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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추석연휴 인사동 거리에서

 추석연휴 마지막날 인사동 거리에서


 오늘은 추석연휴가 끝나는 날이다. 제사준비에 분주했던 가족들이 나들이를 원했다. 외식을 하자는데 색다른 곳이었다. 추석이 일요일이라 하루를 대체해서 쉬는 날의 의미를 남기자는 것이었다. 

 

1.여자만 관훈점



  낙원상가 지하 1층에 있는 일미식당의 음식 값이 싸면서도 맛있다는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오늘 점심메뉴로 아내와 딸이 선택하였다. 그러나 종로 3가 5번 출구로 나가 12시가 넘어서 도착하니 마흔 여섯 명이 줄을 서서 테이블 넷에 16명을 수용하는데 20분씩 걸린다하니 1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말이 1시간이지 실제로는 더 많이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다음에 오기로 하고 인사동 거리로 나왔다. 날씨도 맑았고 기온도 알맞아 둘러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시간이 시간이니 만큼 점심 식사가 먼저였다. 조계사 앞 발우공양 식당은 쉬는 날이었다. 다시 인사동 골목 안에 여자만 관훈점을 들렸다. 여자만은 전남 고흥과 여수 사이에 있는 만이다. 산악인 박기성이 주인이고 부인이 이미례 영화감독이라는 걸 들어가서 알았다.

 남도음식 전문점으로 김치고등어찜(2인분 : 2만원)과 우렁된장찌게(1인분 7천원)를 주문했다. 깔끔한 맛에 공기밥 하나를 추가하여 남는 반찬을 줄여야했다.


2.수요일 전통찻집






  2층에 자리하고 있는 전통찻집에서 대추차를 한 잔 하기로 했다. 주위에 여러 군데 전통찻집이 있었지만 아내가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좋다는 말을 듣고 쉽게 결정된 곳이다. 고풍스런 운치를 느낄 수 있는 메뉴가 외부로 노출된 진입계단 벽에 사진으로 소개되었다.

  전통찻집이지만 커피 카페라테도 딸이 시킬 수 있었고, 녹차 초콜렛을, 그리고 기대했던 대추차를 주문시켜 마실 수 있었다. 차의 량이 많았다. 빈 잔을 달라고 하여 나누어 맛을 음미하였다. 진한 대추차의 맛에서 향까지 풍기는 분위기로 마음을 뺏는다.

  60대 중반의 부부는 30대 딸과 스마트폰으로 찻잔을 사진 찍으며 한층 젊은 시간을 보냈다. 아름다움과 즐거움은 무엇이 다를까, 순간 나는 함께 할 수 있는 요소라 여겼다. 따로 분리 할 수 없는 공간을 차지한다.


3.김건배 수채화전





  아내가 노인복지관에서 수채화 그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지만 관심을 갖고 열심히 하는 걸 보여주었다. 찐만두와 튀김만두를 사려고 줄을 서 있다가 수채화 전시를 하는 화랑 앞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수채화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김건배 화가 전시회가 내일까지 열린다는 것이다.

  발레리나와 연주자들을 주제로 한 수채화가 걸려있었다. 모닝라이트 대상을 여러 차례 받았다는 작품을 포함하여 20편이 전시되었다. 독특한 화법으로 색상을 혼합하지 않고 그려져 색감이 뛰어나고 선명하여 원근이 살아나 입체감을 살렸다.

  ?색채의 순수함을 지켜내기 위해 색을 혼합하지 않고 투명한 원색물감을 차례로 겹쳐 바르는 기법을 사용하여 인체의 오묘한 색의 변화를 조화롭게 표현했다. 나는 공연이 있기 까지 연습실이나 무대 뒤에서 이루어 가는 그들의 메시지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들의 움직임과 표정에서 열정적 순수가 고스란히 도출되기 때문이다.?라는 그의 작가노트를 읽었다. 

 

4.인사동 거리





  정신과 육체가 나를 유지 시켜준다면 정신적인 면에 있어 뿌리는 지나간 세대들의 문화일 것이다. 그 모습을 모아둔 곳이 바로 인사동이다. 다양한 종류로 나열된 공간들이 펼쳐진 무대와 같다. 보여주는 공간 안에 휴일을 맞은 많은 사람들의 움직이는 모습과 입고 있는 의류가 어우러진 모습들조차 한꺼번에 문화로 창출된다.

  나 또한 그 한 부분으로 점을 찍는다. 여러 번 들려보았지만 들릴 때 마다 처음 와보는 곳이 된다. 이제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중심에서 밀려나오는 기분이 든다. 마음은 청춘인데 정신을 들러 씨고 있는 육체가 퇴색되어 간다. 마치 가을에 들어서는 요즘의 나무들 마냥 땅위에 선다.

  그러나 이 거리는 자리를 지키는 문화가 주인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반기며 느끼고자 만든 공간이기에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아직은 존재감이 충분하다.


5.어느 가계 벽



  악세서리 가계를 들렀다. 이것저것 둘러보다 악세서리가 아닌 벽을 보았다. 부드럽고 진열된 상품을 눈에 잘 들어오게 하는 벽을 보았다. 특별한 소재를 사용했는가 살펴보니 의외의 소재가 눈에 띄었다.

  하얀 색깔 보드랍고 얇은 종이로 만든 봉튜들을 겹겹이 바닥에서부터 천정까지 쌓아올린 것이었다. 하나만 보았을 때와 여러 개를 한꺼번에 모아 조합을 했을 때의 모양 변화나 입체감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다. 값비싼 소재로 느낌을 살렸을 거라는 생각을 어색하게 만들었다. 좋은 생각은 우연찮게 떠오르는다는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되었다.

  무언가 이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는다는 것이 그와 맥락을 같이 할 것이다. 바로 창작의 세계가 아닐까, 평범한 사고에서 비범한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예술의 세계가 아닐까, 이 거리의 물건들이 그러한 손길에서 만들어진 소산물들이다.

  무심코 지나칠 가계 내부의 벽을 보며 나무도 보고 숲도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의 깊이를 가슴에 새겨본다. 그냥 바라다보다가 현미경으로나 확대해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신기하기만 하다. 

 

6.그 밖의 소소한 것들


  아내와 딸은 싼 물건을 몇 개 샀다. 그러면서도 즐겁고 기쁜 얼굴을 만들고 있었다. 스카프와 머리띠를 산 딸과 밥상을 덮는 보와 두 개의 도자기 찻잔을 골라 산 아내의 모습을 보는 나는 더 기뻤다.

  늘 그렇게 살 수 없었던 지난날이 많았다. 마음 쓰지 못하고 나만의 세계만을 추구해왔던 날들이 미안하기만 하다. 이제는 모두 내려놓고 나 이외의 식구들에게 사랑을 주고 싶다.

  예정과는 다른 대체 시간 속에서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어 가는 일정들은 어쩌면 이미 결정되어진 운명적인 길이 아니었을까 여겨질 만큼 수채화와의 만남은 대단한 것이었다. 하루 이틀 싸여져 가는 추억들이 오늘이 되고 내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일생이 되는 그 날까지 소중한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2015년 9월 29일 화요일  인사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