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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길상사 진영각(眞影閣)에서 뵌 법정 스님

길상사 진영각(眞影閣)에서 뵌 법정 스님

 

 

 

 

 

 

 서울에는 새로운 명소가 생겼다. 서울시성북구성북동323번지에 위치한 길상사내에 법정스님 진영각이다. 지난 2010년 향년 77세로 돌아가신 이후 저서에 대한 판매금지라는 말에 「무소유」를 비롯한 여러 권의 책들이 팔려나갔다. 생전에 베스트셀러를 남기셨고 또한 법회를 통해서 하신 말씀을 귀담아두고 깨우치게 되었고 실천에 옮기기도 했었다.

 글을 접할 때면 간결하고 나긋나긋한 표현으로 어렵지 않게 이해시켜 공감을 얻어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다. 한번 글과 눈을 마주하면 다 읽을 때까지 눈을 뗄 수 없는 마력 같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무소유라는 생활의 덕목을 실천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글자 그대로 아무 것도 지니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지니고 있으면 그 것에 대한 보관이나 사용에 대한 의무에 꽤나 많은 부담을 갖게 마련이다. 가능하면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지니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야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릇 사람들은 스님의 일상에 대하여 누릴 대로 다 누리면서 무슨 무소유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오늘날과 같이 기계문명의 발달로 모두가 공유하는 문화 속에서 이해타산의 회오리를 피하기란 극히 어려워졌다. 단체의 크기 여하를 불문하고 소속원 누구 하나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전체가 흔들리는 세상이다. 특히 목소리라도 큰 사람이라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한 동안 법정 스님의 말씀이 저서를 통하여 가슴에 와 닿는 가르침을 받았다. 가르침이라하면 생활의 한 부분적인 길잡이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큰 스승의 말씀은 생활 전반의 근간을 바로 잡아주는 깨우침이 되었다.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모든 것이 본보기로 비추어질 수 있었다. 자신을 배제한 모두를 위한 이야기였다. 오히려 국가 요직에 앉은 불들의 한 마디 보다 국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소위 정신적인 지주라는 말이 떠오른다.

 법정스님의「무소유」라는 책에「무소유」라는 제목의 글에서 매듭을 짓는 곳에 이런 구절이 있다.「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훌훌히 떠나 갈 것이다.」아마도 그분의 모든 말씀을 대신해서 내놓아도 틀림이 없으리라 여겨졌다.

 사회 전반에 걸친 각 분야에서 능력을 지니고 있는 분들은 스스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할 일을 해왔다. 개인 활동에서 많은 수가 단체를 이루면서 경쟁이 생기고 대표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 앞장을 서면서 불합리한 분위기를 만들고 갈라지면서 서로 이익을 위해 헐뜯기 일 수여서 바라다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가정에는 가훈이 있어 집안의 분위가가 느껴진다면 한 나라에 있어서도 정신적인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어른이 계셔야 한다.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옳은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한 질시라고 생각한다. 마치 그 것을 인정한다는 자체가 자신이 그에게 지는 것처럼 여기고 끌어내리기 바쁘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아집 때문이다.

 2010년 3월 향년 77세로 스님은 가셨지만 가르침은 남아 우리 가슴 안에 살아 행동으로 옮겨지리라 믿는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명 받아 길상화 김영한 님은 자신이 운영하던 대원각 대지 7000여 평과 지상 건물 40여동 등 부동산 전체를 청정한 불도량으로 기증하여 그 뜻을 받아들여 1995년 스님은 조계종「송광사 말사」로 등록하고 1997년 모든 부동산 등기를 완료한 다음 송광사 본원「길상사」로 개원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가을의 단풍이 멋들어지게 들어있는 길상사 사찰에서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곳에 법정 스님의 체취를 남긴 단출한 유물과 유골을 모신 진영각이 자리하고 있다. 아직도 살아 계신 듯 생전에 쓰시던 마당 한편에 서있는 나무 의자에 낙엽이 떨어지지 않았다.

 

2014년 10월 28일

윤제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