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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해설

김창수 시집 해설 - 거 누구 없소

김창수 시집 해설

 

詩人소망, 사랑, 혹은 꿈

김창수 시집거 누구 없소에 나타난 시세계

 

윤 제 철( 시인, 사단법인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1.들어가는 글

 

  오늘을 살면서 함께 호흡했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가깝게 지냈다면 한 집안에서 지내온 부모형제일 것이나 실질적으로 그만큼 가까운 인연이라면 직장동료들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리지 않고 만나야했고 아침에 출근하여 퇴근할 때까지 함께 했다. 정년이 있어 신분이 보장되었으니 더욱 오랜 기간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같은 취미를 갖고 더 자주 만날 수 있었던 동아리에 회원이면 더 말할 나위 없이 가까운 사이다.

  바쁜 일과 중에 틈을 내어 만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던 그 곳이 그립다. 퇴임을 하여 출퇴근은 하지 않지만 끊이지 않고 가끔씩 들려 현직에 있는 옛 동료이자 회원들을 보는 것으로 달래고 있다. 시나 수필을 쓰는 분들로 구성된 세목문학회 동인이다. 동시에 서울교원문학회 회원이기도 하다. 한 직장에서 십여 명의 현직과 퇴임으로 구성되었다.

  그중에 김창수 시인이 팔십여 편이 넘는 시 원고를 내놓으며 시집을 내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침묵을 깨고 나서는 반가운 일이다. 평소에 남과 언성을 높이는 걸 본적이 없고 행동에 흔들림 없이 원만하게 지내온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며. 자신이 한 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소신을 지녔다. 누구의 이야기든 귀를 기우렸고 매사를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실천하는 생활 모습을 보아왔다.

  작품의 일부는 동인활동 품평시간에 만났던 친숙한 것이었지만 상당수의 원고들은 낯이 설었어도 싱그러운 향을 품어 마음을 마주하였다. 옆에 같이 앉아있는 듯 김 시인의 음성이 귀에 울렸다. 내면의식의 만남은 서로를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있는 그대로 솔직한 의사소통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교류의 시간을 맛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각고의 노력으로 빚어진 원고 중에 몇 편의 시를 골라 독자들과 함께 시세계의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2.소망, 사랑, 꿈을 하나로

 

사물함을 열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이

빼곡하게 쌓여있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체육복을 입은 채

햇살 따가운 운동장을

쉬임 없이 뛰어다니며

둥근 공처럼

둥근 세상을 외치던 아이

 

깨알같이 적어 놓은

공책을 펴 보이며

지금은 멀리만 느껴지는

소박하지만

작은 꿈을 보여주곤

수줍게 미소 짓던 아이

 

무엇이 힘들었던지

휴지처럼 구겨진 삶을

가득 끌어안고

홀로 빈방을 지키며

세월의 짐이 너무 버거워

끝내 다가서지 못하던 아이

 

온 종일 비를 맞으며

젖은 땅을 헤매다

흙투성이가 된 신발로

제 갈 길을 잃은 채

창밖만 응시하고 있던 아이

 

사물함을 열면

켜켜이 쌓여 있는

아이들의 삶이

때로는 가슴 벅차게

때로는 가슴 시리게

눈앞에 아련하게 맴돈다.

-교실풍경 8 사물함전문

 

  사물함은 개인의 물건을 넣어 두는 상자를 말한다. 언제부턴가 학생들이 수업을 위해 준비물을 들고 다녔던 걸 교실에 보관해두었다가 사용할 수 있도록 설치하였다. 교실풍경 중에 하나로 담임을 맡은 학급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담겨있다.

체육복을 입은 채/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둥근 세상을 외치던 아이가 등교 목적이 운동하는 것에 두었다면공책을 펴 보이며/ 작은 꿈을 보여주곤/ 수줍게 미소 짓던 아이는 모범생이다.휴지처럼 구겨진 삶을/ 가득 끌어안고/ 끝내 다가서지 못하던 아이젖은 땅을 헤매다/ 제 갈 길을 잃은 채/ 창밖만 응시하고 있던 아이는 환경이 어렵거나 방황하는 경우였다.

  켜켜이 쌓여있는 아이들의 삶이 사물함을 열면 넘쳐나 굴러 떨어졌다. 충분한 힘이 되어주지 못하고 일일이 다 챙겨주지 못해 손이 닿지 않은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그리고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 아이를 포기도 못하고 가슴이 아플 뿐이다.

 

희뿌연 안개 속을 헤집고

안양천 꽃길을 따라

꽃비가 싱그러운 향기 데불고

자근자근 지나간 오월 어느 날

 

저 멀리 사람들은

구름처럼 일어나는

아련한 기억 속으로

깊이 잠기어가고 있다.

 

희미한 등잔 아래서

한 올 한 올 세월을 꿰시던

늙으신 어머님의 까칠한 손이

하얀 미소 가득 그려 놓은 밤길을

 

밤늦은 금천교에는

시든 목련처럼

떨어진 삶의 껍데기들이

바람에 어지럽게 나뒹굴고

 

자동차 경적소리에

실눈 곧추 세운 예배당 처마 위

붉은 십자가,

 

오늘도 말없이

별빛에 기대어 홀로 서 있다.

-십자가 단상전문

 

  오월의 어느 날 내리는 꽃비 안내대로 어머니의 까칠한 손으로 하얀 미소 가득 그려놓은 금천교에 닿는다. 그곳에는시든 목련처럼/ 떨어진 삶의 껍데기들이/ 바람에 어지럽게 나뒹굴고있다. 고통을 모르고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지만 힘겹게 벗어던지며 고통을 덜어야 했다.

  자동차 경적소리에도 예민하게 실눈 고추 세운 붉은 십자가는 남들이 잠에 들어 있어야했던 한밤에도 주위를 살피고,별빛에 기대어 홀로 서 있다녹색 십자가는 몸의 어딘가 분명히 아픈 데가 밝혀진 곳을 고쳐주는 병원이지만붉은 십자가는 어디가 아픈지 모르고 마음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치유하는 곳이다.

  가로등처럼 밤을 지새우며 길을 밝히고 애를 쓰는 것처럼 자신을 필요로 찾아오는 이들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홀로 서 기다려주는 십자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십자가의 역할에 다소나마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는 화자의 소망이 팽배해 있다.


꺾일 듯 꺾이지 않는

약하나 결코 약하지 않는

언제나 높은 하늘 우러러

손 흔드는 갈대처럼

 

금 간 세월의 틈 사이로

거침없이 불어오는 바람 앞에서도

푸른 하늘 보며 참아내던

고마운 엄마 같은 아내

무더운 여름 어느 날

긴 가지 더 길게 늘어뜨려

언제나 영혼의 안식처로

시원한 그늘이 되어 준 나무처럼

 

빈들 같은 세월의 어느 곳에서

주저앉아 있을 때

푸른 그늘로 먼저 다가와

지친 마음 만져주던

고마운 누이 같은 아내

 

자갈밭 흐르는 물

잡으면 어느새 저만치에서

그 깊은 바다 향해

함께 가자던 작은 시내처럼

 

거칠고 굴곡진 삶의 흐름 속

머물고 싶은 그 순간마다

하얀 웃음으로 다가와

등 두드리며 동행해주던

고마운 친구 같은 아내

 

삶의 비탈진 길에서

엄마처럼 참아주고

누이처럼 만져주고

친구처럼 동행해주는

아내가 있어 좋다

-아내전문

 

  결혼하여 남자와 짝을 이룬 여자를 아내라고 한다. 짝을 이루는 데는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라 믿는 이상형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걸 알고 결혼하는 것 같지만 사귀는 동안 좋은 것만 보이고 실제로는 살아가면서 몰랐던 싫은 것 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서로가 맞추어 참고 견뎌가면서 생활모습이나 생긴 모습에 이르기 까지 닮아간다. 점차적으로 곁에 있을 땐 몰라도 없으면 아쉬운 존재가 된다. 어느덧 상대를 통하여 거울을 바라보는 것 같아 나를 보는 것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 몸이 되기 마련인 게 부부인가 보다.

  부모님이나 자식들이 떠나면 더욱이 의지할 데라고는 옆에 같이 사는 아내밖에 없다. 늘 부족한 게 많은 남편과 삶의 비탈진 길에서 엄마처럼 참아주고, 누이처럼 만져주고, 친구처럼 동행해주는 아내가 있어 좋다고 했다.

 

숯불이 타는 동안

저 멀리 있던 밤바다가

방둑을 넘어 슬며시

우리 곁에 와 앉았다.

 

저녁 식탁 위엔 바다가 가져다 준

무의도의 사연들이 하나, 둘 차려지고.

촌로의 자식 그리움이

알맞게 익어갈 때 쯤

밤별들도 내려와 어둠을 밝혀 주었다.

 

아무도 기억하지도, 하고 싶지도 않던

버려진 섬 실미도를 등에 업고

거센 해풍을 맞으며 시퍼런 세월을

숨죽여 살아 왔다는

무의도 사랑 이야기에

밤벌레도 징징 울어대는 밤,

 

숯불이 사그라들고

어느새 까맣게 재가 된 가슴은

천국의 계단이 바라보이는

하나개 해수욕장 모래무지 위에서

바람 가득한 새벽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무의도 여행 2 펜션에서전문

 

  펜션을 얻어 마음에 맞는 시림들이 모여 앉은 펜션 저녁, 집을 떠나 모든 걸 잊고 자연과 함께 익어가는 밤이다. 방둑 넘어 우리 곁에 앉은 밤바다, 무의도 사연이 익어갈 쯤 어둠을 밝히는 밤별, 실미도를 등에 업고 숨죽여온 세월에 징징 울어대는 밤벌레, 재가 된 가슴은 새벽 어깨에 기대 잠이 들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만하여도 직장이나 가정에서 전체의 한 부분으로 역할을 잊지 못했다. 한 단체에 소속된 조연에 불과했던 게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는 무엇 하나 나와 무관한 것이 없다. 마치 나를 위해 존재하는 냥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처음 마주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이곳에서 주인공이 되어간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나를 보는 기회다. 나를 알고 인정할 수 있는 시간을 만났다. 화자는 주위에 모든 것에 감사하고 한결 넓어진 시야를 확인한다.

 

늦은 봄날의 화단 위에

한바탕 벚꽃이 피고 지고

산수유가 노오란 물을 들이는

목련 한 그루 말없이 서 있다.

 

아침마다 수런거리는 교정

봄이 저만치 가는 것도 잊은 채

그늘진 구석에 서서

날마다 교문 밖을 향하여

가지 드리우고 있는데.

 

햇살이 비껴가고

바람마저 머물지 않는

외딴 섬에 갇혀

누구를 기다리며

무엇을 바라보는 것인가

 

긴 기다림 끝에

피어나는 짧은 여운.

 

봄이 훌쩍 떠나 버린 교정에서

또다시 목련은 기약 없는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오월의 목련전문

 

  목련은 봄기운이 퍼져나갈 3월 중하순경, 잎이 나오기 전의 가지에 눈부시게 새하얗거나 자줏빛 커다란 꽃을 피우지만 그늘지거나 골바람이 지나는 싸늘한 곳을 지키느라 뒤늦게 오월에 피는 걸 교정에서 해마다 본다.

  같은 교정인데도 불구하고 양지 바른 따뜻한 곳에서 피는 것을 바라보며 얼마나 애를 태워야했을까, 제철을 기다리다가 뒤늦게 다가온 만개의 여운도 잠시 잊었던 기억을 더듬을 뿐이다. 주어진 여건이 좋지 않아 분재의 고통을 껴안은 듯 차가운 공기로 감싸고도는 하나의 섬 안에 갇힌 모습이 애잔하다.

  마치 남들 보다 능력이 없어 뒤쳐져 빛을 보지 못하는 또 다른 슬픈 얼굴이 얼핏 스쳐지나가는 현실로 떠올리게 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지만 환경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는 상황을 보여준다. 늦게 피었으면 남들만큼은 누려야할 텐데 그만 못한 짧은 시간으로 만족해야한다.

 

머언 바다 위

엄지손가락 치켜세웠던

뱃머리마저 시야에서

사라지던 날,

우리의 꿈도 함께 사라져갔다.

 

하늘도 없는

싸늘한 바다 저 밑바닥

소리 없는 생명의 몸부림만

잿빛 소용돌이로

멍한 가슴 속 끝없이 밀려온다

 

무정한 세월 따라

영문도 모른 체

망망대해 악마의 토굴 속 같은

심연의 바다에 갇혀

부유물처럼 뒹구는 꿈을

사위어가는 목숨 줄로 붙들고

오늘도 버티고 있을 아들, 딸들아!

 

사랑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딸아!

조금만 버텨다오.

우리가 잘못했다.

엄마가 갈게.

 

어버이의 피울음이

붉은 낙조처럼 번져가는 바다 위

한번만이라도 단, 한번만이라도

살아있음에 흔적을 보여다오

 

어두운 밤이면

흐르는 별빛 따라 오너라

-무정한 세월전문

 

  구조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아깝게 어른들의 잘못으로 어린 꿈들을 날려버리는 참사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아픔이 되었다. 자신의 목숨만 귀할 뿐 맡은 소임도 다하지 않았던 몰지각한 행태를 규탄한다.

  「소리 없는 생명의 몸부림만/ 잿빛 소용돌이로/ 사위어가는 목숨 줄로 붙들고/ 오늘도 버티고 있을 아들, 딸들아!아직도 멀리에서 들려온다.

남녀를 불문하고 지위 고하나 노소를 가려 무어라 말 할 수 없게 되었다. 많은 숫자의 말 잘 듣는 아이들이 말 안 듣고 떠돌던 아이 보다 나을 게 없었다. 어른들의 말은 어디에서든 힘을 잃었다. 화자는 그저우리가 잘못했다고 미안해 할 수밖에 없었고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한번만이라도 살아있음에 흔적을 보여다오/ 어두운 밤이면 흐르는 별빛 따라 오너라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심정으로 절규하고 있다.

 

3. 나오는 글

 

 

  김창수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어느 시 한 편이라도 헝클어진 채로 어설프게 내놓은 게 없다. 매체를 대상으로 관찰을 통하여 예민한 감각으로 하나의 시상을 얻으면 원하는 이미지가 만들어질 때까지 시어나 어순을 바꿔가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정신으로 긴장을 살려나가 시의 낯설게 하기와 시인 자신이 말로 설명하지 않은 수많은 말들이 소용돌이치도록 침묵의 기법을 시도하는 데 부지런함을 잊지 않는다.

  시는 시인을 대신하여 문예지나 시집에 글자로 올라 독자들에게 작품세계를 알리는 역할에 대하여 시를 청탁받았을 때, 평소에 여유를 두고 써두었던 시 중에서 좋은 시를 골라 출판사에 제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다 하더라도, 여의치 않아 덜 다듬어진 작품을 급히 만들어 보낸다는 것은 양심의 허락을 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마감기일이 지난다 하더라도 충분히 다듬어서 보내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도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느낌들을 읽고 만나는 시상들을 반기면서 잊지 않으려 메모하고 있다. 일과 중에는 누구에게라도 글을 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서 사적인 휴식시간을 줄여 만들어진 정신세계의 결정체로 보여주는데 열중하고 있다.

  김창수 시인은 성실한 교육자이며 진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 성실함과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에서 보는 한결같은 모습의 그를 신임하게 된다. 작품 속에는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그와 가까이 호흡을 하는 동료들이 아무런 계산도 없이 따르는 그가 부럽다. 현실에 찌든 일상을 아름답게 형상화 시키는 시세계에 들어가 투박한 내 글을 밀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