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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사를 빛낸 시인들

한국문학사를 빛낸 시인들 - 함동선 편

문학사를 빛낸 문인


함동선 시인 편


1. 만남


  2015년 1월 29일 목요일 오후 3시 혜화로타리 카페 엘빈(Cafe De LㆍBean)에서 함동선 시인을 뵙기로 했다. 필자는 경남 하동군에서 손님이 오셔서 겨우 시간 맞추는데 급급했다. 점심 약속으로 늦추어 잡아주신 시간 보다 일찍 도착하셨다. 통화 중이셨지만 반갑게 맞아주셨다. 저와 약속 때문에 선약에 불편을 안 드렸는지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정근옥 시인 시집 출판기념회 때 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인사말을 꺼냈다. 함동선 시인의 내외분 안부였다. 간결하고 편한 말씀으로 대해주셨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이시면서 사단법인 한국현대시인협회 고문으로 86세 연세에도 근처 사무실에 아직도 문학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신 시간을 보내셨다. 문인은 어느 누구나 좋은 작품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지론을 펼치시며 다작을 피하시고 과작을 하셨다.



2.시창작의 동기는 무엇인가요?


  시는 독자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고 그 끝은 가르침을 줍니다. 사실 가르치는 것과 즐겁다는 것은 서로 관계가 있습니다. 시가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는 마땅히 즐거움을 주어야 하고 반대로 시가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는 교훈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젊은이들이 참호 속에서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고 그 다음날 전사한 이야기는 시의 기능을 상기시키는 한 보기가 됩니다.

‘1966 문학의 해’의 공식표어가「문학의 즐거움을 국민과 함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습작 시는 글짓기 시간에 선생님이 가르친 대로 ‘보고 느낀 대로’ 시를 썼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시적 감동보다 생활감동으로, 이미지보다는 보고 들은 일들을 있는 그대로 쓴 치기와 감상적인 작문이었던 것입니다.

  치기와 감상적인 것을 넘는 과정이 문학수업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학수업을 하면서 시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선생님의 시에 영향을 미친 스승은 어떤 분이십니까?


  8.15광복을 맞이한 것은 연백공립농업중학교(6년제) 2학년 때의 일입니다. 우리는 독립이 다 된 것처럼 ‘대한독립만세’를 목 아프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슬그머니 해방이란 말로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말의 혼란 속에 민심은 일본 사람의 집을 부수고 일본 책을 불 사를 때 나는 한글을 익히고 우리의 역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동훈東勳 둘째 형이 우리의 시집과 소설집 그리고 우리말로 번역된 세계문학전집이 나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니 일어판 세계문학전집을 읽어야 한다면서, 신조사新潮社 세계문학전집 36권과 일본문학전집을 생일 선물로 사 주셨습니다. 그 형은 해주동중학교를 나온 수재로 등단을 못했지만 시와 소설을 쓰신 분입니다. 오늘의 내 시적 재질은 그 형한테 받은 유산인 듯싶습니다. 그 형은 6․25전쟁 때 인민군에게 총살을 당했습니다. 시「형님은 언제나 서른네 살」은 그 형을 노래한 시입니다.

 중학교 문예반 활동 중 기억나는 일은 강봉식康鳳植(고려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선생의 특강입니다. 강 선생은 월남하는 길로 잠시 영어 선생으로 재직하셨는데, 김기림의 작품에서 주지성, 회화성, 문명 비평적 태도에 대한 강의에 얼마나 가슴을 설렜는지 모릅니다. 이해는 못했지만 일종의 지적 호기심으로 들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창작과 모방이 분명하지 않았던 습작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쓴 웃음을 지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했습니다. 그 문예창작과는 작가 양성을 목표로 창작이론과 실기를 주로 가르쳤습니다. 교수진은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문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스승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선생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신화는 시작품 최초의 말이고, 민간전승의 탐색, 토착어지향, 우리의 전통성 지향을 배웠습니다.


4. 선생님의 시론에 대하여 한 마디 해주십시오.


 시는 서정시입니다. 엘리엇은『시의 세 가지 목소리』에서 제1의 목소리, 제2의 목소리, 제3의 목소리로 나누었습니다. 이 나눔은 그간의 서정시, 서사시, 극시 등의 분류법과 차별화 됩니다. 제1의 목소리는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입니다. 말하자면 시인 자신의 기분, 기쁨, 한숨, 고통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 목소리는 짧고 집중적입니다. 제2의 목소리는 청중에게 발언하는 것입니다. 시인이 독자에게 발언하는 것은, 서사시를 비롯하여 교훈시, 풍자시, 개화기 시가 등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시입니다. 제 3의 목소리는 극시와 같이 시인이 만들어낸 주인공을 통해 말을 하는 시인의 말입니다.

  시인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상상적 인물이 다른 상상적 인물에게 하는 목소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제1의 목소리는 “직접 시인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시”라는 점에서 서정시라 했습니다. 한편 이 서정시에 대해 미당은 동양에서 ‘抒情詩’라 번역한 lyric는 ‘情을 抒하는 시’뿐만 아니라, 지혜로써 추구하는 사상의 뜻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시는 가슴으로 쓰느냐 머리로 쓰느냐 하는 물음은 고전주의자와 낭만주의자의 논쟁에서 시작됩니다. 이 역사적 논쟁을 되풀이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뇌와 심장이 중요한 기관이 되어 있는 것과 같이 시도 머리와 가슴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머리와 가슴 어느 부분이 시를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그 둘을 어떻게 하나로 구성하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동안 감정의 분출로 본 낭만주의 시는 지성의 절제가 부족하고, 지성 편중의 모더니즘 시는 감정을 배제하고 공허한 언어유희와 세계주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시의 지성에는 심장이 뛰는 감정의 광맥이 있어야 하고, 시의 감정에는 풍자, 아이러니 등 주지적 사고가 받쳐주어야 합니다. 이같이 시란 서로 다른 두 개의 경향이 생명의 전체성을 표현해야 합니다. 풍요한 정신이란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경향이 한쪽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을 풍요하게 개화시키는 정신입니다. 때문에「시」라는 제목의 시에서 “가슴에서 머리로 가는 여행이다”라고 정의한 것입니다.


5.취미 생활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요 


  산을 좋아하는 내개 왜 산에 오르는가 하고 묻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때마다 조지 말로리가 “산이 거기 있으니 오른다”는 말로 대신 합니다. 조지 말로리는 영국의 전설적 산악인입니다. 1924년 6월 8일 에베레스트 8,220m에서 실종됩니다. 그의 시신은 1995년 미국 산악인을 비롯한 다국적팀에 의해 8,230m에서 발견됩니다. 영국 BBC방송국에서는 에베레스트의 전설이 된 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얼마 전에 tv조선은 그 다큐를 방송했습니다.

  산은 여럿이 가는 경우와 혼자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한국문인산악회를 창립한 사람으로 산악회의 앞장을 섰지만, 홀로 산행을 많이 했습니다. 중국의 임오당은 다도를 말하면서 혼자 차 마시는 것은 이속이고, 둘이 차 마시는 것은 한가, 셋 이상이 차 마시는 것을 유쾌, 조석, 잡다라고 했습니다.

  여럿이 가는 산행은 즐거움과 유대감을 갖게 하지만, 번잡하고 소란스럽고 구속을 받습니다. 그러나 혼자 하는 산행은 떠남, 해방감, 자유, 관조, 자아의 관찰, 충실한 삶을 깨닫게 될 때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묻고 물으면서 산에 오릅니다. 결국 산행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갈 때 등 뒤에서 다시 산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는 산에서 서두르지 않고, 욕심 부리지 않는 마음을 배웠습니다. 이 배움은 나의 시 쓰기와 내 인생과 연관된다고 보아집니다.


6. 주로 찾았던 추억의 장소가 있으시다면…?


  어떤 관계를 맺고 살던지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편하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던 걸 기억에 담고 싶습니다. 서로 간에 소통할 수 있는 사이를 유지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밥을 먹는 사이가 제일 가까운 사이라도 말 하는 것처럼 흔히 술을 함께 마시며 지내는 집으로 종로에 있었던「낭만」주점을 떠올립니다. 자주 못 만나던 사람들까지 그곳에서는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러 직종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과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7.가까이 지내셨던 친구 분들은 누구였습니까?


  문덕수(홍익대 교수, 예술원 회원), 조운제(고려대 교수), 손재준(고려대 명예교수),

성춘복(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최은하(전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 장윤우(성신여대 교수), 김계덕(시인)과 가까이 지내고 있습니다. 조운제 교수는 몇 해 전에 작고했습니다.


8.시세계


(1)자연과 향수


 함동선의 시세계는 시인의 고향과 같이 38선 이남이면서 휴전 후 북이 된 미수복 지구는 개성, 배천, 연안, 옹진 등이다. 그의 본적지는 일제 강점기는 황해도, 8·15광복 후는 경기도, 6·25전쟁 후의 가호적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대현동 산 9번지다. 본적이 세 번 바뀐 것은 전환기 우리 역사의 아픔이기도 하다.

 문덕수文德守시인은 초기시집 ?우후개화?, ?꽃이 있던 자리?에는 자연 제재의 시가 많으나, 그 자연은 남다르게 “자연 질서의 추구를 통하여 현실적 삶의 리얼리티를 인식하고, 자연과 현실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시에서 이 향수라는 망향의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시집 ?꽃이 있던 자리?의 시「고향은 멀리서 생각하는 것」,「그 강은」,「내 출생한 강아」,「소묘」,「예성강 하류」등이다. 그 후 이 망향의식이 분단시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시집 ?눈 감으면 보이는 어머니?에서 찾아볼 수 있다.


(2)고향상실의 시


 고향은 모태심상과 일치함으로 어머니와 같은 이미지가 된다. 어머니는 태어남을 주는 원인이라면 고향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최초의 인연을 맺는 장소로 인식된다. 생명과 삶의 원형이 한 가지에서 발원하는데서 고향과 어머니는 자연스레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 잡는다. 더구나 과거 공간으로 가는데서 어머니는 자혜로운 사랑을 잉태하는 개념이 우선하고 고향은 추억이라는 행복함을 놓치지 않으려는 항상 같은 선을 유지한다.

 분단시대의 대표적 담론을 펼치고 있다고 평가받는 민중시 계열의 고은, 신경림, 김지하 등과는 다른 개성을 지닌다. 민중시 계열의 시인들이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워서 정치성, 운동성을 띠고 집단성을 드러내면서 저널리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결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음에 비하여, 함동선의 시적 담론은 매우 내재화되면서 정치적 운동성이 배재된 채, 소리 없이 진행되어 온 것이다.

 함동선이 식민지와 분단시대의 민족적 체험의 정서는 분단의 역사적 상황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거나 해석하게 하지 않고 시적 상상력을 부추기면서 지적성찰의 단계까지 이르게 하는 동인으로서 중요한 시적 모티브다. 이 비극적 모티브를 동력으로 삼아, 함동선은 느낌과 깊은 생각이 잘 어우러진,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의 슬픔, 고통, 그리움, 그리고 역사의식 등을 한결같이 형상화해왔던 것이다.


(3)생태시


  시집『연백』의 표제시「연백」에서 고향상실의 시는 분단이라는 정치적, 체제의 대립을 생태계의 분단으로 심화 확대시킨다. 분단을 뜻하는 “38선 말뚝”은 민족공동체, 정치공동체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생태계마저도 분단시켰다. 송용구 시인은 이에 대해 “생태주의적 역사의식의 미학적 결정체”로서 현대시사의 한 페이지를 자리매김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9.약력


 황해도 연백 출생(1930). 서라벌예술대 중앙대학교 졸업. 경희대 국문학과 석사, 박사과정 수료(문학박사),『현대문학』(서정주 추천)으로 등단(1958),『학생예술』편집장(1958), 수원 매향여중고 교사(1960), 국립제주대학 국문학과 전임강사(1962), 서라벌예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66-1970), 중앙대학교 예술대 문예창작학과(1974-1995), 중앙대학교 예술연구소장(1988),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명예교수한국문인산악회 회장(1988), 한국시문학회 회장(1992),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1992),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1995),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1998),시집 : 『우후개화』한림각(1965),『꽃이 있던 자리』동화문화사(1973),『안행』(공저) 현대문학사(1976),『눈감으면 보이는 어머니』시문학사(1979),『식민지』청한문화사(1986),『산에 홀로 오르는 것은』청한문화사(1992),『시간은 앉게하고 마음은 서게하고』(공저) 도서출판 이진(1994),『짧은 세월 긴 이야기』산목(1997),『인연설』산목(2001)영역시집 :『THREE POETS OF MODERN KOREA』(이상, 함동선, 최영미 공동시집)시선집 :『마지막 본 얼굴』 1987 홍익문화사,『고향은 멀리서 생각하는 것』도서출판 경원(1994),『우리의 빈 들녘을 깨우는 새벽』청한문화사(1995), 시선집 『함동선 시 99선』선(2004)

시비탐방 : 『한국문학비』 시문학사(1978),『명시의 고향』 1980 한국문학사(1980)『한국문학비』제 2집 도서출판 호롱불(1982,)『한국문학비』제 3집 청한문화사(1993)※ 『문학비답사기』 1997 (주)앞선책수필집 : 『그 후에도 오랫동안』해문(1988),『절대고독의 눈물』혜화당(2000)수상 : 한국현대시인상(1979), 펜문학상(1994), 국민훈장 석류장(1995), 예술문화상(문학분야(1995)), 대한민국문화예술상(문학분야)(1987), 서울시문화상(문학분야)(2002)


10.주요작품


연백延白*



아버지 상여가 귀야산貴也山 자드락 길을 돌아갈 적에 개망초꽃이 가로막고 한다는 소리가 “감옥 간 상주 올 건데 왜 서둘러 떠나시오” 한다 달포는 지났을까 8⦁15광복으로 식민지를 불 지르고 있는 마을에 38선 그은 지도 한 장 든 형이 달구지 타고 돌아온다 피골이 상접한 몰골은 일본군에 끌려가면 못 돌아온다는 말에 독립운동하다 감옥에 끌려갔다가 살아온 몸값이다 B29비행기 구름이 쉬던 산등성이엔 이내가 걸리고 새들은 38선 말뚝을 넘어가고 오지만 꽃과 나무와 풀은 이미 남과 북으로 갈라섰다 내 고향은 ‘38선 이남’의 변방이 되었다

나는 막내의 기대는 버릇으로 툭하면 넘어졌다 굼뜨게라도 일어서는 법 배운다고 먼저 넘어뜨리는 학교에 들어간다 교실엔 하늘이 가득 고여 1m 높으면 산이요 1m 낮으면 물이다 세계문학전집 펴면 아침 이슬에 젖고 시집 넘기면 노을이 타오른다 하루도 빠짐없이 이젤 메고 풍경 응시하는 세잔*의 눈으로 산과 들을 관찰하고 싱아의 시큼하고 단맛을 안 것은 그때이었는가 아니 그 전이었던 것 같다

연백평야는 내가 읽은 책의 국판菊版과 사륙판46版으로 정지整地된 곡창지대다 이 끝과 저 시작이 보이지 않는 들녘에서 사람들은 봄 햇살의 온기처럼 이성을 감정으로 고인 말로 농사지었다 벼가 자라는 시간 어디쯤과 어머니 서낭당에 돌 쌓던 시간 어디쯤에서 숟가락 휘일 만큼 찰기 있는 쌀이 되었는가 나는 지금도 아침에 연안延安 배천白川 인절미*를 먹는다

내 안의 속앓이와 내 밖의 억눌림으로 성숙한 나이가 되었다 자유를 지킬수록 재도 없이 타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안 것은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침마다 우물가의 세숫대야에 북한산 세 봉우리 뜨는 거 보고 집 떠나는 연습을 했다 하루는 그림같이 앉았다가 또 하루는 어린 시절의 물처럼 흐르다가 머무름과 떠남의 경계에서 6⦁25전쟁이 터졌다 끝이 처음에 접해 있어 휴전으로 분단은 고착화되고 나의 역마살은 지금도 바람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 황해도의 연백군.

* 불란서의 화가.

* 최남선의『조선상식문답』에 찹쌀이 좋아 인절미 맛이 좋다고 기록되어 있음.

*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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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골짜기



국화꽃 향기와 판소리 가락 어디쯤에서

흥 났는지

나는 기차 타고 가다 마음 내키는 역에서 내려

단풍 지는 선운사를 찾았다

그날 밤 미당未堂은 물속 걸어가는 그믐달이었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사라진다

사흘 지나 손톱달 뜨는 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으로

내원궁에서 불경을 읽고 있다

개울가 억새가 하늘을 비질하는 오후

도솔암 마애불 앞에서 손 모으니

이미 마애불과 미당은 참선 중이다

물소리 커지는 선운사 골짜기에

시간이 흐른다는 걸 일깨울 무렵

미당은 그 느리고 굵은 목소리로 말한다

“부인 잘 있구

내년 동백 피거든 ‘동백연冬柏燕 백일장’ 심사나 하자구

나 보름달맞이 채비해야 하니

어서 떠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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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에서



둥둥둥 북소리에 끌려왔더니

섬진강은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살로

종이처럼 얇고 깨끗하다

짐을 부리기 전인데

나는 이미 강이 됐는가 했더니

너는 물이 되어 흐른다

여기저기서

길이 한 자 두 치 둘레 여덟 치의 소리 북에

평생을 갇혀 산 김명환*의 북소리가

가슴을 두드리다가

나중엔 핏속으로 흘러들어 온 몸을 죄기 시작한다

작설차에 젖은 오후

역마**의 슬픈 사랑을 기억하는

매화가 피기 시작한다

굽이굽이 주막이 있고 색시가 있고

은어회 맛내는 육자배기 가락이 있어

산수유꽃도 개나리꽃도 가만있질 않는다

지나간 시간들이 밀려가고 있는 이 곳

내가 너를 기다리는 오래 전부터

네가 기다린 곳은 이런 데가 아니었는가

비어 있으면 채우기가 쉬운 법인데

너에게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하동 화개 쌍계사 구례 곡성 남원

그리고 지리산이

목판화 되어 둥둥 떠간다

* 김명환(1913-1989), 송만갑 임방울 박녹주 등의 명창이 함께 무대 서기를 바랬던 최고의 고수 鼓手(북쟁이)

** 역마驛馬 : 김동리(1913-1995)의 소설(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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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언제나 서른네 살



쌀가마니 탄약상자 부상병이 탄 달구지를 보고

놀란 까치들이

흰 배를 드러내며 날아간다

후퇴하는 인민군 총뿌리에 떠밀리며

서낭당에 절하고 또 절하던 형님은

그 후에 다신 돌아오질 못했다

오늘도 낮달은 머리 위에서 뒹굴고 있지만

빛을 먹은 필름처럼 까맣게 탄 사진을 현상해서

천도재 올린 우리 식구들

절이 멀어질수록 풀벌레 소리로 귀를 막는다

나무껍질이 된 세월은

내 얼굴의 버짐처럼 가렵기만 한지

저수지에 돌팔매질을 해

물수제비 예닐곱 개나 뜨던 여름이 오면

형님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6․25를 기억하는 예성강처럼

언제나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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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으면 보이는 어머니



또랑물에 잠긴 달이 뒤돌아볼 때마다 더 빨리 쫓아오는 것처럼 얼결에 떠난 고향이 근 삼십 년이 되었습니다 잠깐 일게다 이 살림 두구 어딜 가겠니 네들이나 휑하니 다녀오너라 마구 내몰다 시피 등을 떠미시며 하시던 말씀이 노을에 불그스름하게 물드는 창가에 초저녁 달빛으로 비칩니다 오늘도 해동갑했으니 또 하루가 가는가 언뜻언뜻 떨어뜨린 기억의 비늘들이 어릴 적 봉숭아 물이 빠져 누렇게 바랜 손가락 사이로 그늘졌다 밝아졌다 그러는 고향 집으로 가게 합니다 신작로에는 옛날처럼 달맞이꽃이 와악 울고 싶도록 피어 있었습니다 길 잃은 고추잠자리가 한 마리 무릎을 접고 앉았다가 이내 별들이 묻어올 만큼 높이 치솟았습니다 그러다가 면사무소 쪽으로 기어가는 길을 따라 자동차가 뿌옇게 먼지를 일으키고 동구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온 마을 개가 짖는 소리에 대문을 두들겼습니다 안에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손 안 닿은 곳 없고 손 닿은 곳마다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없으셨던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습니까 눈 감으면 보이는 어머니는 디에 계십니까



             -  시 전문지 시세계 2015년 봄호 기획특집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