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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서산 당진 문학기행

서산 당진 문학기행

                    

1.들어가는 글

 

  초겨울로 들어서는 121일이다. 영하의 기온이 선을 보이긴 했어도 오늘처럼 쌀쌀하기는 처음이다. 강의 맡은 곳에 새 학기가 다음 주 부터여서 오늘은 휴강이라 서산 당진 일대 문학기행을 12일로 예정된 날이다. 5호선 영등포시장역 1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서산 당진은 필자가 대전 출신이기에 아직도 순수한 충남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지역으로 즐겨 찾았던 터라 부담 없이 동참하기로 했었다. 오전 9시 반 보다 조금 전에 도착하여 양지 바른 쪽을 찾아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5분도 안되어 운전을 맡은 최병영 문학평론가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뒤이어 ()세계문인협회 윤지훈 사무총장도 약속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무언가 잘될 것만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여행출발이다.

  우리는 항상 어떤 사안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하지도 않지만 알려주지도 않는 출발이 예사였다. 그렇다고 해서 방향 없는 무계획의 출발도 아니다. 항상 계획과 추진은 윤지훈 총장에게 맡겨져 있었다. 계획이라는 골격에 살을 입히는 것은 일행들의 몫이었다. 출발을 알리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함께 호흡을 다져야했다. 당진을 목적지로 삼고 서부간선도로를 진입하여 서해고속도로를 탔다.

  화성휴게소에서 화장실을 들렸다가 다양한 먹거리 중에 천안의 명물 따뜻한 호두과자 맛을 볼 수 있었다. 찬 기운을 모면하여 여행에 불편이 없었다. 도로사정도 정체를 만나지 않고 상쾌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진버스터미널에서 아산에서 오신 신영철 시인과 합류하였다. 인근에 장수옥 설렁탕집에 들어가 점심식사를 전통가마솥설렁탕으로 시켰다. 안부도 묻고 여러 가지 궁금증을 푸는데 유익한 시간이었다.

 

2.당진

 

당진문예의 전당과 청소년문화의 거리

 



  윤지훈 총장이 담당자를 만나는 동안당진문예의 전당전경을 두루 살펴보았다. 295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1,001석의 대공연장과 300석의 소공연장, 전시관 등 건물 3개동에 대, , 소 연습실 등의 주요시설과 오케스트라, 합창실, 무용실 등 초현대식 시설을 갖추어 2005531일 개관되었다.

  아울러 당진문예의전당과 관련된 모든 문화예술정보를 시간과 공간의 구애 없이 누구나 얻을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개통하여 인터넷 상에서 각종 공연소식 및 필요한 문화예술관련 기초정보 등을 접할 수 있다.

 「청소년문화의 거리공원을 둘러보며 산책을 하였다. 나이가 12세에서 20세에 이르는 미성년의 젊은이들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이 청소년이다. 공원입구에 서있는 조각 달팽이 한 쌍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경고가 담겨있는 달팽이는 야간이나 비 오는 낮에 활동하며 풀이나 나뭇잎을 먹는다. 몸에서는 점액이 분비되어 몸을 바닥에 문지르며 이동한다. 느릴 수밖에 없고 매사 신중하다는 의미를 새기고 있다.

 

왜목마을


 

  조용하고 한적하던 서해의 작은 어촌마을이 연말, 연초 만 되면 밀려드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는 곳. 당진 장고항 위의 작은 어촌마을이던 왜목리는 한자리에서 바다위로 뜨고 지는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다는 현상 때문에 일약 스타 관광지로 부상한 곳이다. 이곳은 서천의 마량포구와 더불어 일출과 일몰, 월출까지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다.

  견우직녀 전설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견우직녀가 만나는 곳 당진 왜목마을이라고 써놓은 오작교를 만들어 놓았다. 아래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사랑마크를 만들고 있는 조각이 세워져 있다. 바람이 불고 차가운 날씨 탓인지 텅 빈 왜목마을 바닷가를 일행은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난번에 직장동료들과 왔을 때는 자갈이 깔려진 순수한 바닷가였는데 땅을 평평하게 다져 정지작업을 해놓아 편하게 거닐 수 있었다. 10월 소양교육에서 만난 이금자 시인이 승용차로 달려왔다. 이곳 지리를 잘 안다며 안내를 나서 일행은 차를 타고 길이 7.8킬로미터의 대호방조제를 따라 먼저 도비도로 갔다.

 

도비도

 

  간척지를 개발하여 농경지를 늘리고 용수원을 확보하여 식량 증산을 이루려는 정부의 대호지구 농업종합개발계획은 1975년부터 19년간에 걸쳐 진행되어 1984년에 대호방조제가 완공되었는데 이로 인해 면적을 넓히고 담수호와 농경지가 조성되었다.

  한국형 농업 시범 단지로, 일부는 농·어가 주택 및 부대시설 부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충청남도 당진군 석문면에 위치한 도비도 농어촌휴양단지는 본래 섬이었던 도비도가 대호방조제가 완성되면서 육지로 변함에 따라 광활한 대호환경농업시범지구와 갯벌을 이용한 자연 생태 공원으로 조성되고 있다.

  겨울바다를 눈에 가득 담고 아담하게 꾸며진 공원에 발자국을 남겼다. 특히 갯벌에서는 조개, , 고동잡이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탑 주변엔 벤치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바다 건너로 보이는 난지도와 서해 섬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바다를 끼고 나 있는 산책로 중간에 전망대도 설치되어 있다.


3.서산

 

삼길사

 


  대호방조제를 따라 달리다 보니 어느새 바다를 건너 삼길포항이 눈에 들어왔다. 해가 서산으로 기우는 시간 고깃배들이 항구에 들어오면서 갈매기 떼가 소리 내며 반겼다. 회를 뜨는 걸 보자고 제의 했으나 내일 아침으로 미루었다.

  정상이 150미터 정도 되는 삼길산에는 온갖 나무들이 들어차 한창시절의 추억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갈래 길에서 좌측 편에 해월암으로 불리던 삼길사로 들어섰다. 규모가 작았던 시기에 암자로 불리다가 점차 커지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어 삼길사로 불리어지고 있다.

삼 길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사찰로써 예부터 백제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고찰이다. 조선시대의 역대 평신진에 부임하는 수군첨절제사들의 단가사 역할을 해온 사찰로 평신진 첨사들이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삼길사의 법당은 대웅전으로 석가여래불을 모시고 양 옆에 지장보살과 관음보상을 모셨다.

  새로 단청이 되지 않은 원색 그대로 보존이 되어 있는 오랜 역사의 흔적들이 그대로 살아 있는 삼길사의 호흡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싸늘한 날씨에도 대웅전을 감싼 울타리처럼 마당을 두르고 있는 동백나무에 꽃봉오리가 맺혀 금방이라도 피어날 듯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펼쳐 벌어질 것 같았다. 산사의 정취에 심신을 가라앉히고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이름 모를 정자 앞에 차를 멈춰 내려다 본 바다 풍경은 절경이었다. 마치 울릉도에서 내려다보는 섬들처럼 하나의 한국화였다. 분위기를 맞춰주기 위해서일까, 잔득 참고 있던 눈이 눈발을 굵게 만들어 바람에 흩날렸다. 무언가 못 다한 미련의 끝자락을 잡아당기는 힘을 느껴야했고 몰려오는 서글픔에 심난하게 부딪히는 듯했다.

 

삼길포항

 

  저녁식사를 위해 숙소에 짐을 들여 놓고 예약된 대현수산횟집으로 가야했다. 이곳에서 일행들은 서울에서 승용차로 내려온 송난교 시인과 합류했고 필자의 오랜 벗이며 월간 문학세계 창간호로 등단하신 당진 홍윤표 시인과 정지원 시인이 자리를 함께 하게 되어 모두 여덟 명이 참석하였다.

  문학의 향기 가득한 방안에는 주고받는 대화 속에 공감과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홍윤표시인의 모지 사랑과 이금자시인의 축시낭송이 진하게 묻어나는 정시인의 충청도 방언과 어우러져 자리를 뜨겁게 하였다. 옆에 앉았던 홍시인은 등단 이전에 고향인 대전시에 시동인시도에서 같이 활동했었다. 오래지난 일이지만 당시의 이야기를 틈틈이 나눌 수 있었다. 창밖의 저무는 삼길포항의 운치를 시샘이라도 하듯 눈발이 소리 없이 날리고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다가 돌아가야 할 집이 멀어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못했던 일들을 앞으로는 자주 연락하고 소통이 원활한 내일을 만들자고 다짐하며 헤어져야 했다.

  인근 속소에 든 일행은 맥주를 마시며 못 다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운전을 하시느라 수고하신 최병영 시인은 피곤하셨는지 일찍 잠을 청하였다. 방안의 난방이 뜨끈뜨끈하여 아침 일찍부터 달렸던 하루를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삼길포 일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일출을 기다렸다.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바다가 보이는 숙소였다. 아침 7시 반이 넘어서야 불꽃이 붉게 타오르듯 아침 해가 하늘을 물들이며 솟아올랐다. 왜목마을은 아니라도 심길포항의 일출도 다르지 않았다.

 

둥근 쟁반에 불을 붙여/ 삼길포항 바다 공중에 하루를 쏘아 올린다// 어둠 속에 밝음을 위하여/ 꺼트리지 않고 온 몸을 불태운다// 오늘이었던 어제도/ 내일이었던 오늘도/ 서로 다른 오늘의 새벽을 밝히고/ 희망을 높이 들어/

 

  회를 떠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하여 바닷가 부두로 나갔다. 많은 고깃배들이 나란히 줄을 서있었다. 어제 오후에 들어온 배들이 바닷물에 담아놓은 싱싱한 물고기를 회를 떠서 식당에서 매운탕을 맛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침이 넘어가는 일이다. 여태껏 수산시장에 나가 회를 떠봤어도 부둣가에서는 처음이었다. 눈에 띄는친구네 매운탕집으로 들어가 먹은 아침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맛이었다. 예상 보다 늦은 시간에 아침식사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해미읍성을 드리기로 했다.


해미읍성


 

  진남문은 해미읍성의 정문이고 다듬어진 돌로 된 아치형 홍예문이다. 네 방향에 문을 두고 있다. 충청도 덕산으로부터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태종 때 옮겨온 곳으로, 청주로 이전한 효종 때까지 군사적 거점이 되었던 곳이다. 성종 때에 축조되어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곳이다. 성곽둘레 1,800m, 높이 5m, 면적 20로 현존하는 가장 잘 보존된 평성이다.

  전시병기 중에는 화약을 사용하여 불화살을 쏜 대포인 천자총통(天字銃筒)과 로켓병기로 대량 발사 장치를 설치한 화차인 신기전기 화차(神機箭機 火車), 그리고 호랑이 얼굴 방패로 적의 말을 놀라게 하고 그 방패에 검을 꽂아 공격한 검차(檢車)가 눈에 띄었다.

  1578년 선조 때 이순신 장군이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한 적이 있으며 조선시대 말기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1960년에 이 성을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읍성으로 보수공사를 하는 한편, 성 안팎에 무질서하게 자리 잡은 민가를 철거·이전시키고 종합적인 보존계획을 세웠다.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으며 1981년에는 성 안의 일부를 발굴한 결과관아 터가 확인되었다. 20148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방문하신 전국 최대 순교성지로 외신 등에서 정원의 꽃밭처럼 아름다운곳이라고 극찬한 곳이다.

 

수덕사




  수덕사로 가다가 석봉 한호의 생가가 인근에 있었다는 착각으로 잠시 망설이며 찾았으나 추사 김정희 생가로 확인되기도 했다. 현재까지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백제사찰은 덕숭산 자락에 많은 고승들을 배출한 한국불교의 선지종찰(禪之宗刹) 수덕사뿐이다. 주요 문화재로는 수덕사대웅전(국보 제49), 수덕사3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103), 수덕사7층석탑 육괴정, 황하루, 근역성보관, 사리탑 등이다.

  선미술관은 수덕사 부근에 위치한 수덕사 영관 옆에 124평 규모의 단층 건물로 지어졌으며 수덕사 대웅전의 맛배지붕을 형상화하였다. 수덕사 3대 방장스님의 호를 딴 원담전시실과 이응노 화백의 호를 딴 고암전시실에는 고승들이나 이응노 화백의 작품과 근 현대예술인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입구의 바위에 음각으로 써놓은예술은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서 솟아나게 한다. 수덕사 선미술관 개관기념 옹산이 눈에 들어왔다. 옹산은 선미술관을 건립하여 선의 정신문화확산 공로를 인정받아 옥관문화훈장을 받으신 수덕사 전 주지 옹산스님이다.

 

점심식사

 

  주차장으로 내려오다 식당가에서 늦은 아침으로 시장기는 없어도 섭섭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찾은 곳이 유정식당이다. 산채비빔밥에 빈대떡 하나 시켜 막걸리를 한 잔 마셨다. 마음에 맞는 서넛 사람끼리 산사를 내려와 한 끼의 식사를 한다는 게 이렇게 오붓할 수가 없다. 멀리에 있어 만나지 못하는 성공한 친구 보다 흉금을 털어놓고 소통할 수 있는 함께 있는 친구가 훨씬 낫지 아니한가,

 

4.나오는 글



 

  여행은 무엇일까, 흔히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두루 돌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집을 나와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느끼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용무를 보기위한 목적지당진문예의 전당은 정해져 있으되 그 외의 여행지 는 하나도 정해진 것은 없었다.

  여행은 무조건 달리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다가 보고 싶은 곳이 생기면 그 곳에 머물며 쉬는 것이다. 일행이 있으면 모두가 의견을 절충해야한다. 현지에서 한 곳을 보고 그 다음 들려야할 곳은 보고 싶은 것이 정해졌을 때이다. 그 다음 장소도 마찬 가지이다. 왜목마을, 도비도, 삼길사, 삼길포항, 해미읍성, 수덕사기 바로 그곳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대상을 알아보고 느끼는 바를 메모하거나 사진을 찍어 잊지 않으려 보관해둔다. 모든 것을 적어야 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편리함을 실감하게 된다. 도회지에서 주어진 공간을 탈피하지 못하고 적응하느라 웅크렸던 심신에게 단 일박을 통해서 모두 해소할 수는 없어도 숨통을 열었던 치유의 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하지 못하는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윤지훈 총장님, 먼 거리를 안전하게 운전해주신 최병영 문학평론가님, 문학에 관한 일이면 국내 어디라도 만사 제치고 달려오시는 신영철 시인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또 다른 기회가 오기를 바라며 필을 놓는다.

 

2017년 12월 3일 오후

윤 제 철  

    윗글은 월간 문학세계 2018년 2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