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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이장하 화백의 지평너머 은유로서의 풍경

이장하 화백의 지평너머 은유로서의 풍경









  2016년 3월 9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39번지 2층 시작갤러리에서 대전고 49회 이장하 화백의 전시회 지평너머 은유로서의 풍경이 오픈되었다. 부득이 필자는 선약이 있어 참석을 못하였다. 틈을 내어 3월 14일 오후 2시가 넘어 찾아갔다.

  종각역에서 내려 11출구로 걸어 나가 인사동으로 향하여 입구 쪽에 노란 바탕에 검은 글자로 이장하라는 이름이 적힌 플랜카드가 눈에 띄었다. 찾으려던 시:작 갤러리를 계단 따라 올라섰다. 전시를 안내하는 글자와 도안이 손짓을 했다. 전시장은 한 실 공간이라기보다 몇 개의 방에 출구 문을 터놓은 듯한 공간이었다.

  작가휴게실에 있던 이 화백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커피 한 잔에 목을 축이고 그림을 보기 위한 시야를 밝혔다. 필자의 시창작과 이 화백의 시간공간의 은유가 감춰진 내면의식의 세계를 주고받았다. 미술을 전공하여 오랜 시간을 교직에 몸담아 후학을 양성하면서 키워온 창작세계는 독특한 그만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사실주의 그림들은 정지되어있는 어떤 동작이나 사건의 모습을 그려 호흡과 감정을 살아있는 느낌을 주려 애써왔다. 그러다 보니 사진과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피카소 이후 입체파가 생기면서 많은 것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는 시기에 도달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끼는 바를 상상력을 동원하여 추상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림뿐만 아니라 예술세계 전반에 불어온 바람이다. 주어진 틀 안에서 화가들은 창작에 몰두하여왔다. 창작은 이 세상에 자신만의 것으로 처음 내놓는 새로운 것으로 세상 사람들을 놀래게 해야 한다. 물질적으로는 발명과 같은 말이다.

  이 화백의 그림에는 또렷하지 않은 어떤 장소가 지정되어있다. 넓은 들판일 수도 있고, 사막일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수묵화의 꽃밭이나 숲이 우거진 녹색지대일 수도 있다. 그 장소를 중심 잡아주는 것은 지평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부분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너머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다. 이 화백이 표현하고자하는 생활공간들이 모자이크처럼 여러 부분으로 결합되어 하나의 화폭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에서 우리는 생각하는 능력과 계산하는 능력을 보았다. 생각하는 것은 벌어지는 현실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것이지만 계산하는 것은 그 능력을 흔들어대는 어떤 능력에 와해되기 쉽다. 적응과 대응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바둑을 두는지도 모르는 채 확률계산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표현한 것들을 바탕으로 다른 방향과 다른 각도로 보거나 생각해낸 형태와 동작으로 새롭게 그려보는 시도들이 대두되고 있다. 그야말로 미술의 경향은 잘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잘 표현하는 그림으로 변화되었다.





 이제는 퇴임을 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소일을 하며 건강리듬을 찾기 위해서라도 나름대로 존재감도 살리면서 시간이 없어 못다한 일을 하나 둘 해나기를 서로 빌어주었다. 뇌운동의 촉진은 전신운동의 효력을 발생한다는 차원에서 상상력을 동원한 감각을 보다 예민하게 연마할 필요가 있다. 그 것은 사물과 사건에 관심을 갖는 관찰에 의한 결과일 뿐이다.


2016년 3월 14일 

윤 제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