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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해설

여재학 시집 -「파랑새의 꿈」서평

여재학 제2시집파랑새의 꿈서평

 

관찰(觀察)로 빚은 서정(抒情)

 

윤 제 철(시인, 문학평론가)

 

1.들어가는 글

 

  사람은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글로 쓸 수 있는 능력을 누구나 지니고 있지만 시는 정서나 사상 따위를 운율을 지닌 함축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과 사건들을 통해서 느껴지는 감각으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있는 그대로 보다는 비유로 주제를 감추어 이미지를 결과물로 만들어낸다.

  솔직한 표현을 원동력으로 삼고 있어도 매체에게 자신의 말을 시키는데 몰두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더구나 첫 시집무언(無言)의 연가(戀歌)를 발간한지 얼마 안 되어 두 번째 시집을 내겠다는 원고를 받아들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로 시인들은 시집을 발간하고 나서 보다 나은 시를 써야겠다는 각오를 달리하기 마련이다. 그로인하여 잘 써야겠다는 부담감을 앞세워 자신감을 잃고 방황의 시간을 만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내면의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는 시심을 잊지 말라하시던 스승이신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의 말씀을 생활화 한 여재학 시인의 창작신조에서 비롯된 결과로 믿는다.봄처럼 싹을 내밀고 세상의 봄처럼 꽃을 피웠다는 여 시인의 속마음은 아직도 부끄럽게 세상의 독자들에게 내놓는 시집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제 2시집은 1부는파랑새의 꿈에서 기대와 인내, 2부는싫증난 참선에서 좋음의 이미지와 실리추구, 3부는별이다에서 노력과 즐거움, 4부는너 부르기에서 사랑과 행복, 5부는춘사월에서 갈등과 현실도피로 나누어 구성되었다.



2.관찰(觀察)로 빚은 서정(抒情)

 

①「파랑새의 꿈에 담긴 기대와 인내

 

  꿈은 삶의 간판이다.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어도 꾸준하게 노력하면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정도에 따라 조금은 이루어진다. 기다리는 즐거움을 놓지 않고 이루어진다는 신념은 언제나 가슴을 부풀게 한다. 그리고 허물어지지 않는 튼튼한 토대가 된다.

  꿈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나 먼 당신이기도 하다. 철길처럼 늘 곁에서 바라다보면서도 한 번도 만날 수 없는 기하학적인 존재로 남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떨 칠 수 없다. 그러나 꿈은 인생의 봄을 맞으며 뿌려놓는 씨앗이다. 부지런하게 물주고 거름 주고 김내기하며 정성을 다하는 만큼 결실을 맺는다는 믿음으로 희망을 만들어준다.

 

새야 파랑새야

너의 꿈

나에게 줄 수 없겠니?

나는 꿀 수 없단다

누구나 꿀 수 있는 꿈을

 

네 꿈이 좋은 줄 모르겠는데

모든 사람이 네 꿈을 그리워하니까

또한, 네 꿈이 그리워서...

 

이 풍진 세상을 살려고 하니

나도

네 꿈이 필요할 것 같아

오늘도 파랑새 꿈 좇아 길 떠난다

-파랑새의 꿈전문

 

  누구나 갖고 있는 꿈은 희망사항이다. 그 꿈이 이루어지던 이루어지지 않던 갖고 있기에 기대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갖고는 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꿈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하더라도 파랑새에게 매달려 갖고 있는 꿈을 모든 사람이 그리워하니까 화자는 받고 싶은 것이다. 꿈은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좋고 작은 것 보다는 큰 것이 좋다고 했다.

  파랑새는 우리에게 희망을 의미한다. 희망은 행운과 행복이다. 행복은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행복은 가까이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운을 행복으로 알고 쫓아다니는 것이다.

  남과 다르지 않게 화자도 파랑새의 꿈이 필요하다. 삶의 원천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의욕을 불살라 온갖 열정을 다 받치는 데에 있다. 이 풍진 세상을 산다는 것은 더구나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어도 남들이 좋다하면 어쩔 수 없이 좋아 꿈을 선택한다. 화자는 파랑새의 꿈을 매체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은유로 묘사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무슨 원수가 졌나?

만나지 않기로 맹세라도 했나

누군가 교차점을 만들어주면

잠시 잠깐 힐끔 지나치곤

또 평행선이다

 

무슨 철천지원수라도 되는가

서로 마주 보고 눈 흘기며

오늘도 평행선이다

 

떼놓으려 해도 떼놓을 수도 없는 사이련만

서민들은 열차 위에 삶을 싣고

불안한 철길 위를 조바심 안고 달리는데

오늘도 변함없이 허세만 부린다

-철길전문

 

  어느 점에서도 만나지 않는 동일 평면상의, 둘 또는 둘 이상의 직선을 평행선이라 한다. 흔히 우리는 대립하는 둘의 의견이나 관계가 변화나 양보 없이 같은 상태인 채로 있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많이 쓰이고 있다.

  밥을 먹으면서 말도 없이 밥만 먹으면 서로 싸웠냐고 묻던 어른들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마주 보기만 하고 말을 주고받지 않는 사이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남의일이란 다 그런 것일까,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마는 세상이다. 기차를 탄 사람들은 철길을 믿고 달리는데 서로는 못 이겨서 마음을 딴 데 두고 있다.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르는 우려를 감내해야 하는 순간을 맞는다.

  아무 생각도 없는 물체인 철길을 사람처럼 비유하여 화자가 철길을 매체로 선택하고 그 형태와 구조 관계를 설정하여 행과 연으로 이해의 완급을 조절하여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의 양면적인 내면의식의 흐름을 밀도 있게 펼치는 표현전략에 성공하고 있다.

 

②「싫증난 참선에 담긴 좋음의 이미지와 실리추구

 

  세상은 타고난 모습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있다. 뜯어 고쳐서라도 팔자를 고치겠다는 사고방식으로 팽배해있다. 솔자한 것 보다는 임기웅변으로 진실을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가 되었다. 진실하다와 솔직하다는 사라져가고 오히려 눈치 없는 어리석음으로 눈치를 보아야할 판이다. 참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의 정답은 감춰져있다. 그리고 지금 그대로는 가려져 있다. 언제부터 돌연변이처럼 우리의 사고방식을 뒤흔들고 있다. 화자는 참다못해 싫증난 참선에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참 좋은데 그 사람이

왜 좋은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네요

그 사람이 어디라고 꼬집을 데 없이

- 좋으니까 그렇겠죠?

 

그 사람이 나에게 잘해주는 것도 없는데

왜 좋아지는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남들보다 특별히 잘난 것도 아니고

못난 것도 아닌데 누가 물어오면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게 된답니다

 

내가 아파할 때 살며시 다가와

술 한잔하자던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좋은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당신이랍니다

-참 좋은 사람전문

 

  좋다는 것은 성질이나 내용이 보통 이상이거나 우수한 것을 말한다. 어떤 대상과 비교가 되어야 한다. 좋긴 좋은데 왜 좋은지 모르는 그런 사람 이야기다. 잘 해주거나 잘난 것도 아닌데 좋은 이유를 모르겠다. 아파할 때 술 한잔하자던 좋은 사람이 바로 당신이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보고 산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심 밖에 존재들이다. 모르고 지내다가 나중에 알고 나서 미안해 마음이 아플 수가 있다. 결국 모두를 가리지 말고 좋아해야하는 대상으로 삼아야한다.

  참이란 그 정도가 크거나 사실성이 짙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기왕이면 나쁜 사람 보다 좋은 사람으로 사는 것이 좋겠다. 꼭 이유가 있어서 좋은 것 보다 아무 계산 없이 그냥 좋은 것이 낫다. 참 좋다는 이미지를 선명하게 밝혀주는 시어의 선택이 돋보인다.

 

꾸밈없는 당신

지금 그대로가 좋아요

 

수수한 옷차림에 중년의 꽃으로

털털하게 사는 당신

지금 그대로가 좋아요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세상사 눈치 안 보고 사는 당신

지금 그대로가 좋아요

 

누구에게나 공명 증대하고

언제나 공과 사가 분명한 당신

지금 그대로가 좋아요

 

말수는 적지만 마음이 너그럽고

누구에게나 웃어주는 당신

지금 그대로가 좋아요

-지금 그대로전문

 

  꾸밈이 없이 털털하게 지금 그대로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눈치 안보며 사는 당신, 공명정대하고 공사가 분명한 당신, 마음이 너그럽고 누구에게나 웃어주는 당신이 지금 그대로 사는 것이 거짓 없이 솔직하게 믿을 수 있어 좋다.

  잘 보이려고 거짓으로 꾸며 우선 당장을 눈앞을 가리고 나서 나중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괴롭히거나 해를 끼치지 않는 있는 그대로 변하지 않을 당신이 좋다. 화려하지 않아도 수수한 중년의 꽃으로 너그러운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가 졸다.

  지금 그대로는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자신의 권리보다는 의무를 다하는 반듯한 존재를 말한다. 추상적인 사물이나 개념에 상대하여 그것을 상기시키거나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내는 조각을 맞추어 가는 퍼즐처럼 알찬 인간상을 세우고 있다.

 

③「별이다에서 본 노력과 즐거움

 

  별은 하늘에도 있고 이 세상에도 있다. 과거의 어려움을 달래주던 별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두각을 발휘한 사람들이나 특히 대중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이르는 말, 또한 별이라 칭하고 바라보며 위로하며 산다.

  모든 것을 바쳐 자신의 성공 보다 주인의 성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신발이나 꽃 피는 날이 봄날이라는 최고의 날을 만드는 당신의 열정을 화자는 별이라 부른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변함없는 별들의 희생과 사랑을 받고 산다.

 

누가 내 맘을 알겠는가

낡고 냄새나고 아픔이 있는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돌덩이에 차이고

흙먼지에 콱콱 숨이 막혀 와도

주인 허락 없이는

편히 쉬지도 못하는 삶

 

이내 몸 너덜너덜 만신창이 되어

제발 날 쉬게 해 달라고 떼를 써도

무시해버리는 주인이 얄밉기만 하다

-신발전문

 

  신발은 걸어 다닐 때 발을 보호하고 장식할 목적으로 신고 다니는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말을 다 하지 못하는 낡고 냄새나는 아픔이나 흙먼지에 숨 막히고 쉬지 못하는 삶을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그저 너덜너덜 만신창이 되어 쉬고 싶다하여도 무시하는 주인 곁에 묵묵히 참고 견디는 신발의 푸념이 귀에 들려온다.

  한번 인연이 맺어지면 떨어질레야 떨어질 수 없어 한 몸이 되어 붙어 다녀야 하는 운명을 거부하지 못해 받아드리고 나서 버려지기만을 고대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 비록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귀한 흔적을 남기는 귀한 걸음을 걷는데 사용되는 도구다.

  신발이 없으면 한 순간도 어떤 목적지라도 이동을 할 수 없다. 신발의 도움을 받아야 정상적인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있을 땐 모르지만 없을 때의 불편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단순한 신발이 아닌 시어의 결합은 삶의 한가운데서 빛나는 별을 만들고 있다.

 

꽃피는 날에

봄이라는 문 활짝 열고 맞으려 하네

내가 좋아하는 에 음률 맞춰 받치려 하네

하얀 꽃

노랑꽃

빨강 꽃

초롱꽃 들고서 열린 내 가슴속으로

들어온 당신이 내 마음 진정시켜주었네

 

꽃피는 날 기다랗고 넓은 하늘에

당신 닮은 꽃구름이

날 보고 웃어주네

 

철쭉

카네이션

제비꽃

민들레 홀씨도 날아가며 미소 짓네

그대 따라 싱글벙글

-꽃피는 날에전문

 

  봄날이 따로 있지 않고 웃는 날이 봄날이다. 봄날에 당신이 에 음률 맞춰 받치려 하고, 꽃을 들고 나를 진정시켜주려 했다. 당신 닮은 꽃구름이 웃고 민들레 홀씨도 그대 따라 미소 짓는다. 꽃 피고 희망찬 앞날이 봄날이다.

  삶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모든 면에서 걱정과 부담이 있고 없음에 따른다. 화자는 꽃피는 봄날의 풍경 속에서 내면의 흐름을 거짓 없이 솔직하게 함축, 은유, 상징의 요소를 통하여 자연의 섭리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다.

  시의 전율을 압도하는 주체는 당신이다. 당신은 봄의 문을 열거나 꽃을 들고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와 날보고 웃어주는 꽃구름을 당신으로 비유하고 있다. 위대한 당신은 반듯이 이성의 어떤 상대라고 정할 수는 없다. 즐겁고 기쁘게 해주는 사물과 사건일 수도 있다.

 

④「너 부르기에서 찾은 사랑과 행복

 

  사람들은 연탄이 서로 붙어 재가 되도록 타는 사랑을 노래하였지만 살신성인을 강요한다는 아견을 던졌다. 뿐만 아니라 타버린 연탄을 떼어내고 갈아 떼어버리는 것조차 달갑지 않다. 또한 행복이 무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 나서지만 곁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측은한 사람들이 많다. 행복이 물건인줄 알고 돈으로 사려는 사람도 있고 가관이다.

 

너와 나는 어제 밤새껏 정열을 불태웠지

활활 마음껏 말이야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어

이 내 몸 하얀 재가 될 때까지

사랑을 불태웠으니

 

하룻밤 풋사랑이지만

죽어서도 붙어 있으려고 했는데

우리의 사랑을 떼어놓고선

다른 놈 붙여주며 같이 있으라고 하네

 

알지도 못하는 놈과 붙으니 괜히 어색하네

!

나의 몸 불살라야 하나

사랑이란 이런 건가?

 

사람들은 왜 우리에게 강요하는 걸까

살신성인(殺身成仁).

-연탄전문

 

  연탄은 무연탄을 주원료로 하여 여기에 탄화물과 석회를 섞어서 가루로 만든 뒤 굳힌 원통형의 고체 연료다. 지금은 예전처럼 많이 쓰이지 않지만 도시가스가 설치되지 않은 곳에서는 여전히 쓰고 있다. 까만 연탄이 불꽃에 하얗게 탈 때면 다른 것으로 연달아 갈아주었다.

  불타버린 밑에 하얀 탄은 꺼내서 버리고 불붙은 탄 위에 다른 연탄을 갈았다. 연탄은 다른 탄이 싫었어도 시간이 어중간해도 한밤중이나 새벽녘이나 불을 꺼트리지 않으려면 제 시간에 불을 갈아야 했다. 시간을 놓치면 불을 꺼트리고 불을 붙이느라 고생하곤 했다.

  연탄은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는 놈하고 같이 몸을 태우는 게 사랑이라며 자기 몸을 희생하여 인()을 이루게 하는 것이 싫었다. 연탄을 의인화한 비유가 입장을 바꿔 사람들의 행태를 나무라며 사랑의 정의를 반문을 통하여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나 자신에게 지지 않기 위하여

나는 강인한 마음으로 살려고 애를 쓴다

그것이 행복으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기에

그런데 힘들다

 

행복이 돈이라면

돈을 벌면 되는 거고

행복이 땅이라면

땅을 사들이면 되는 것이지만

 

행복이 돈이 아니니까 문제

행복이 땅이 아니니까 걱정

행복이 물건이 아니니까 마음이 아파

 

아픈 가슴 달래면서

지금 걷는 이 길 위에서

행복 찾으려 애를 쓴다

-행복 찾기전문

 

  행복을 만든 물건처럼 돈 주고 사려하고 아무데나 쌓여 있는 것인 줄 안다. 모든 생활의 목표가 행복이다. 그러기 위해 자신을 이겨야하고 강인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돈이거나 땅, 그리고 물건도 아니다.

  행복은 세 잎 토끼풀처럼 이 땅위에 널려 있다. 그럼에도 네 잎 토끼풀만 행복인줄 행운만을 고집하며 집착하여 찾는다. 다만 자신을 이기는 것만 능사다. 행복은 평범하지 않고 충격을 요구하며 특별한 것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혀있다. 불행의 시작은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금광이라도 찾는 것처럼 이 세상 끝까지 뒤지고 산다.

  욕심으로 가득 찬 창고 같은 사람들은 행복을 찾지 못한다. 오히려 행복은 우리를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화자는 답답하기만 하다. 눈높이를 너무 높게만 두고 있다. 땅위에 행복을 땅 속에서 보물을 찾고 있다.

 

⑤「춘사월과 함께 맞이하는 갈등과 현실도피

 

  일상의 모든 일들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희망을 갖고 시작해서 꼭 이루어지기를 계획이나 구체적인 실행 방안도 없이 집착한다. 한 해의 문을 열고 생동하는 춘사월의 각오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번 맞이하고 마는 것도 아닌 이시기를 작심삼일로 변함이 없다.

  시작만 하면 금새 가버리는 시간은 후회를 남긴다. 그리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유구무언이다. 지나간 시간은 대수롭지 않게 버리고 다가오는 시간만을 귀하게 맞이할 뿐이다. 내면의 갈등과 현실도피의 연속선상에서 복잡한 세태를 춘사월의 바람과 함께 맞이한다.

오늘도 창밖은 어김없이 어둠이 시작되고 있다

내리깔리는 어둠 속으로 한 발짝씩 걸어 나오는 당신을

- 기억 속으로 지워 버린 지 오래인데

새삼스럽게 내 앞에 외로이 와 있는 당신

 

어쩌자고 찾아와

추억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하는지 모르겠구려

너와 못다 한 정이라도 있단 말인가

집착은 하지 말자고 했건만

 

정이라는 기나긴 끈이라도 끊으려고 왔단 말인가

정 끊으려면 오지 않으면 될 것을

이런 것이 미련이라는 건가

아니면 집착이라고 하는 건가?

-집착전문

 

  집착은 어떤 것에 대해 계속해서 얽매여, 계속해서 마음이 쓰이는 것을 말하나 미련은 품었던 감정이나 생각을 딱 끊지 못함이니 한 사물 현상은 다른 사물 현상의 원인이 되고, 그 다른 사물 현상은 먼저 사물 현상의 결과가 되는 관계다.

  잊혀진 지 오랜 기억이 어둠이 깔리는 데 나타나 아픈 과거를 들추려하는가, 못다 한 정이 남아있을 리 없는 걸 또 다시 끊으려 하는가, 상대방에게 강하게 떠밀려 하지만 오히려 화자의 심정이 어지러움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떠오른 기억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어떤 내용의 기억이든지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에 대한 아쉬움이나 원망스러움을 애써 잊었다가 본의 아니게 떠오르는 것이다. 아직도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집착의 이미지를 증폭시키는 내면의식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길을 걷다가

한참을 걷다가 옆을 보니

그 기엔 또 하나의 길이 보였습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험하고 힘들어

아무도 모르게 슬그머니

옆길을 택했습니다

 

옆길로 걷다 보니 더 험하고 힘들어

아무리 옆을 쳐다봐도

내가 걷는 이 길 왜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누구를 붙잡고 하소연하려고 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 가슴앓이하며 걷고 있습니다

-유구무언(有口無言)전문

 

  길이란 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땅 위에 낸 일정한 너비의 공간을 말한다. 길은 여러 가지 종류로 나눠지지만 대체로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인생을 살다보아도 갈레 길에서 어려웠을 길로 왔더라면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

  편한 길을 골라 안전하게만 왔을지 몰라도 편하지 않은 길의 어려움을 지나치면서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의문을 가져본다. 어느 길을 가더라도 그냥 저절로 쉽게 갈 수 있는 길은 없다. 눈앞에 어려움을 꾸준한 노력으로 극복해나가야 한다.

  여러 가지로 유추할 수 있는 길을 매체로 많은 이야기 꺼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표현전략이 이미지를 선명하게 펼쳐주었다. 길은 어떤 활동의 방향이나 어떤 일을 하기 위한 방안이나 수단을 나타내는 말로 상상의 폭을 넓힐 수 있으나 바꾼 길을 되돌리지 못한다.

 

3.나오는 글

 

  여재학 시인은 이 세상을 사는데 꿈이 필요하다며 오늘도 파랑새 꿈을 좇아 길을 떠난다. 꽃을 들고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와 날보고 웃어주는 꽃구름을 당신으로 비유하여 매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습관화 하고 있다. 첫 시집을 내는데 10년을 보내면서 망설임과 미룸을 반복하다가 제 2시집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사뭇 달라 보인다.

  보다 적극적으로 사물과 사건을 접하고 상상 속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주로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거나 상대에게 이야기를 하는 입장이다. 여 시인은 후자에 속하면서 보다 활발한 사고력을 발휘하려 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말하라면 나에게 잘해주는 것도 없는데 왜 좋아지는지 모르다면서, 내가 아파할 때 살며시 다가와 술 한잔하자던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좋은 그런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연탄에서 하룻밤 풋사랑이지만 죽어서도 붙어 있으려고 했는데 우리의 사랑을 떼어놓고선 다른 놈 붙여주며 같이 있으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는 놈과 붙으니 괜히 어색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재학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이나 사물, 그리고 사건을 대상으로 관찰하고 형태나 색깔, 그리고 소리를 통해서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시상을 만나길 즐겨하는 가운데, 상상력을 동원하여 풍부한 어휘력과 탁월한 시어의 선택으로 새롭게 표현전략을 펼쳐놓고 있다. 시를 쓴다고 따로 시간을 정해놓고 쓴 흔적은 없다. 생활 속에서 시상을 만나면 현장에서 메모를 하는 살아있는 생동감을 어느 시에서든지 우리에게 전율을 느끼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시집 전체를 5부로 나누어 구성한 시편들을 요약하여 되새겨 시집 파랑새의 꿈에 담긴 여 시인의 시세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자 한다.

  제 1파랑새의 꿈에서 꿈이 나에게 오기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꿈에게 다가가 소통을 시도하여 소통을 기대하는 것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 마주보면서도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고 시도 한 번 하지 않고 먼 산만 보며 시간을 죽여 온 외면과 냉정의 시간 속에 인내를 곱씹어보고 있다.

  제 2싫증난 참선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서 자신을 좋아하는 대상까지 좋다는 이미지의 시야가 화장되면서 바꾸어 보려는 시도에 적극적이지 못해 소극적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화자 자신을 발견한다.

  제 3별이다에서 별은 거의 빛이 나지만 빛이 나게 하는 별도 있다. 자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을 꽃이 핀다고 말한 것처럼 각각의 목표가 다를 분이다. 실행자로써 조력자로써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는 즐거움을 마끽하는 것이다.

 제 4너 부르기에서 재가 되도록 연탄을 태우는 걸 사랑이라 하고 다 탄 연탄재를 떼어 새 것과 바꿔놓아 낯설게 마주하는 것을 연탄은 싫었다. 돈을 주고 사려는 행복이 곁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다.

 제 5춘사월에서 잊은 듯 오랜 기억이 그 당시로 떠밀려 안타까움을 만난다. 미련과 집착의 갈등이 날을 세운다. 마치 삶의 갈레 길에서 선택해야할 길이 어렵지 않은 곳으로 정하려 겪었던 고민과 같다. 이제와 부질없는 결과를 놓고 할 말을 잊는다.

  다양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는 생각과 느낌에서 선택된 매체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고받는 감정의 교류를 통하여 자신만의 시세계를 구축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정신적인 면에서 창작은 물질적인 발명과 같아서 세상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학관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 여재학 시인의 시를 먼저 읽을 수 있어 영광이었고 다음 시집에 대한 기대에 가슴이 설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