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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서울대공원 봄날을 만났다.

서울대공원 봄날을 만났다.




 

  오늘은 3월도 며칠 안남은 26일 토요일이었다. 날씨가 좋은 봄날이라 아까워 집을 나섰다. 아직은 야와 나들이객들이 많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주차장엔 상당한 차량이 들어서 있었다. 미술관 옆 주차장에 겨우 세워놓고 미술관 길로 들어섰다. 겨울을 나던 나무들은 허리띠를 풀고 홀가분하게 물을 뿜어 올려 연초록 새순을 뜨고 있었다. 새봄맞이 청소라도 한 듯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은 한결 넓어보였다.

  미술관 옆에 하얀색과 짙은 분홍색 매화가 눈에 띄었다.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핀다는 꽃이다. 손을 들어 아내와 필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붓을 물에 정성껏 빨아 산뜻한 색깔을 칠해놓은 수채화처럼 예쁘게 피었다. 마치 봄을 맞이하는 준비가 다 되었다는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어 필자는 봄이 되어 검열을 하는 착각에 빠져야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세 번째로 <초록빛 환영 이숙자>라는 타이틀로 국내전시를 325일부터 710일까지 제 3전시실, 2층회랑에서 약 100점이 특별전시되고 있었다. 1942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이숙자는 근대기 한국채색화의 맥을 이루었던 천경자, 김기창, 박생광 같은 스승들에게 지도 받아 국전과 중앙미술대전에서 동시에 대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적 정서를 표현할 수 있는 소재를 찾아 민예품부터 백두산까지 작업을 확장시켜왔다. 반세기에 걸친 작업을 통해 모색하고자 했던 정체성 자체로 한국미슐사에 그 흔적을 남겼다. 특히 <백두산> 한 쪽 벽면을 메운 대작이었다. 15m에 달하는 작품은 이숙자 작가가 '한국성'을 구현하기 위한 기념비적인 작업을 남기기 위해 시도한 작품이다. 1992년 백두산을 상상해 그리기 시작한 작업은 계속 잇지 못하다 1999년 백두산을 보고서야 완성했다.
  밖으로 나와 미술관 울타리 안으로 걸어 서울랜드로 향해 걷다보면 정원에 진달래꽃봉오리가 맺힌 나무들을 볼 수가 있었다. 늘 진달래꽃이 피는 시기를 놓쳐 활짝 피고 나서 보곤 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꽃 피우려고 내민 봉오리를 만났다.








  한참을 걷다보니 벚나무가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모습을 뒤로 하고 서울랜드 정문이 보였다. 산책을 하고 있던 필자는 정문 앞 길을 건너 호숫가로 걸어들어갔다. 맑은 물은 멀리 서있는 관악산을 거꾸로 비춰 물구나무 세웠다. 길게 뻗은 가느다란 개나리 가지에 노란 꽃봉오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 뒤편에 서서 호수에서 서울랜드로 흘러가는 물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가리는 나뭇가지에는 연초록색 이파리 새순을 밀어내고 있었다.

  분수대는 물이 잠겨 자취를 감추고 케이블카를 타는 곳에 있는 가게에서 닭꼬치를 2개 사서 12시가 넘은 시간 허기를 달랬다. 예정 보다 많이 설치된 앉을 자리에 앉아 생각 보다 많은 양을 실감하였다. 만보기를 들여다보던 아내가 아직 만보가 안됐다며 채우기 위해서는 돌아서 주차장으로 가야했다. 4월이 되는 다음 주나 그 다음 주에는 꽃들이 수를 놓는 봄으로 바뀌어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서울대공원이 될 것이다.




  봄은 보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무언가를 보여주는 계절이다. 봄이 왔다는 것을 기다렸다가 보고 알려주는 이 땅 위에 생명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 모두 인생의 봄을 다시 만나는 그런 마음으로 반갑게 변화되어가는 모든 것들을 볼 것이다. 그리고 먼저 알고 있었던 것들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이 업그레이드 시켜가면서 현실에 적응하는 생활을 꾸려야겠다. 아름다운 시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이 출발이 늦은 까닭일까, 수백 미터를 승용차로 줄서있는 대열을 보며 오후 2시가 넘어 달려 나왔다.

 

윤 제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