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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사를 빛낸 시인들

한국문학사를 빛낸 시인들 - 이상범 편

한국문학사를 빛낸 시인들


이상범 편





1.만남


  경기도 김포시 김포한강로 2가 장기동 수정마을에 거주하시는 이상범 시조시인을 뵙기 위해 찾은 것은 2015년 9월 14일 오후 2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초행길이라 전화로 길을 여쭈어 찾느라 다소 지체되었다. 집 앞에 도착하였을 땐 이미 현관문이 열려있었고 필자에게 주실 자료를 찾으시느라 분주하셨다.

오랜 기간을 시와 함께 그리고 많은 문인들의 저서가 쌓여 있는 그 틈으로 의자를 내 주시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언제 뵈어도 따스한 미소가 깃들은 모습에서 고향의 아버님을 찾는 마음이었다.

  꽃 사진을 찍기 위해 꽃을 찾아다니는 일이 일과가 되었고 운동이 되었다. 시내용에 맞는 사진을 찍어 시집을 만들어 보고 출판에 임하시는 분이셨다.

필자가 소속되었던 강서문인협회와 동작문인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시낭송회에 참여하셨다가 행사를 마치고 차 한 잔을 나누며 디카시와 사진 디자인에 관한 말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졌던 기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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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창작의 동기는 무엇인가요?


  1958년 필자가 등사한 자필시집을 갖고 1961년 육군소위로 임관, 비무장지대에 파견근무를 하게 되어 문학 수업이 시작되었다. 외출시엔 미혼시기였으니 한 달 봉급을 털어 문학관련 서적을 사들고 귀대했으니 책은 자꾸 쌓여갔고 내겐 문학 수업의 발판이 생긴 것이다. 당시 비무장지대 안의 서가엔 많은 문학 서적이 꽂혀 있었고 다독과 난독을 가리지 않고 문학서적을 섭렵해 나갔던 것이다. 당시 비무장지대 초소는 자가 발전으로 불을 밝혔고 “운해(雲海)에 뜬 연꽃”이라 할만치 아름다웠다. 정성스레 습작한 시를 정서해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날, (1962년도쯤)서울에 와 이태극선생을 만났고 그것이 문단을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를 “사랑과 기도로 구워낸 시를 외딴 산지기의 노래”라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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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생님의 시론에 대하여 한 마디 해주십시오.


  시는 하나의 구원이며 눈물이었다. 사진 또한 그러한 영장 선상에 있다. 건강의 화복을 위해 손바닥 안에 드는 소형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산과 들, 야생화와 원예종의 꽃을 두루 섭렵했다. 꽃에 사물의 형상이 숨긴 시의 소재를 찾아 꼬박 두 해 하고도 반년을 소모해야만 했다.

  원하는 접사를 위해 되도록 많은 숫자를 포착해야 했고, 추리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예술성과 선명성을 위해 포토샵을 적지 아니 활용하기도 했다. 더러는 그림인 듯 여겨지는 것은 모두 그러한 연유에서다. 결국 시와 사진이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상승작용을 함으로서 사진 속에 시가 스며들고 시 속에 사진이 녹아들어야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 가운데 우주가 있었고 섭리가 숨 쉬고 있었으며 세상의 온갖 형상이 숨어있어 시의 출산을 도왔다는 것은 실로 큰 수확이자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내 시와 동행하게 된 사진에 대하여 고마운 눈길을 보낸다.

  그리고 초록빛 세상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한 십년은 될 듯 싶다. 아팠던 해와 달을 다스리는 방편으로 틈틈이 스케치를 했고 그 위에 마음의 색깔을 칠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심신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같은 작업은 여행 중에 이루어지기도 했고 더러는 시작이 엮어질 때 다가서기도 했다. 초록물감을 붓 끝에 찍어 즐기듯 화지에 옮겼다.

  숲이며 산을 바라보는 것이 그저 행복하고 평화로웠기 때문이다. 시가 아플수록 자연에 대한 애정과 매력은 더욱 진하기만 했다. 그림에선 시가 깃들기를 소망하고 시간을 넘어 정성을 기울였지만 늘 아쉽고 미흡하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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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로 찾았던 추억의 장소가 있으시다면?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보고 싶어 찾는 그곳을 사십여 차례 다녀왔다. 후배들하고 한라산을 걸어 오르곤 했으나 백록담 정상에 가지는 못했다. 대부분 정상이 빤히 보이는 윗세오름 까지 올랐다. 한 번은 별러서 정상에 오를 생각이었지만 오르는 길을 정비하느라 공사 중이어서 포기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그냥 내려오게 되었다.

  그 곳을 오르거나 내려오는 동안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신비스러울 지경이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으로 유명한 주목이 죽어 고사목이 되어 하얗게 뻗은 가지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이름다웠다. 제주공항에서 서귀포시까지 제주도를 종단하는 5.16도로는 해발 천 미터를 지나게 되는데 성애가 끼고 눈발이 날리다가도 아래로 내려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이 없었을 정도로 날씨가 변화무쌍하였다.

  유채꽃이 한창 필 무렵이면 제주도가 밀짚모자를 벗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노랗게 챙처럼 펼쳐져 보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채꽃을 찾는 벌과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듯 사진을 찍느라 야단들이다.

  다녀와서 얼마 안 되어서 동기간을 떼어놓고 온 것 같아 궁금해지는 곳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되새겨보는 것이 습관이 될 정도다. 그저 스쳐지나가도 좋을 법한 곳에 나무나 돌에게 나누었던 대화가 가슴을 드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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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독자들과 가까이 했던 기억이 있으시다면?


  독자들이 애송하는 시로써「가을 손」,「원경의 바다」가 있다. 낭송하는 현장에서 마주할 때 기쁘고 뿌듯하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만은 않았다. 더러는 마치 자기 시인 냥 표절을 한 것이 들통 나서 어느 백일장이나 문예지에서 당선작으로 선정되었다가 취소되었던 일도 있었다.

  사과가 많이 재배되는 영주 소적산 기슭 무당골에 혼자 사는 김신일(金信日) 독자는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땅 5천 평을 사서 농사도 짓고 집을 지으려 여러 번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지관을 불러 수맥이 흘러 물이 흘러 다 무너져 지을 수가 없었다는 걸 알고 집 지을 자리를 정해준 곳이 바위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나무로 집을 지어 살고 있다.

  머리가 아플 때면 그곳에 가서 그림도 그리고 시도 써서 놓으면 집 안에 붙여서 영주 문인들이 찾아올 때 보여주며 자랑을 하고 있다. 언제든지 찾아가면 토종닭이나 염소, 거름 안준 연한 열무 물김치로 기분 좋게 대접을 받고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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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취미 생활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이상범시조시인은 오래전부터 시흥(詩興)에 곁들여 화취(畵趣)에도 전념해온 화가이다. 그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문인화 계열에 포함시키려한다면 거부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종래의 문인화 개념에는 그 매재(媒材)로서 응당 먹과 붓, 화선지 등을 근간으로 한 수묵(水墨)이 보편화 되고 있는 데, 그 범주를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는 왕유, 소동파나 근대 신 문인화의 명가로 꼽히는 오창석(吳昌碩), 제백석(齊白石) 등의 주류화풍과도 풍격이 다르다. 문인화가?문인이 그리는 그림?이라는 본래의 정의대로라면 이상범도 마땅히 문인화가임에 틀림없다. 그는 우리 시대의 문인화가이다. 한 폭의 화면에 그림을 그리고 그 여백의 공간에 시문의 화제(畵題ㆍ화찬)을 쓰는 격조 높은 방식을 취하지 않았을 뿐, 그는 시조를 짓고 그림을 그리는, 양립하여 두 장르 사이를 넘나드는 현대적 문인화가일 것이다.

 시와 그림이 함께 어우러지기도 하고 또는 그림만으로 채워진 화면을 작가가 발길 닿는 곳 어디든 현장에서 임사(임사한) 풍경화이거나 군락을 이루며 청신한 맵씨를 자랑하는 야생화를 단아하고 매끔하게 묘사한 작품들이다. 불투명 수채, 호분, 색 연필을 사용하여 완결시킨 작품의 세계는 지극한 적요가 감도는 관조적 무심경, 혹은 동화적 시심이 담긴 도원경, 서양의 세밀화(미니어쳐)의 느낌도 주는 밀집된 짜임새의 삼라만상 같은 것이다.

  깊숙이 스며드는 정갈한 맛이 있다. 청록색을 중심으로 색 무리를 이룬 화면은 염불삼매에 빠진 선승의 마음처럼 깊은 집중이 있다. 자연에서 접할 수 있는 감흥을 정지태로 바꾸어 맑고도 긴 영운을 조성한다. 적조라는 의미로 모든 것을 종합할 수 있을 듯도 싶다.

  세선이 강조되고 전체로서 선적이기도한 선 향태의 집합이라 할까, 거기에 다소 투명한 중간색 색조를 가미하였다. 정밀한 관찰로서 자연과 사물을 전개시켜 나간다. 화면은 간소한 듯 채워진 공간으로 함축미를 담고 있다. 모든 작품은 한결같이 사생적이기도 하지만 축약의 묘를 살렸다. 세부가 생략되고 변조되어 화면의 깊이나 두께 보다도 면적인 구성력에 치중했다고 김인환 미술평론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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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새로 만든 시의 세계「디카시」는 무엇인가요?


  팔순의 노시인은 젊은 독자들에게「디카시」로 말을 건넨다. 시집「하늘색 점등인」은 이 시인이 직접 촬영한 디카 사진과 단수로 된 시조로 엮어낸 책이다.「설악동 이슬」,「물소리」,「갓 스물 겉말이」,「새가 열리는 나무」등 60편의 시가 실렸다.

  그는 이미「디카시」라는 이름으로「꽃에게 바치다」,「풀꽃 시경」,「햇살 시경」등 세권의 시집을 발간한 바 있다.「디카시」란 그의 정의에 의하면 디지털시대에 필름이 아닌 메모리칩을 통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시를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그의 디카시에서 사진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 아니라 시와 사진이 함께 공존함함으로서 비로소 디카시가 완성되는 것이다. 시와 사진의 콜라보레이션은 시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시를 잘 읽지 않는 요즘 세대에게 많은 공감을 얻늘 것으로 보인다. 사진 크기 만 한 책은 핸드백에도 쏙 들어갈 만한 앙증맞은 사이즈로 휴대하기 편리하도록 했다.

  이 시인은「사진과 시가 공존하고 상부상조하며 서로가 한 몫을 하게 했다. 도한 배면의 색을 바꾸는 일 뿐만 아니라 영상을 단순화하고 기호화하는 압축미에 신선도를 높이는 디자인도 마다하지 않았다」며「이제 내 눈도 노안의 한도를 적지 않게 느끼고 있다. 이싲ㅂ으로 디카시의 대강과 끝손질을 다시 보여드리고 싶다. 그 동안의 나의 노고에 고마웠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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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가까이 지내셨던 친구 분들이나 제자는 누구였습니까?


  이상범 시조시인의 시「돌탑」을 읽고「백담사 앞 개울바닥엔 크고 작은 조약돌로 만든 돌탑이 수백 개가 서있었다" 는 지은이의 설명이 붙어 있는 3수의 시조다. 매월당 김시습의 글방이 되기도 하고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이 거기서 태어났다하여 '만해 기념관' 이 세워지고 지난해는 세계 석학까지 불러들여 만해축전이 쩌렁했었다. 그 앞개울의 돌탑들에서 만해의 매운 눈빛은 으레 보겠네만 탑신이 걸어 나와서 별의 말을 귀띔했다니 그래 무슨 말을 했을까?」라고 말씀하신 이근배 시조시인은 가깝게 지내는 친구다.

  그리고 김재현(문학박사, 경기대 교수) 시조시인도 문단활동에 열중하던 오랜 친구였다. 이젠 나이도 들고 건강들이 신통치 않아 어쩌다 전화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상범 시인은 10년 전 간암을 초기 발견하여 담배를 끊고 지금은 완치되었다, 사모님께서는 뇌졸증으로 화장실 출입을 겨우 할 정도여서 이 시인님께서는 틈을 내야 외부출입이 가능하시다.

  제자로는 시조시인인 권갑하(문화콘텐츠학 박사), 김삼환(외환은핸지점장), 정수자(수원), 박권숙(부산), 이솔희(대구), 이성보(거제, 난 재배 등 다양한 활동), 김은남(산악인 - 500개 산 이야기, 책 2권발간) 등이 중견 시조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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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시를 쓰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갈고 닦아야하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반드시 표현할 어떤 대상을 찾아야 한다. 너무 황당한 상상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건에 대한 것들은 현장을 꼭 찾아가거나 책을 구하여 읽고 확인한 다음에야 비로소 작품을 쓸 수 있다.

  예를 들면 동학에 관한 시를 쓰기 위해 동학에 가담하여 병참지원을 하시느라, 아침에 나가 저녁까지 걸어야 도달하는 넓은 전답을 지녔던 분이 팔고 또 팔아 결국 탕진하시고, 식솔들이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만큼만 남기셨던, 증조할아버지의 생활 본거지를 찾았던 적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호랑이 새끼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처럼 현장에 남아 있는 흔적들에 관한 관찰을 통하여 파헤쳐 보는 눈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마주하며 느껴지는 시상도 마찬 가지라고 볼 수 있다. 보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없다. 늘 같은 생활의 연속선상에서 만나는 시상들로부터 탄생되는 것이 창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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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선생님의 문학 활동을 돌아보시다면…?


  문학을 하면서 지내온 시간들이 후회스럽지 않았다. 자연에 널리 퍼져있는 대상을 벗을 삼아 충분한 이야기를 나눔으로서 비유의 문을 열 수 있었다. 하고 싶다고 해서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어서 자부심 내지 자존감을 가지기에 충분하였다.

  혼자 지내면서도 외롭거나 심심하다고 여겨질 때가 거의 없었다. 시상을 얻어 갖고 있으면 다듬는 동안 정신을 몰두하여 보내는 시간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모든 것에서 떠나 나만의 세상에 와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돈이 들거나 준비물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이면서도 하나의 작품으로 탈고가 되었을 때 얻어지는 성취감이나 상쾌함은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이 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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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세계


  자연과 인간의 정신적 친화의 교감이 시 전체를 관류하고 있다. 식물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생명 의식을 탐구하기에 그의 시는 자연스럽게 이 땅의 역사적 삶에 깊은 관심을 두게 된다. 수난의 역사, 시련 받는 민족의 삶, 또는 고달픈 민중들의 아픔과 슬픔, 특히 그의 시가 끊임없이 정신의 자유를 갈망한다는 점이다.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신성의 갈등과 화해 속에서 정신의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 그의 시적 이상이자 목표라는 것이라고 김재홍 평론가는 말한다.

  이상범의 문학세계는 다양하고 진솔하며 인간적이다. 그는 문학적 이념이든 혹은 문학에 대한 태도는 어느 한 가지만을 고집하거나 인위적으로 합리화 시키지 않는다. 정직하게 삶을 반영하고 또 그 것을 보다 인간적인 것으로 되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뿐이다. 나는 이상범의 그러한 노력이 우리 시대의 소외된 삶을 문학적 차원에서 보다 질적으로 개선시키리라 믿는다고 오세영 문학평론가는 말한다.

  이상범의 시조는 가을 아득한 하늘을 푸른 배경으로 하여 돌아가는 길을 암연히 생각하는 표정을 관리한다. 들끓는 격정의 소용돌이 보다는 걸르고 가라앉힌 평정심을 바탕으로 고요의 의미를 반추하면서 화해와 포용의 넓이를 셈하고 있다. 가을볕의 따스함에 목을 축이고, 아득한 아버지의 음성을 꺼내보려는 순수에서 눈물을 감추는 따스한 성품의 시인은, 고향을 묻는 길을 처연하게 생각하면서도 순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동화적 정신을 잃지 않는다.

시인의 정신을 현실공간에서 아름다움으로 육화한 변용의 미학이 의식의 기저를 이루어 , 따스하고 깊이로 다가오는 햇살이 물살위에 반짝이는 가을 호수의 정경 같은 기품이 이상범의 시라고 채수영 평론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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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약력


 충북 진천 출생(1935), 육군 소위로 임관(육군보병학교)(1961),「시조문학」추천완료(1963) 문공부 주최 예총 주관 제 3회 신인예술상 시조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제 1회 이상범 시화전 개최(이상범 중위 - 시조), 김인중 소위(그림 - 신부화가))(1964),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1965), 제 2회 이상범 시화전, 대위시절 포천 일동에서 개최(본인 시서화)(1969), 제 3회 이상범 시화전, 소령시절 대구 백화점 화랑에서 개최(본인 시서화)(1973), 자연을 소재로한 이상범 소품전을 인사개러리에서 개최(1995),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1976), 한국문인협회 이사(1977), 육군 소령으로 국군의무사령부에서 예편(1977),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1984),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재선(1989),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1993),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1995), 

 

 시집 :「일식권」(금자각)을 육필로 출간(1967),「가을입문」분도출판사(1976),「묵향가에 미닫이가에」우석출판사(1979),「아, 지상은 빛나는 소멸」문학신조사(1980),「꽃ㆍ화두」 영언출판사(1985), 난(蘭) 사화집「하늘의 입김, 땅의 숨결」청담문학사(1987), (선집)「시(詩)가 이 지상에 남아」청학출판사(1989),「내 영혼 은(銀) 스푼은」민족과 문학사(1990), 「하늘 아래 작은 집」도서출판 토방(1993),「고요 시법(詩法)」도서출판 토방((1994),


(시화)「오두막집행(행)」도서출판 토방(1995), (대표선집)「별」동학사(1997),「신전의 가을」동학사(2000),「꿈꾸는 별자리」태학사(2000),「풀빛 화두」책만드는집(2001),「풀무치를 위한 명상」동학사(2004), (시서화집)「시인의 감성화첩」도서출판 토방(2004),「꽃에게 바치다」도서출판 토방(2007),「풀꽃 시경」도서출판 동학사(2011),「햇살시경」도서출판 동학사(2012)


수상 : 한국문학사 제 4회 정운(이영도)시조문학상(1983), 한국문인협회 제 22회 한국문학상(1985), 중앙일보 제 8회 중앙시조대상 대상(1989), 동명사 제 10회 육당시조문학상 창작부뭄 대상(1995), 제 4회 이호우시조문학상(1995), 문학사상사 가람시조문학상 대상(1997), 제 12회 고산문학대상(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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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주요작품


가을 손



두 손을 펴든 채 가을볕을 받습니다

하늘빛이 내려와 우물처럼 고입니다

빈손에 어리는 어룽이 눈물보다 밝습니다

비워 둔 항아리에 소리들이 모입니다

눈 발 같은 이야기가 정갈하게 씻깁니다

거둘 것 없는 마음이 억새꽃을 흩습니다

풀 향기 같은 성좌가 머리 위에 얹힙니다

죄다 용서하고 용서받고 싶습니다

가을 손 조용히 여미면 떠 날 날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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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창(南道唱)



소리를 짊어지고

누가 영(嶺)을 넘는가

이쯤 해 혼을 축일

주막집도 있을 법한데

목이 쉰 눈보라 소리가

산 같은 한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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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운(韻)

- 저녁 예불에



해거름에 휘적휘적 오리 숲을 걸어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 금강문 사천왕문을 들어섰다

별안간 귀가 멍멍 고요를 깨는 큰 북소리, 큰 북소리 천둥소리, 천둥소리 큰 북소리, 속리산이 둘레둘레 흔들리고, 소나무 굽은 가지에 바람이 일고, 대웅보전 원통보전 팔상전 능인전 할 것 없이 추녀 끝이 흔들리고, 추녀 끝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집채가 저저마다 흔들리고, 법주사 전체가 학이 되어 깃을 치는가 싶더니 한 송이 연꽃이 되어 동동 떠오르기 시작한다. 법주사가 뜬다. 법주사가 뜬다. 법주시가 춤을 춘다. 법주사가 배가 되어 넘실거린다. 미륵불도 미소를 띤 채 덩실덩실 춤을 춘다. 속리산이 뜬다. 속리산이 뜬다. 속리산이 우즐우즐 춤을 춘다. 속리산이 허겁지겁 덜려간다 큰 북소리 천둥소리, 천둥소리 큰 북소리, 귀먹은 바위도 눈멀은 성좌도 지금 막 깨어나고 ……

이윽고 산도 절도 깃을 접고 적막 속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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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견문록(見聞錄)



마른 풀도 키를 낮춘 *우금치란 언덕배기

뼈와 살 합성마저 바람으로 누워있다

일백 년 잡초의 사발통문 깨지 않은 깊은 잠.

역사란 승자의 몫 죽은 자는 죄도 죽고

후대의 가슴에 남아 울음 우는 그날의 말

절통한 이 땅의 쑥물 대접으로 들이킨다.

송장배미 저수지 위 눈보라가 달려가며

내뱉는 그 육성을 심장으로 엿듣고 있다.

죽창에 쇠스랑을 든 수만 거친 숨소리…….

그날 동학에 합류한 나의 증조할아버지

평생을 쫓기는 삶 쉬쉬하다 숨을 거두신

봉분에 큰절 올리지만 아무 말씀 없으시다.

*우금치 : 동학농민군 3만이 공주성을 향해 네 갈래로 진군, 관군ㆍ왜군과 맞서 사우다 끝내는 주력군 1만이 최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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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포 환상곡

- 달팽이 선생에게


어쩌면 마지막 지휘일지 모르겠다

노구에 연미복 끌며 천천히 등장하는

먼 달빛 조명 받으며 무대 중앙 서있다.

달팽이의 여린 뿔에 휘감기는 우주의 소리

숨 막히는 고요 속에 비밀의 문 열어 놓고

음색도 꺼풀 벗고서 별빛 불러 앉힌다.

숲에 바람이 일고 물면은 들먹인다

이파리와 이파리 사이 밤의 향기 돌며 가고

저 멀리 강물을 뉘인 곳 풀숲들이 웅성댄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그가 잡은 지휘봉에 춤추는 우포 환상곡

갈채 속 연미복 끌며 점 하나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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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벌판



억새꽃이 나부끼며 빛을 끌어당긴다

몸 비벼 금빛 띠고 다시 비벼 은빛 띠는

아직도 섬찍섬찍한 그 말씀의 영락소리

아득한 변방에서 물소리가 산을 오른다

망루의 높이에서 가슴을 치는 골몰

내 눈빛 맑게 바래어 흩고 있는 억새꽃

정수리 찍어대면 샘물 터져 뿜을까

좌대에 눈감으면 그 여운의 높은 파고

잃은 것 얻은 것 없는데 밀짚모자 홀로 간다.

가을 하늘 한 장 떼어 거울 정문 걸어두면

뉘이며 일어서는 비늘 빛 화엄설법

육신은 보시로 올리고 바람 속에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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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시 전문지 계간 <시세계> 2015년 겨울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