 없는 큰 사랑이 베풀어지고 있다.

 

바닷바람 불어와

송향 맡으며 걷는 백사장

한여름의 눈 밟는 소리

모래 발자국 속에 추억 남기며

푸른 물에 몸 담근다

 

백사청송 변산해수욕장에서

추억을 만들어 가니

석양은 고슴도치 머리 위로

붉은 주단을 펼치며

수평선 너머로 숨는다

- 신현각의변산 해수욕장전문

 

  한여름에 맡는 송향과 눈 밟는 소리, 고슴도치 머리 위로 븕은 주단을 펼치는 석양, 화자의 감각을 파고들어 변산 해수욕장이 주는 이미지다. 서해안에 위치한 해수욕장에서 해가 넘어 가도록 추억을 만들어 내는 화자의 감성이 담겨있다.

  송향을 맡는 산책은 서해안의 특징이다. 아마도 동해를 택하지 않는 이유일지 모른다. 맑고 푸른 동해바다로서는 눈밟는 소리가 듣기 어려울 것이다. 고슴도치는 서산 산등성이에 서있는 나무 가지가 아닐까 싶다. 서산에 걸려 있는 태양이 가시에 찔린 것만 같은 아픔을느낄 수 있다. 낭만이 함께 하는 해수욕장의 풍경이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진다.

 

낙인이 찍힌 듯이 붉어진 들녘에서

엽서에 한 줄 사연 그대에게 보낸다

길 위에 뒹굴고 있는 세월의 추억담아

 

낙관 찍혀 매달린 저 붉은 나뭇잎들

엽기적인 어울림에 두 눈은 멀어가고

길가엔 먼저 떨어진 낙엽들의 아우성만

- 우현식의낙엽길에서전문

 

  붉어진 들녘과 매달린 저 붉은 나뭇잎들이 봄에는 싱싱하고 푸르렀던 세월의 추억을 지녔다. 누군들 길가에 먼저 떨어져 아우성치는 낙엽이 되길 바랐을까, 1연에서 3행을 1, 2행이 행동으로 풀어주는 도치시키는 기법으로 의미를 강조하고, 2연에서는 3, 2, 1행으로 도치를 거듭하고 있어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먼저 떨어진 낙엽들과 매달린 저 붉은 나뭇잎들은 서로 괴이한 것에 호기심과 흥미를 갖고 즐겨 찾아다닌다고 어울림을 호도하고 있다. 가지와 이파리 사이에 정이 끊겨 떨어지면서도 한 줄 사연을 띄우는 낙엽은 땅에 떨어지기 전까지 상념을 저버리지 못한다.

 

언제부터일까

이슬에 옷 젖듯 젖어 들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바람결에

햇살이 비추면 그 빛에

점점 그렇게

 

특별해 특별하지 않은 날

나는 네가 되어있었다

- 이금주의중독전문

 

  중독은 술이나 마약 따위를 계속적으로 지나치게 복용하여 그것이 없이는 생활이나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슬에 옷 젖듯 젖어드는 과정을 닮았다. 바람이 불면 보잘 것 없는 나약한 바람결에도 요지부동이던 물체가 부스러져버렸다. 햇살이 비추면 그 빛에 맑고 선명하던 색감을 자랑하던 페인트칠이나 그림의 색깔이 날아 가버렸다.

  좋아하는 것에 대하여 닮아가는 과정을 인식 못한 어느 날 내가 아닌 너로 변해있었다. 닮아가는 것은 습관과 중독의 방향과 같이 천천히 간다. 이름 짓기를 소중히 다루는 것은 그 이름처럼 되라고 평생 불러주기 위한 또 하나의 중독이다.

 

어쩜 저리 서로서로

한 몸 되어 잘도 챙기는 걸까?

담쟁이 저세상은 초록빛 세상

싱그러움 가득 안고 아침 인사

먼저 건네는 담쟁이 가족

담장 밑 염소 지나가던 고양이

집 지키던 강아지 멀리 서 있던

암소까지 어슬렁거리며 담쟁이 가족

초록빛 세상 구경하러 온다

밤사이 아기 담쟁이 기어오르다

힘에 부쳤는지 아빠 담쟁이 등에 

업혀져 새근새근 잠들어 있고

어디까지 올라야 끝인지 모른 채

그저 한없이 올라가는 담쟁이 가족

오늘따라 벽은 한없이 높아 보이지만

서로 보듬으며 잘도 올라간다

- 이미선의담쟁이 가족전문

 

 담쟁이는 우리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도 벽을 어렵지도 않게 오른다. 그렇게 사는 것이 삶으로 받아드려져 그러려니 오르며 산다. 하나도 낙오가 없이 서로 한 몸이 되어 챙기면서 산다. 주변에 염소, 고양이, 강아지, 암소까지 담쟁이 가족 초록빛 세상 구경하러 온다. 담쟁이 가족의 이야기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우리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어려움에 도전한다는 것은 희망을 안고 있을 때 가능하다. 아무리 높다하더라도 합심하면 못 오를 게 없다.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는 담쟁이 가족을 우러러 보게 한다. 한없이 높아 보이는 벽도 두려움을 버리고 오를 수 있는 용기가 샘솟는다.

 

둘이서 사이좋게 나란히 같이 가고

두세 발 도약 위해 한 발짝 물러서네

정상에 다다를 무렵 뒷덜미를 잡히네

 

앞서다 잡히면서 웃음은 절로 나고

단 한 번 실수한 말 전세가 역전되네

인생은 요지경 같은 윷판과도 같다네

- 이원구의윷놀이전문

 

  윷놀이를 즐기면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경우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흡사하다 여겨진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질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 미리 대처하지 못하는 가운데 당하는 당혹감은 어쩌지 못한다. 욕심이 과하여 벌어지는 것을 후회하기도 하고 승승장구하던 상대방이 잘못되어 자신이 유리해지면 환성을 지르는 윷놀이 판이다.

  어차피 인생은 승자에게 영광이 돌아간다. 내면에 숨겨있는 내기의 근성을 갖고 무엇을 하던 잘해야 하고 잘 살아야한다는 경쟁심리를 떨칠 수가 없다. 일정한 조건을 걸고 승부를 겨루는 것은 사람이 사는 방법 중에 가장 많이 쓰여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잔잔한 바다는 가끔 파르르 떨게 하는 재주가 있다

높게 치솟는 혈압과 세차게 퍼붓는 욕설이 수평선을 떨게 한다

가끔 달콤한 사탕으로 유혹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우박이 쏟아진다

하얗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진한 회색 먹구름이 되고

잔잔하다가도 세찬 물보라를 만들어 당황케 하는 재주가 있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우산을 쓴 나그네가 서 있다

먼 바다와 빨간 등대는 그를 지켜본다

숨을 죽이고 또 죽이고 파도까지 죽인다

한참을 서 있던 나그네는 발길을 돌린다.

- 장봉균의수평선전문

 

  파도는 잔잔한 수평선을 떨게 한다. 하얗다가도 회색 먹구름이 되고 잔잔하다가도 세찬 물보라로 놀라게 한다. 어두워져 나그네를 발견한 바다와 등대가 파도까지 죽이자 그는 발길을 돌린다. 하늘과 바다가 멀리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선이 수평선이다.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움직이다 화자인 나그네를 발견하고 모두를 죽이고 가라앉힌다.

  누가 보지 않고 놓아두면 발광을 하고 주체를 못하다가도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자중하는 수평선의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수평선을 의인화한 표현 전략으로 신축성 있는 리듬감을 주면서 이미지를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다

 

촉촉한 눈물의 편지

비탈길 난곡을 기어오르는 울음

엎드린 몸 추스르지 못한 마음

영문을 모르는 아기가 뒤척인다

별빛만큼 아득한 우주 속으로

요람은 일렁이는 파도 위를 떠돌며

위태롭게 나대는 일엽편주 마냥

말로 표현 못 할 아찔한 순간이다

가로등 불빛에 젖은 상자

매일 잉태와 출산을 하는 담벼락

뭉개진 가슴으로 이별하는 밤이 슬프다

 

서로가 숨죽이는 순간

문이 닫히고 내빼는 천륜지정

사람아 들리는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아기의 비애(悲愛)

어둠이 혈육의 흔적을 지우고

흐느낌이 서로의 정을 까맣게 색칠한다

아가야 너는 꼭 살아야 한다

희망을 남겨두고 사라지는 밤이 섧다

눈물만큼 쏟아지는 별빛

오늘도 이별의 현장엔 달빛만이 증인이다

사람이 미워지는 날

- 장선호의희망을 남겨두고전문

 

  수많은 고민과 고통 속에 내려진 결정이다.아가야 너는 꼭 살아야 한다는 희망을 남겨두고 가는 밤이 슬프다. 무거운 이 걸음이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기를 숨을 죽이며 접근해야했던 순간을 어찌 잊을 손가, 생명을 살려야한다. 다시 찾아와 아가를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저지른 잘못 두 번 다시 않기를 다짐한다.

  베이비박스는 버려진 아가를 담는 상자일뿐만 아니라 아가를 버린 부모의 약속을 받아두는 상자다. 화급을 다투는 생명의 보존을 위하여 앞장 서는 고귀한 사랑이, 더 이상 버려지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갖는 아직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이별을 견디는 비결은

내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왔던 길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내가 딛는 첫걸음이

새로운 시작이니까

 

모든 이별은 시간이 지나면

물처럼 무디어진다

- 장이란의행복이 행복에게 말합니다전문

 

  행복은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말한다. 이별로 인한 기다림은 죽음보다 고통스럽다고 했기에 이별을 견디는 것은 무엇보다 행복에서 가까워진다. 내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새로운 시작을 권한다.

  이별은 지난 추억을 되새김질 하듯 몇 번이고 돌이켜 생각하며 잊으려고 하면 더 생각난다. 차라리 기억을 떠올리지 않고 새롭게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어느 사이에 잊고 만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 또한 일찍이 포기하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행복은 늘 우리 곁에 머물고 있지만 욕심 때문에 우리는 만나지 못하는 있었다.

 

3.나오는 글

 

  문학동인은 문학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베이비박스문인협회는 베이비박스 사랑을 실천하는 정신을 바탕으로 창작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필자는 그동안 몇 번 출판기념행사에 참여했지만 이번에 서평을 쓰면서 회원님들의 작품을 먼저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베이비박스 사랑에 관한 간접체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활동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가장 큰사랑은 생명을 보살펴주는 일이다. 영아가 버려지는 일이 발생하여 수습하기에 바쁜 현실 보다는 미리 공공기관 차원에서 예방하여 가급적 줄여나가는 사회적 관심이 시급하다고 여겼다. 특히 장애를 가진 영아들은 부모만의 고통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회원님들의 베이비박스 사랑이 작품 속에 잠재되어 철철 넘치고 있다. 이 작품들이 많은 일반 독자들에게 읽혀져 애쓰는 노력이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가 생기는데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며 장선호 회장과 모든 회원님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