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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여름 양양주변 가족여행

여름 양양주변 가족여행



1. 여행 첫날


  해마다 여름이면 다녀오던 가족여행을 올해에도 마땅한 곳을 찾다가 양양에 있는 김동진 선생님 전세 아파트를 허락을 받아 3박4일 일정을 잡았다. 8월7일부터 8월10일까지로 정하고 추진하였다. 필자는 당일 승용차를 가지고 갔다가 강의를 마치고 오후 2시반에 출발하기로 했다. 예정 보다 조금 늦은 출발이 된 것은 아이스박스를 안내석에 맡겨둔 것을 잊고 그냥 출발했다가 다시 돌아간 것 때문이었다.

  시내는 금요일 오후의 모습을 보여주며 가는 길을 더디게 했다. 다행히 고속도로 사정은 괜찮은 편이었다. 영동고속도로 문막 휴게소에서 쉬었다. 커피 한잔하고 주변을 돌며 굳은 몸을 풀었다. 먼저 출발한 팀과 주문진해변에서 오후 6시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출발한 시간은 오후 5시가 다되어서였다. 같이 가던 아내의 허리통증 호소로 강릉휴게소에서 쉬어야했다. 










  현장에 도착하여 만나 해수욕 마무리가 덜 되어 기다려야했다. 백사장을 돌다가 가까이에 보이는 소돌 아들바위공원 후문으로 들어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였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조명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일행들이 모두 모여 저녁식사를 위하여 주문진 수산시장으로 향하였다.

  너무 늦어선지 문을 닫았다. 할 수 없이 횟집을 찾아 생선을 골라서 회를 쳐주고 매운탕을 끓여주는 방법을 택하였다. 회를 기다리는 동안 감자떡이나 밑반찬이 입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좀 뒤에 나온 싱싱한 회가 졸깃졸깃하고 고소한 게 맛있었다. 횟집 주인의 서비스도 마음에 흡족했다.


문을 닫은 주문진 수산시장

회집 호객행위를 뿌리치지 못하고 끌려들어가

바가지 안 쓰려는 나에게 부르는 가격이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을 수가 없으련만

마음속은 저울질로 복잡하다

버티다가 늦은 저녁식사는

시장 끼에 결국 받아들이고

이기지도 못하면서 꼭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몹쓸 버릇이 남아 들볶인 시간이 밉다

뽑아버리고 싶지만 뿌리를 남기고

잎사귀만 뜯어내고 있다.

-졸시「주문진 수산시장에서」전문



 식사를 마치고 반찬거리를 이마트에서 사려고 찾았으나 문을 닫은 상태였다. 늦은 시간에 숙소를 찾아 들어갔다. 숙소 단지 안에 마트가 규모가 커서 불편함아 없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거실과 방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2.여행 둘째 날


아침산책


 아침 일찍 산책을 나섰다. 단지를 벗어나 바다가 보이는데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을지 찾아 나섰다. 가다보니 굴다리가 보였고 자전거길이 보였다. 시골길 처럼 펼쳐진 농장을 지나 해변도로가 나왔지만 바닷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시 나와 7번 국도와 나란히 만든 자전거도로를 산책하였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가 하얗게 눈에 띄었다. 한 시간 쯤 지나 돌아왔다




















 하조대


 식사를 마치고 하조대를 찾았다.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하륜과 조준이 말년을 보내던 곳이다. 등대 편으로 먼저 올랐다. 해안으로 전개되는 바위나 해변 풍경이 수려했다. 하조대 정자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눈앞에 들어오는 소나무가 200년 보호수다. 멋지게 가지가 뻗어 있어 입이 안 다물어진다. 여지없이 카메라셔터를 눌러야 했다.

  돌아 나오는 곳에 등대카페가 보인다. 에어컨 설비를 갖춘 카페지만 밖에 큰 바위 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더 시원하다. 앉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저리였다. 필자는 지난 여행에서 체험을 했었다. 오미자차 한잔을 마시며 자연을 음미하였다. 세 처제와 어린 두 조카와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②솔비치 호텔 앤 리조트





  다음 코스를 솔비치 호텔 앤 리조트로 잡았다. 솔비치에 도착하니 날씨가 지나치게 화창하여 주위를 뜨겁게 달구었다. 외부를 돌지 못하여 내부를 돌려했지만 막내 처제가 내일 아침 일찍 먼저 가야겠다는 이야길 하며 계곡을 가자는 것이었다. 그랬으면 휴휴암으로 갔다가 근처 계곡으로 갔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③오색계곡


  결국 오색계곡으로 방향을 틀어서 갔으나 행사관계로 돌아나가다 물레방아식당이 있는 계곡에 자리 잡았다. 계곡 앞에는 식탁과 의자가 낮은 물에 잠겨 발을 담그고 앉을 수 있었고, 물가 언덕엔 목제 식탁과 의자가 설치되어있거나 돛자리를 깔고 그 위에 식탁을 놓고 앉는 곳이었다. 지붕은 스레트로 되어 있었다. 닭백숙 집이었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감자전이나 도토리묵, 그리고 메밀전병을 먼저 시켜 먹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던 중 멀쩡하던 날씨가 꾸물꾸물하더니 하늘에서 콩 볶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한참지나 큰 토종닭 백숙이 도착되었다. 방귀가 잦으면 설사가 나온다더니 아닌 줄 알고 미적거리다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잠깐 동안 내릴 눈치가 아니었다. 여행객들은 하나 둘씩 뿔뿔이 흩어지고 우리는 빗줄기가 약해지기를 기다렸다. 계곡물을 가두느라 막았던 물고를 터놓았다. 차 안에 우산을 처제가 가져다주는 수고 덕분에 화장실을 들러 일단 아파트에 들러 옷을 갈아입고 호텔 비슷한 펜션「노벰버 펜션 앤 카페」로 가기로 했다.


번쩍번쩍 불을 피워가면서

꾸물꾸물 하늘이 콩을 볶는다

어두워진 계곡은 오랫동안 멀쩡하다가

꿈쩍도 않고 물놀이에 열중하는 아이들과

감자전, 도토리 무침, 닭백숙, 메밀전병에 취한 「

어른들을 향한 자신의 존재를 무시한 섭섭한 마음에

잦은방귀가 설시를 부르듯

분풀이가 일시에 쏟아져 내렸다

비가 그치기를 학수고대하다 뒤늦게

야외 스레드지붕 밥상머리마다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을 보며

쫓겨나는 세입자마냥 허겁지겁 나와야했던

현장 속에 나룰 바라다보는

물레방아는 천천히 가라며 돌고 있었다

- 졸시「오색계곡 물레방아」전문



④노벰버 펜션 앤 카페


  비가 집에 오는 도중에 그치기 시작하더니 펜션에 가는 길은 달릴 만 했다. 해가 서산에 걸린 듯 하다 주문을 마치고 주변을 나설 때는 조명이 들어왔다. 제대로 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바다가 보이는 조금 안으로 들어와 있는 곳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 92-1) 이었다.

  별도로 떨어진 3층 탑 모양의 홀에서 앉아 있다가 추위를 느꼈다. 주문 차가 완성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본관 홀로 내려갔다. 유럽풍의 건물 구조와 인테리어 장식등이 눈에 띄었다. 이곳은 안면도의「나문재 펜션」과 양평의「생각 속의 집」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3대 펜션에 해당되는 곳이다.

  해외여행을 통해 볼 수 있었던 멋과 냄새가 풍겼다. 일행의 대화는 분위기에 맞춰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리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을 맞기도 하고 안타까움의 그늘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상황까지 전개도 할 수도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눈 이야기는 끝을 내기 어려웠다. 내일을 위해 일어서야 했다.


해외에 나가 보았던 장식들이

이제는 내 나라 안에서

호텔이나 리조트, 펜션들 안에

놀러온 듯 앉아 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친구처럼

반갑게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한다

안부를 묻고 잘 지냈는지

구석구석 뒤져 궁금해 한다


보기 좋고 편리할 것처럼

손 안에 들어와도

한참 돌다 나오면

맘에 들었던 것들이 볼거리 일뿐


오래도록 손때가 묻어

질이 들은 것 보다

어색하고 비릿한 냄새가 난다

- 졸시「노벰버 펜션 앤 카페에서」전문




















 3.여행 셋째 날


  새벽 녑 막내처제와 조카아이는 개인적인 일로 먼저 서울로 떠나야했다. 필자는 밖으로 나왔다. 동내 한 바퀴를 돌고나서 그동안 본 것들을 정리하기 위해 이마트 옆 벤치에 앉았다. 오던 날 저녁에 회 먹던 기억과 비 쏟아지던 계곡이나 노벰버 펜션에 관한 생각을 메모하였다. 잊어버릴까 싶어 적어서 보관해두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침을 맞았다.


①기사문항


  하조대를 전에 들릴 만한 곳은 기사문항이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들어오는 곳이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어판장은 텅텅 비어 있었지만 흔적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수북히 쌓아놓은 그물망이나 그물을 내리기 위한 커다란 돌맹이 더미를 보았다. 그리고 부둣가에는 방파제로 쓰기 위한 구조물로 테트라포드들이 세워져 있었다. 테트라포드는 중심에서 사방으로 원기둥 모양의 네 개의 발이 나와 있는 대형 콘크리트 블록이다. 부두에 올라 등대가 보이고 테트라포드 위에 앉았던 갈매기가 푸드득 날라 갔다. 멀리 38선 휴게소가 보인다.


②휴휴암













  이 지역을 여러 번 찾은 이들도 눈에 잘 안 띄는 곳이 휴휴암이었다. 주차를 해 놓고 암자 입구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멀리 지혜관세음보살과 동해용왕상, 그리고 남순동자가 삼각구조로 서있다. 모두가 내려다보이는 곳이기에 계속 계단으로 내려가야 했다.

  좌측엔 거북바위가 있고 우측엔 달마 닮은 바위가 마중을 한다. 가운데는 바닷물이 파랗게 진을 치고 있다. 이때 보트 하나가 도착되어 사람들을 내려놓고 있었다. 간절히 타보기를 원하는 일행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기다렸다. 일인 당 만원이라는 요금을 내야 했다. 작은 방생 물고기 값이 이천 원이면 보트 이용료는 일인당 팔천 원인 셈이다.

  푸른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시원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달리던 보트는 잠시 멈추어 앞자리에서부터 작은 물고기를 놓아주는 방생을 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사였다. 생명을 구해준다거나 자유롭게 해주는 것은 큰마음 쓰임이었다. 뿌듯한 보람이며 한껏 넓어진 마음을 느꼈다.

  기분 좋게 황어에게 먹이를 나누어 주고 펄쩍 뛰며 받아먹는 모습을 즐겼다. 꼬리를 물 위로 내놓고 헤엄치는데도 갈매기가 해치지 않는다니 신기하였다. 넓은 바다를 곁에 두고 마음은 동심으로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다시 지혜관세음보살님을 뵈러 계단을 올랐다.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범종을 쳐 소원 성취를 빌고 또 빌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은 모든 액운을 날려 보내는 듯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오자마자 눈독을 들였던 눈꽃팥빙수를 먹기로 했다. 절벽에 기대어 세운 카페 안에서 바다 전경을 보며 쉬고 또 쉬고 싶었다.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보트는

나 자신만 바라보고 살던 눈을

남까지 보게 하였다


누구에겐가 잡혀 수족관에 갇히거나 질병에 걸려

자유나 목숨을 빼앗길 위기에 놓인 상대가

나도 아닌 남을 구할 생각조차  못했지만

소원까지 이루어진다며

양동이 안에 작은 물고기를 놓아주라 한다


뱃삯에 포함되어 어차피 내야할 돈으로

뿌듯한 하루를 사들여 세상을 넓히고 있었다

- 윤제철의「휴휴암(休休庵) 방생(放生)」전문



③어성전계곡


  뜨거운 한나절을 보내려고 찾은 곳이 어성전계곡이었다. 오대산국립공원에서 발원한 계곡물은 남대천의 상류로서 동해로 흘러든다. 점심을 먹기 위해 오로지 한 곳 밖에 없는 곳을 찾았다. 차를 식당 주차장에 놓아두고 계곡을 찾아내려갔지만 불행히도 그늘을 찾기 어려워 양산을 쓰고 발을 담구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조카아이는 같은 또래를 만나 물속에 잠겨 재미에 빠져있었다. 건너편 그늘이 보이긴 했어도 찾아가보니 위험이 따라 포기하고 말았다. 필자와 아내는 식당 야외 식탁 그늘에 앉아 쉬었다가 낙산사에 들러 저녁을 대게나라에서 먹기로 했다. 


④낙산사







자주 들리는 곳이지만 들릴 때 마다 다르게 보이는 낙산사 고찰이다. 마치 동종이 불에 타 복건 된 이후 더 절실해졌는지도 모른다. 의상대를 비롯해서 홍련암이나 지장전, 보타전, 관음전, 해수관음상이 보인다. 날씨는 구름이 끼었고 오후라 한결 나았다.

홍련암은 동해안의 절벽에 지은 암자로 바닥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틈으로 바닷물이 위로 넘실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를 맞은 것이 큰 수확이었다. 조선시대의 탄압을 이겨내기 위해 산 속이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피했던 것이 오늘날 경치가 좋은 곳에 위치할 수 있었다하니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다.      


대게나라 조개마을


 속초 먹거리 타운에 위치한 대게 집이었다. 밑반찬으로 나온 것부터 먹기 시작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대게가 나오자 도구의 사용법을 설명을 듣고 일행은 폭풍흡입의 속도로 많은 양이 줄어들었다. 어차피 개인별로 먹은 양은 옆에 나온 껍데기를 보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어서 볶은 밥이 조개껍질에 담겨 사람 수 만큼 들어왔다. 맛이 좋아 잊을 수 없다. 언젠가 동명항 대게마을에서 먹던 맛이 떠올랐다. 조카 영덕이의 먹성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계곡의 물놀이로 힘들었는지 올 때에는 차에서 잠이 들어 못 일어나던 녀석이 배가 부르자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여행의 마지막 밤을 포식을 하게 되었다.


자전거길 산책


  아파트로 돌아와서도 배가 불러 산책을 필요로 했다.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7번 국도에 나란히 설치된 자전거 길을 걸었다. 굴다리로부터 20여분 걸리는 거리였다. 돌아오다가 길 어귀에서 보이는 지오리조트 구경을 더 하기로 했다. 후덥지근하던 바람이 사라지고 나무가 많은 길로 접어들자 시원하게 바람이 불었다. 에어컨 바람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아파트나 리조트나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아파트가 더 나은 느낌이었다. 주거지역이랄 수는 없지만 꽤 많은 세대가 전세로 전향하여 임대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낮에 사온 복숭아와 참외를 까서 간단하게 맥주와 낮에 먹다 남은 막걸리로 마무리 상을 차렸다. 

 

4.여행 넷째 날 

   

①월정사 전나무숲길과 상원사














 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그냥 서울로 올라갈 수도 없어 가는 길에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을 걷기로 했다. 월정사를 살펴보고 전나무숲길을 걸었다. 가까이에 상원사까지 가자고 했다. 점심시간이 지나 망설이기도 헸지만 몇 년 전 보다는 도로 상태가 양호해졌다는 말에 힘을 얻어 다시 가보기로 했다.

시속 30킬로미터의 속도로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먼지도 푸석푸석 날리는 신작로 길이었다. 상원사 입구에 상점에서 옥수수와 감자전으로 요기를 하고 비스듬한 경사로를 걸었다. 300미터 쯤 가니 경사가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다. 그 길 밖에 없는 줄 알고 갔으나 잘못이었다. 좀 더 걸어 들어갔으면 완만하게 걸었을 텐데 나중에 알았다.

  나오면서 추억의 식당을 찾았으나 산채비빔밥이나 황태구이가 예전 맛이 아니었다. 그 집인지도 기억이 분명히 나지 않았다. 주인이 바뀐 것이지 잘 못 찾아들어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값도 만만치 않았다.














②여행을 마치며


  돌아오는 출발시간은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였다. 평일이어선지 막히지 않고 잘 달렸다. 여주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몸을 풀었다. 그리고 막내 처제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둔 둘째 처제의 차를 갖고 나올 수 있도록 가야했다.

  여름여행은 이렇게 막이 내려지고 있었다. 함께 한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모두가 건강하고 서로 간에 소통이 되어 어우러질 수 있었다. 오래도록 지금처럼 유지되길 바란다.

  두 처제와 영덕이를 보내고 아내와 함께 집으로 가야한다. 시작에서 끝까지 불편 없이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애써준 덕분에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움직여 주어 가능한 일이었다. 모두에게 감사하며 또 하나의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2015년 8월 14일 아침

윤 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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