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를 빛낸 인물
문덕수 편
1.만남
한국문학의 구심점역할을 꾸준히 하신 문덕수 시인을 모시기로 결정하고 전화를 올리자 쾌히 승낙을 해주셨다. 성산동 234-22 남평빌딩 층에 위치한「시문학사」에 오전 11시로 약속을 하고 10분전 즘 도착하였는데 벌써 오셔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1965년 월간「시문학」주간을 맡아 1995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으로 자리를 옮기실 때까지 책 만드는 일에 몰두하셨고 그 후 오랜 시간을 부인 김규화 시인께서 운영해오셨다. 누구보다도 발행인으로서의 역할이 어려운 것을 아시는 노시인은 월간「문학세계」와 계간 「시세계」에 대한 격려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1) 시 창작 동기니 연유는 무엇인가요?
별다른 동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6.25한국전쟁의 비참한 죽음과 폐허를 직접 보고 말로 들추어내지 못하고 글을 통해 표현하지 않고서는 충격을 이겨낼 수 없어 한 방편으로 습관처럼 시 창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2) 시 창작에 영향을 주신 스승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저에게 영향을 끼친 스승은 서정주(徐廷柱), 유치환(柳致環) 두 분입니다.
저에게 끼친 서정주 시인의 영향을 특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서정주 선생이 저를 일깨워주신 영향을 세 가지로 나눈다면 ①미학(예술에서 아름다운 것을 제일 중요시한 것 같습니다)의 중요성, ②관념보다는 사물에 대한 관심, ③고전의 중요성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미학의 중요성은 예술에 있어서 유미주의의 방향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유미라고 해서 선(善)이나 예의 등 사회성을 경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치환 시인이 저에게 끼친 영향은 시인의 조국, 조국애, 시인의 양심 등을 일깨워 주신 그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선생님의 양친께선 어떤 분이셨습니까?
저의 아버지는 한학(漢學)에 상당한 조예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사회에 기여한 영역도 많고, 또 사회에 손해를 끼친 부분도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저를 키우느라고 고생이 많았습니다. 너의 부모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뜻의 “무첨이소생”(毋忝爾所生)이라는 말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4) 선생님만의 시론(詩論)이 있습니까?
저는 시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이것도 자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하이퍼시의 시론”이 그것입니다. 이 시론이 저의 인생관, 세계관 등의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고, 특히 모든 예술이 다 그렇습니다만 모든 이론이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시론을 처음엔 사물시라고 했다가 나중에 탈관념시(脫觀念詩), 하이퍼텍스트의 시, 그리고 하이퍼시로 고정되었습니다. 최근에 이오장(김제), 이상규(함안) 시인 등이 농경시대의 사투리(方言) 시를 쓰고 있고, 또 그것으로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모든 시론은 언어개혁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하이퍼시의 이론도 언어(관념의 배제) 개혁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워즈워드의 시도 그렇고 초현실주의 동인들의 시론도 그렇습니다. 어쨌든 자기 시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시를 무조건 옹호해서는 안 됩니다.
(05) 가까이 지냈던 친구 분들은 누구였습니까?
함동선(서라벌예대 교수), 이정기(국민대 교수), 김광림, 김시철, 이순섭(필명 이석), 김계덕(시인), 장백일(국민대 교수, 장백일은 국민대학교의 교수가 되도록 내가 조력했던 분입니다), 최원규(충남대 명예교수) 등과 가깝게 지냈으나 이정기, 이순섭, 장백일 등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특히 이정기 교수는 나에게 영문학에 대한 많은 지식을 광범위하게 제공했고, 또 장백일이 국민대 전임교수가 되게 하는데 많이 힘쓴 분입니다.
(06) 마산지역 생활에서의 제자들이 있습니까?
내가 마산상고 교사로 부임할 때 문학평론가이며 서울대 교수였던 김윤식 교수가 3학년에 재학 중이어서 나와의 인연은 반년 간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 후 졸업을 하고나서 중등교과서 ?중학문법?의 공동집필 등 많은 인연이 겹쳐 함께 일을 했습니다. 김윤식 교수는 훌륭한 재사(才士)이면서 문단의 유능한 지도자입니다.
시인이며, 평론가인 조병무 교수, 영문학자 임철규 교수는 연세대 교수이며「일리아드 오딧세이」등의 고전 연구에 정통합니다. 시인인 이광석은 마산 문인의 원로이면서 지도자입니다. 시인인 김재호 등 쟁쟁한 재사 시인들이 많습니다.
(07) 현대시인협회에서의 활동상황이나 출현에 얽힌 스토리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한국현대시인협회는 한국시인협회와 더불어 시단의 중요한 단체입니다. 한국시인협회의 첫 회장은 유치환, 한국현대시인협회의 첫 회장은 서정주입니다. 이 두 단체의 출현에는 각각 숨은 스토리가 있습니다만 여기서 공개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08) 최근의 정기간행물에 대한 소감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최근에 허가제도 아닌 신고제가 되다보니 너무 많이 발간되는 문학 관계 간행물에 대한 의견을 말해 달라는 취지인 것 같습니다. 문학지의 많은 창간은 나무랄 데 없이 좋은 일이나, 검증되지 않은 작품들의 남발로 양에 비하여 질이 떨어집니다. 특히 시, 소설 등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습니다.
(09) 문인의 위상을 끌어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문인의 위상은 문인 각자의 활동에 달려 있습니다. 윤동주나 유치환은 존경을 받습니다. 김동리와 조연현은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지대합니다. 이렇듯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소신이 분명한 문인정신이 필요합니다.
(10) 후학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논어」에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말이 있는데, 뒤에 난 사람은 두려워할 만하다는 뜻으로, 부지런히 갈고닦은 후배는 선배를 능가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중국에서는 너를 낳아준 부모와 조상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을 떠올리면 눈물부터 납니다.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무첨이소생”(毋忝爾所生)이라는 말입니다,
이보다 더 적실한 말로써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안다는 뜻으로 옛것을 통하여 새로운 지식과 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들은 모두 좌우명을 겸하여 자기 교훈으로 삼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2.시세계
문덕수의 시 세계는 시기에 따라 .첫 번째 유형은 초기 시집「황홀」,「선·공간」등에 실린 시들과 그 이후의 일부 시들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자동기술법과 자유분방한 작법이다. 두 번째 유형은「새벽 바다」,「영원한 꽃밭」,「살아남은 우리들만이 다시 6월을 맞아」에 실린 시들로, 현대 문명사회의 여러 가지 부조리, 부도덕, 갖가지 획일화, 단순화에 의한 비인간화를 비판하고 있다. 세 번째 유형은「다리 놓기>」, 조금씩 줄이면서」,「그대 말씀의 안개>,「만남을 위한 알레그로」에 실린 시로, 내면의식과 문명비판, 문명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시적 형식면에서의 실험적 경향과 보수적 경향을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는 문학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상투화된 언어 사용을 탈피하여 언어가 지녔던 감성의 바탕을 다시 포착하여, 언어를 하나의 실재를 구축하는 형상적 재료로 사용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덕수의 시적 경향은 모더니즘 계열의 시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시의 회화성을 통한 이미지의 조형성에 선, 공간과 같은 내면성 및 의지를 이미지화함으로써 사물시의 한계를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3.약력
경남 함안에서 1928년 출생한 문덕수는 경남교원양성소를 거쳐 홍익대 국문과 및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마산상고 교사, 제주대 교수를 거쳐 홍익대 교수를 역임했으며,「시문학」 주간, 한국현대시인협회장, 한국펜클럽 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현대문학상, 현대시인상, 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문덕수는 1947년「문예신문」에 시「성묘」를 발표하였으며, 1955년「현대문학」에서「침묵」,「화석」,「바람 속에서」가 유치환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등단했다. 그는 시 창작 외에도 이론적인 작업에도 관심을 보여「현대문학의 모색」,「현대한국시론」,「한국모더니즘시연구」, 「현실과 휴머니즘 문학」등의 연구서를 간행하였다.
1960년대에 발표한 연작시「선에 관한 소묘」,「종이 한 장」,「새벽바다」등을 고비로 순수 심리주의적 경향을 계속 추구, 현실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반영한 내면세계의 미학을 개척했다는 평을 들었다. 동인지「시단」,「한국시」등을 주재해 우수한 시인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함께 참여한 시인은 이형기, 황금찬, 함동선, 정공채, 신동엽 등이다.
4.주요 작품
침묵(沈默)
저 소리 없는
청산(靑山)이며 바위의 아우성은
네가 다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겹겹 메아리로 울려 돌아가는 정적(靜寂) 속
어쩌면 제 안으로만 스며 흐르는
음향(音響)의 江물
!천년(千年) 녹쓸은
종(鍾)소리의 그 간곡(懇曲)한 응담(답)(應答)을 지니고,
황홀(恍忽)한 게시(啓示)를 안은채
일체(一切)를 이미 비밀(秘密)로 해버렸다.
화석
너는 지금 가장 네 안에서 살아나고 있다. 만상(萬象)이 혼연(渾然)한
네 우주의 내면을 각각(刻刻) 절박(切迫)하는 구심(求心) 속 승화한
일체의 목숨이 피어나고 있다
부딪히며 부딪히며 떨어져 언제 일깨일 안으로 현암(玄暗)히
열리는 절벽을...
겹겹 응고의 누억(累億) 무늬진 정적을 울려 곤(滾)히 스며 흐르는
네 혈맥의 江물은 세월을 소리쳐 내닫는 연봉(連峰)의 아우성을 지른다
숲이며 성좌며 바다의 무수한 체온(體溫)들이 오직 너를
안고 초조히 어울리어 부벼대는 이 냉혹한 용해(溶解) 속에 천년
암흑(闇黑))을 뒤집는 처참한 네 숨결의 설레임이 어쩌면
사나운 짐승으로 트이거나 앳된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바람 속에는
이 따스한 살점의 촉감이 스며 감기면
모두 피가 돌아오리라
어느 외진 산골짝에
휘몰려 지친 태초의 뇌운(雷雲)는
먼 창세의 계절에도 미처 잉태 놓친 영혼들이 휘쓸려 들어
애저리는 심장을 잠잠히 달래고 있었던가
이제 산줄기를 넘실넘실 타고
그저 한량없이 풀려 쏟아지는 투명한 밀도의 꽃보라
원시의 사향 징그러운 나신(裸身) 있어
눈부신 정오의 햇살에 어울져
늙은 포구나무의 앙상한 해골을 비비틀어 올린다
싱싱히 윤오르는 담홍색(淡紅色) 꽃밭에
억세고 훈훈한 원시인의 체취에 취한 여신(女神)들이
춤추는 의상이 너울거린다
연신 북받쳐오른 고고(呱呱)의 신음이 터지는 계곡에는
푸른 눈엽(嫩葉)이 깔리는 지열(地熱)이 피어오르고 거기
언제 춘뇌(春雷)는 짐승의 울음을 터뜨렸으랴
종이컵
인조수지나무에 종이컵이
난쟁이 고깔처럼 조랑조랑
과일들 맺어 풍성이 영글면 다 따서 담아 주스라도 빚을 듯이
종이컵 하나 따서 길바닥에 던져
구둣발로 꾹 밟고 눌러 본다
빈 알루미늄 깡통처럼 쭈그러지면서 한마디 꽥소리 없다
이리저리 굴리고 뭉쳐 손아귀로 꼭 쥐어 본다
오렌지 커피 녹차 혹은 그런 갈증과는
아예 관련이 없다
이 빈 기도 속에
지구(地球) 만한 풍선 꿈이 들어앉는다
언어와 꽃
언어(言語)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된다.
언어(言語)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言語)가
불꽃처럼 타다간
꺼져도,
어떤 언어(言語)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된다
위 글은 시 전문계간지 시세계 2014년 가을 호에 게재된 기획특집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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