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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사를 빛낸 시인들

한국문학사를 빛낸 시인들 - 김후란 편

한국문학사를 빛낸 시인들

 

- 김후란 편

 




1) 만남

 

  김후란 시인님은 2016425일 오후 1시에 이사장을 맡아 일하고 계신문학의 집 · 서울에서 만남을 약속하셨다. 작년에 홍콩대학에서 강의를 하셨는데 금년에는 이란에서 문학행사가 있어 오후 3시에 예비 모임을 갖기로 되어 있었고, 당장 5월에는 국악원에서 문학 강의가 예정되어 바쁘신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신데 대한 고마움을 가슴에 새긴다.

  몇 년 전에 계간인간과 문학연말 송년회 행사와 금년 2월 말쯤 선배 시인 한 분이 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상을 하신다하여 소속단체의 일원으로 이곳 산림문학관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울타리가 없이 주변에 나무숲이 우거져 자연과 호흡하는 문학공간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며느리가 승용차로 출퇴근을 도왔지만 지금은 자택이 있는 수지에서 이곳까지 오시면서 인근 공원을 걸으시다가 좌석버스를 타시고 내리셔서 다시 10분 내지 15분 정도 더 걸으신다며 걷는 것이 최고의 운동이라 여기시면서, 나이 드시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시고 그저 어제와 오늘처럼 살아가신다는 말씀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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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시 창작의 동기는 무엇인가요?

 

  책읽기를 좋아했다. 학교생활에서도 쉬는 시간에 남들은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나는 나무그늘에 앉아 읽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집에서는 나 혼자만의 비밀공책에 글쓰기를 계속했다. 주로 日記를 썼지만 시나 꽁트 같은 글들도 썼으니 일종의 문학수업이라 할 것이다. 중고등 시절에는 학예부장을 맡기도 하고 문예반활동을 하면서 교지에 발표도 하고 교내백일장에서 장원도 하면서 국어선생님들의 관심을 받은 문학소녀로서의 성장과정을 가졌다. 초기에는 소설을 썼지만 한국일보 문화부기자로 들어갔을 때 신석초시인이 문화부장이었고 현대문학지 추천위원이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1959~1960년 시로 등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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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생님의 시론에 대하여 한 마디 해주십시오.

 

  그냥 시가 좋아서 혼자 쓰고 발표하면서 나대로의 시세계가 정립되어졌다고 할 수 있다. 50여년이 흘러 시 전집을 엮으면서 돌아보니 이런 생각은 든다. 시를 쓰는 일은 축복된 일이며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부단히 감성을 연마하는 일은 나의 삶을 연마하는 길이기도 했다. 문학을 한다는 건 참으로 경건한 일이며 힘들지만 즐거운 작업이기도 하다. 한편의 시를 낳기 위해 쓰고 고치고 다듬으면서 정신적인 마모와 윤택함을 누리는 아주 특별한 작업이다. 문학인들이 이처럼 매달려 정력을 쏟는 것은 영혼이 숨 쉬는 언어의 숲에서 일상인들이 누리지 못하는 정신적인 충족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문학세계의 흐름을 크게는 다음 세 가지 단계의 변화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초기에는 모든 것에서 호기심과 시적자극을 느껴 시의 소재가 되었다. 풋풋한 인생관조의 정열이었다.

  중반엔 인간존재의 귀한 생명성과 사회적인 인간관계, 이를테면 가족이라는 끈끈한 혈연에서부터 이웃이나 동족이나 세계적인 인류애 같은 데에 깊은 애정이 쏠렸다. 열 번째 시집인 따뜻한 가족이 그런 심정적 관심의 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세 번째에 해당하는 인생후반부의 근래에는 자연과 인간생활의 영원한 호혜작용과 모든 생명의 신비로움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나의 문학세계의 진폭이나 관심사가 스스로도 놀라우리만치 확대되고 깊어지고 뜨거운 물살에 삶의 본질을 진지하게 추구하기에 이르고 있음을 의식한다.

  이 모든 감성은 생명의 유한성에 기인하며 그 때문에 더 아름답고 애틋하고 모든 가치를 소중히 받아 안으면서 작은 인연에도 감동을 하는 게 아닌가 한다.

  열두 번째 시집 비밀의 숲에 담긴 시들도 자연의 온유함과 엄청난 포용력에 이끌려가는 서정의 본질을 중요시하면서 자연의 탐구와 사랑의 정신을, 그리고 우주로 확대되는 인간존재론을 추구해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의 창작기법상 은유나 직유가 개입되지만 한국적인 정서를 현대감각으로 가꿔가는 진선미의 시세계여야 한다는 나대로의 고집스런 주장으로 평생 주지적 서정시를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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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주로 찾았던 추억의 장소가 있으시다면?

 

  나는 서울태생으로 서울종로구 인사동에 살면서 교동국민학교에 다녔다. 지금도 인사동쪽에 가면 어릴 때 언니들 따라 파고다공원에 가서 그네를 타며 놀던 생각이 나고, 지금은 옮겨갔지만 인사동 초입에 있었던 종로도서관 뜰에서 놀다가 건물 안 관람실에서 말없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조용한 분위기를 유리창 너머로 신기하게 드려다 보던 기억도 생생하다. 어릴 적 기억은 나의 추억의 문턱에 그대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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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0여 년간의 언론인생활을 하시면서 잊을 수 없는 일을 꼽으신다면?

 

  대학시절 경향신문사 주최 대학생문예작품공모에서 소설로 입상한 경력이 있어 소설가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신문기자생활은 사회의 흐름 속에서 바쁘게 일하는 분야라 시간과 정열을 바쳐야 하는 소설쓰기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문화부기자로서 당시의 문단 선배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서 은연중 나의 문학활동에도 탄력을 받지 않았나 싶다.

  기자생활 중 잊을 수 없는 일은 1967년 월남전이 한창일 때 정부 문공부(현재의 문화체육관광부)지원으로 한 달간 월남전선 취재를 다녀온 일이다. 국군위문공연단을 파견하면서 문인대표로 최정희선생님을 단장으로 하고 여기자 3-한국일보 이영희, 동아일보 박동은, 서울신문 김후란-이 종군취재를 했다. 당시 프랑스여기자가 베트콩에 납치된 직후여서 초긴장 사태 속에 각 부대를 순방, 사이공에서부터 해병대가 전투중인 월남 북단 추라이 까지 다니면서 국군들을 만나 취재에 열을 올렸던 기억이 새롭다. 이러한 언론인으로서의 생활은 나의 사회인식에 크게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언론계를 떠난 후에는 국가가 설립한 한국여성개발원 원장으로 여성계 발전에 노력했고 최은희 여기자상 심사위원장으로 20여년 후진 여기자들 활동을 주목해왔던 일도 나에겐 중요한 활동이었다. 이 모든 확대된 인생경험이 근래의 나의 문학세계에 알게 모르게 작용하는 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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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까이 지내셨던 친구 분들은 누구였습니까?

 

  1963년도에 당시 문단 등단 3년 안팎의 신진시인 7명 김선영, 김숙자, 김혜숙, 김후란, 박영숙, 추영수, 허영자)이 모여 청미동인회(靑眉同人會)를 창립하고 동인지 발간, 시화전, 시낭송회, 독자와의 대화, 합동수필집 발간 등 문학활동을 한 것이 시 독자들과의 만남이었다. 도중에 김여정, 이경희, 임성숙시인이 동참했고 다양한 활동으로 문단에서도 촉망을 받았다고 하겠다. 동인지 발간은 35년 계속되었고 지난해에 <청미창립 50년 기념집> 발간으로 동인들 모두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우리나라 시동인회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문학지에 추천을 통해 내가 문단에 내보낸 신진문인들,문학의 집 · 서울회원들 ... 모두 소중한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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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취미생활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요즘 문인들은 원고지에 직접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창작과정을 알 수가 없지만 육필 원고들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잘못 쓴 글씨는 고쳐 쓰기도 하고 중간 중간 빠트린 내용을 집어넣기도 하고, 글씨체나 정돈된 모습에서 작가의 성격이나 고민이 느껴지기도 했고, 맞춤법이 틀려 수정된 흔적 까지도 남아있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용도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허리춤에 꿰어 차고 다니다가 찬바람이나 먼지를 막기도 하고, 만나서 거북한 상대를 부채로 얼굴을 가리기도 했다. 또 시조나 가곡이라도 할라치면 부채로 장단을 맞추거나 펼쳤다 접었다 하면서 풍류와 멋을 더 하기도 하였다. 그뿐이랴 시의 일부를 그림과 함께 적어 휘호를 담아 멋스러움을 자랑하기도 했다.

  관심을 갖고 한때 원고지에 쓴 문인 필체와 문인의 휘호를 담은 부채 수집을 열심히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또한 취미생활이 아니었을까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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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문학이외 활동하신 단체를 말씀 하신다면?

 

  나는 문인 중에서 문학 이외에 가장 사회활동도 많이 한 사람에 속할 것이다. 이제 나이와 함께 근래까지 맡아있던 일반 공직을 거의 정리하였다. 이를테면 생명의 숲 국민운동 이사장, 성숙한 사회를 위한 모임 공동대표, 최은희 여기자 상 심사위원장, 한국문학관협회 회장 등등 모두 10년 넘게 관계하던 단체들이지만 다 내려놓고 이제 문학의 집 운영에만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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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문학은 문자의 힘으로 생명을 얻는 창작품이다. 그리고 문학은 어떤 형태로든 인간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인간적인 생활의 진실을 추구하는 사색의 세계라고 할 때 언제나 진지한 자세로 창작에 임할 책임이 있다.

  누구나 인간생활의 절실함과 질곡을 경험하면서 삶의 존재감과 생명의 존귀함을 깨우치게 되지만, 평소 시나 소설등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느끼고 공감했던 경험이 잠재적인 일깨움같은 것으로 되살아나 어떤 절망의 늪에서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학의 힘이요 문학치유의 효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은 필자가 의식, 무의식간에 보이지 않는 인생 교과서 같은 영향력을 갖는 것이다. 자극적인 표현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기위해 읽기에도 부끄러운 비속어 등을 사용하는 건 문학정신에 위배된다고 말하고 싶다. 시인이라는 관사가 부끄럽지 않게 내 작품을 읽는 독자들 앞에 진정성 있게 마주 서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시나 수필, 소설처럼 글자로 된 글은 읽는다고 한다. 그래서 시를 읽자는데 익숙하다. 우리가 시를 읽고 마음에 담는다는 개념은 먹는다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시를 맛있게 먹자는 것이다. 먹고 나서 잘 소화시켜 가슴에 시를 꽃피우자고 하면서 그런 시를 쓰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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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나 자신이 문학에 기여했다고 자부할만한 일은?

 

  나의 문학 활동 중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장편서사시 세종대왕을 썼다는 점이다. 특히 서사시를 쓸 때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만을 찬양하기보다 세종대왕의 국태민안(國泰民安) 여민동락(與民同樂)정신에 주안점을 두었다.

  매사에 낮은 곳, 어려운 백성을 먼저 염려하시어 어둠을 벗겨주려는 뜻으로 과학 천문학 예술 음악등 수많은 위업을 이루신 가운데 가장 으뜸인 것은 당시 어려운 한문권에서 벗어나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소리글을 창제하신 일이다. 그것도 한문문화에 젖어있던 정치권의 강한 반발을 딛고 감연히 뜻을 이루신 일이었다.

  세종실록등 관련 자료를 통해 나는 이 모든 과업을 성취해 가신 통치자로서의 비젼과 영도력, 그리고 인간적인 고통까지도 아프게 절감하여 품어 안고 집필에 몰입하였다. 나라를 끌어가는 영도자로서의 세종대왕께서 누구보다도 뛰어나셨던 과단성 있는 선구자 정신과 인간미를 시에 담고자 했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려고 애썼음을 자부한다.

  시는 언어로 지어진 아름다운 집이다. 그 집에 초대된 독자에게 공감의 선물을 안겨줘야 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 등장하는 거친 구절이나 비감 어린 표현조차 가슴 뜨겁게 공감되는 승화된 아름다움이어야 한다.

  한편의 시를 낳기 위해 가슴에 출렁이는 감동의 물살이나 상상의 날개를 키워가면서, 어디까지나 <창작은 창작이다>라는 점에 유념하여 새로운 것을 쓰려고만 하기 보다 새롭게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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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세계

 

  김후란 시인은 나무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소리 없는 응답에서 친근한 존재감을 느낀다. 나이테를 안으로 품고 의연하게 서 있는 나무의 말없는 의지가 보인다. 그런 때 새삼 나 자신을 응시하게 되고 자아와 만나게 된다.”라고 말한 데서 확인된다. “나무는 심은 다음에도 꾸준히 가꾸고 사랑해줘야 하듯이, 우리 인생도 문학, 예술도 더욱 가꾸고 사랑해가야 함을 생각하면서 자연 예찬은 곧 인생 예찬이요 문학 예찬이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말한 데서도 볼 수 있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이기에 본능적으로 자연에 편안함을 갖거나,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풍광에 흥취가 일어날 수 있지만, 김후란 시인의 자연 사랑은 원초적인 차원을 넘는다. 그보다는 자연을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인식하고 자신과 함께하려고 한다. 나아가 미래의 인간과 함께할 인류사적인 존재로 대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자연을 단순히 묘사하거나 자연에 대한 감정을 표출시키지 않고 자연 속에 자신을 투사하거나 자연을 자신에게 이끌어 들인다. 자연의 정경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리적인 상황이나 사상적인 면이나 사회적인 양상을 자연과 결합시키는 것이다. 결국 시인은 위대한 생명력을 지닌 자연을 자신의 정신 가치와 이상 세계로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맹문재 시인은 말하고 있다.

  시집비밀의 숲 抒情, 自然에서 을 노래하다라는 서평에서 시력 반세기를 훨씬 넘는 시간, 한결같이 단아한 모습으로 시를 일궈온 김후란의 시는, 말의 정확한 의미에서의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 혹은 이 시인과 더불어 혼란 속에서도 꾸준히 서정시가 지속되어 올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서정시에 대한 다소간의 논란이 최근 일어난 일이 있지만 그 어떤 논의도 (……), 서정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소중함을 환기시켜주는 일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 생명의 요람으로서 서정시는 그 아름답고 오롯한 모습을 지켜낸다.
  그 솟아오른 줄기의 한 정점에 김후란의 시가 있다. 이처럼 자연과 함께 가는, 또 반드시 함께 가야 하는 서정시의 본질에 김후란의 시는 철저하게 밀착해 있다고 김주연 문학평론가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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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문학의 집 · 서울을 여시면서 문학인들께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독일의 베를린이나 함부르크 등을 둘러보며 자연과 함께 하는 문학공간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걸 보고 서울에도 이런 시설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서울시와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님과 그 후에 사장님들까지도 동참해주셔서 오늘에 이르렀다.

  문학의 계파를 막론하고 모든 문학인들의 참여를 권장하고 있다. 문학의 집 이름을 정할 때, 서울을 앞에 안 붙이고 뒤에 넣은 이유는 서울에만 이런 문화공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지방에서도 만들어져 문화확산에 앞장 설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의 중심지인 중구 예장동, 숲이 우거진 남산 기슭에 20011026일 개관한 이래 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다양한 문학행사를 계속하고 있다.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시민이 문학행사에 참여할 수 있으며, 문학인들과의 문학적 교감을 나누는 정답고 유익한 자리다.

  넒은 잔디밭 주변에는 야생초들이 있고 신갈나무, 은행나무, 기죽나무, 구릉나무, 단풍나무, 밤나무 등이 우거져있다. 흰 양옥 건물 1층에 세미나실과 전시장이 있고 2층에는 문인들의 사랑방과 회의실, 집필실 등이 있으며, 부설건물인 산림문학관에는 1층 중앙홀과 2층 세미나실, 회의실, 그리고 마음껏 정담을 나누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문학의 집에서는 문인들의 담론이 펼쳐지고 수요 문학특강, 음악이 있는 문학마당, 시 낭송회 그리고 문인들의 자화상전과 친필부채전 등이 잇달아 열리면서 문화의 시대에 더욱 아름다운 문학의 꽃이 활짝 피어가고 있다. 이처럼 정서적 교감이 기대되는 문화공간이 서울에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 문단의 경사요 문화국민, 문화시민으로서의 긍지를 갖게 하는 뜻깊은 일이라고 하겠다.

  이문학의 집 · 서울은 우리 모두의 집이다. 자주 참여하시어 함께 사랑하고 가꾸어 가면서 문학진흥과 문화확산에 힘을 보태 주실 것을 기대한다.

 

 

13)김후란 약력

 

필명 : 김후란, 본명 : 김형덕, 1934년 서울에서 태어남,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

1960년 현대문학에 시 오늘을 위한 노래로 등단(신석초 추천)

한국일보 기자, 부산일보 논설위원 등 언론계 20여년 종사,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역임

한국여성개발원 원장 역임, 생명의 숲 국민운동 이사장 역임.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 공동대표 역임

현재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 집서울이사장

      

저서

시집 장도와 장미’(1968년 한림출판사), ‘음계’(1971년 문예사), ‘어떤 파도’(1976년 범서출판사), ‘눈의 나라 시민이 되어’(1982년 서문당), ‘숲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시각에’(1990년 어문각), ‘서울의 새벽’(1994년 마을), ‘우수의 바람’(1994년 시와 시학사), ‘서사시 세종대왕’(1997년 어문각), ‘시인의 가슴에 심은 나무는’(2006년 답게), 따뜻한 가족(2009년 시학), 새벽, 창을 열다(2012년 시학), 비밀의 숲(2014 서정시학

    

수필집 태양이 꽃을 물들이듯’(1976년 범서출판사), ‘예지의 뜰에 서서’(1977년 평민사),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목마’(1980년 문예원), ‘너로 하여금 우는 가슴이 있다’(1982년 학원사), ‘사랑이 그대에게 말할 때’(1982년 한국방송사업단), ‘영혼의 불을 켜고’(1990년 동화출판사), ‘혼자서도 혼자가 아닌 너’(1994년 조선일보사), ‘살아가는 길에서 얻은 조그만 행복’(1995년 벽호) 등 다수

 

수상 : 현대문학상, 월탄문학상, 한국문학상, 서울시문화상 

       서울대 사대 모교를 빛낸 동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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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주요시

 

 

따뜻한 가족

 

 

하루해가 저무는 시간
고요함의 진정성에 기대어
오늘의 닻을 내려놓는다
땀에 젖은 옷을 벗을 때
밤하늘의 별들이 내 곁으로 다가와
벗이 되고 가족이 된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절실한 인연
마음 놓고 속내를 나눌 사람
그 소박한 손을 끌어안는다
별들의 속삭임이 나를 사로잡을 때
어둠을 이겨낸 세상은 다시 열려
나는 외롭지 않다
언젠가는 만날 날이 있을 것으로 믿었던
그대들 모두 銀河로 모여들어
이 밤은 우리 따뜻한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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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별을 올려다보며

                      

 

 

어린 동생같이

애틋한 2월에

어깨 시린 이 쓸쓸한 시대에

 

풀잎같은 언어로 시를 쓰고

사랑이라는 한마디에 기대어 산다

 

누군가가 말했지

2월은 짧으니

고통도 그만큼 적으리라고

 

그래, 얼어붙은 산기슭 들풀조차도

기다림 끝에 오는 새날이 있기에

몸 사려 이겨내듯

 

손잡고 걸어갈 친구가 있고

저녁이면 돌아갈 집이 있는 안도감

작은 일에 감사하며 뜨거운 가슴으로 일어선다

 

보드라운 아기

품에 꼬옥 안고

세상은 살아갈만 하다고

창을 열고 싸늘한 밤하늘

희망의 별을 올려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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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신의 선물

                

 

 

숲은 어머니 가슴

산에도 들에도 우리 마을에도

아낌없이 품어주는

어머니 가슴으로 우거져있네

 

매운 겨울바람에

죽은 듯 침묵하던 나무들

봄의 잎눈 틔우는 여린 숨결

신비하여라 살아있음이 감격스러워라

 

숲은 어디서나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나무가 모여서 숲을 이루고

우리들의 꿈이 되어 함께 자란다

미래는 자연의 아기

자연은 신의 선물

 

우리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까지도

대대손손 우거진 숲에서 자라고

날짐승 들짐승 작은 벌레까지도

너그러운 숲의 품에서 꿈을 꾸면서

향기로운 노래와 그 눈빛으로

사시사철 너울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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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시각에

                                         

 

 

해가 지면

어둠이 어둠으로 성장(盛 裝)하고

다투어 내려온다

 

젖은 숲

작은 돌에 걸터앉아

밤의 동반자를 만난다

 

어둠끼리는

언제나 이 시각에 만나

서로의 상처를 만져준다

 

빛물결 일렁이고

숲이 이야기를시작하는

이 시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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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하나 되어

 

 

밝은 이 자리에
떨리는 두 가슴
말없이 손 잡고 서 있습니다

두 시내 합치어
큰 강물 이루듯
천사가 놓아 준
금빛 다리를 건너
두 사람 마주 걸어와
한자리에 섰습니다

언젠가는 오늘이 올 것을
믿었습니다
이렇듯 소중한 시간이 있어 주리란 것을

그때 우리는
우리가 영원히 하나가 되리라고
푸른 밤 고요한 달빛 아래
손가락 마주걸고 맹세도 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하나가 되리라고
이슬 젖은 솔숲을 거닐면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순수한 것처럼
우리의 앞날을 순수하게 키워 가자고
사람들은 누구나 말합니다
사노라면 기쁨과 즐거움 뒤에
어려움과 아픔이 따르기 마련이며
비에 젖어 쓸쓸한 날도 있다는 걸
모래성을 쌓듯 몇 번이고 헛된 꿈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걸

그럴수록 우리는 둘이서 둘이 아닌
하나가 되렵니다

 

*이 글은 시 전문 계간 시세계 2016년 여름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