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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운현궁 기획전시 - 허명숙 매화예찬

 

허명숙 매화예찬 운현궁 기획전시실을 다녀와서

 

 

1.

 2014년 3월 14일 성동구 구민대학 시창작반 강의를 마치고 3기 회원으로 열심히 참여하셨던 고운 허명숙 화백이 운현궁 기획전시실에서 매화예찬전을 3월 1일부터 3월 16일까지 열고 있었다. 함응식 님은 먼저 다녀오시고 소감을 통하여 보기를 권하여 시간이 되시는 소양희님, 김옥자님, 김현주님은 필자와 함께 오후 4시에서 6시까지 가면 허명숙님을 만날 수 있다는 바람에 서둘러 가게 되었다.

 2호선을 타고 왕십리역에서 을지로 3가로 가서 3호선을 갈아타고 안국역 4번출구로 나가 운현궁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었다.

 

 

2.

 서울특별시 사적 제257호로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운현궁은 조선조 제26대 고종의 잠저(潛邸)이며 흥선대원군의 사저이다, 대원군의 정치활동의 근거지이다. 대원군이 왕실집권을 실현시킨 산실이자 집권이후 왕도정치로의 개혁의지를 단행한 곳이기도 하다. 대원군이 하야한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곳으로서 고종이 즉위하기 전까지 살았던 잠저(潛邸)였다.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863년 12월 9일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으로, 부인 민씨를 부대부인으로 작호를 주는 교지가 내려진 때부터였다. 고종이 12살까지 살았던 운현궁은 고종이 등극한 후 대원군이 운현궁 터를 다시 확장하였다. 운현(雲峴)이란 당시 서운관(書雲觀)이 있는 그 앞의 고개 이름이었다. 한일강제병합 후 대한제국의 황실재산을 몰수하여 국유화하고 이왕직 장관을 시켜서 운현궁을 관리하게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유지·관리하는 일은 소유권에 관계없이 이로당의 안주인들이 계속 맡아했다. 운현궁의 소유권이 다시 대원군의 후손에게 넘겨지게 된 것은 1948년 미군정청의 공문에 의해서였다.  

 그 해 9월 21일 결국 대원군의 5대손 이청(李淸, 1936- )씨에게 운현궁 소유권이 확정되었다. 그러던 것이 양도 의사를 이청씨가 밝힘에 따라 서울시에서 매입하게 되었고, 1993년 12월부터 보수공사를 시작하였고 현재의 모습으로 정비된 것이다

 

 

 

 

 

3.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기획전시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안으로 들어서서 작품을 보기 시작할 무렵 귀에 익은 허명숙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반가워 악수를 나누었다. 그녀의 작품세계가 펼쳐진 전시실내에는 크고 작은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전공분야 오랫동안 작품 활동하신 허명숙님의 자상한 설명을 들으며 감상할 수 있어 행복했다. 

 추위 속에서도 다른 꽃들을 앞질러 핀 단정하고 청초한 하얀 매화가 운치와 품격 면에서 사군자 중에 으뜸이라 여겼다. 홑꽃의 하얀 매화가 향기롭기로 정평이 났다. 밤을 즐기는 꽃이라 하여 매화의 향을 암향이라 불렀다.

 그리고 연분홍, 진분홍, 다홍색꽃을 피우는 것을 홍매화라한다. 3-4월이면 겹으로 붉은 색의 꽃이 핀다. 정열적이고 아름다운 자태는 눈길과 사랑을 함께 받고 있다. 양산 통도사에 홍매화는 청초하고 고고한 기품과 아름다움이 으뜸이었다.

 황매화는 피는 시기가 가장 늦어 4-5월로 잎과 동시에 가지 끝에 피는데 비교적 꽃이 크고 노란색이라는 건 만으로도 사랑을 받지만 햇볕과 습기만 맞으면 잘 자란다. 그러나 그늘에는 약하다.

 기억에 남는 매화 중에는 김해건설공고에 핀 와룡매는 용이 누워서 기어가는 형상의 매화이다. 세월 흔적이 묻은 고목의 모습이 용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예술의 세계에서 매화를 그리는 허명숙님의 더욱더 발전하는 모습을 기원하면서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는 악수를 나누며 자리를 나왔다.

 그림 옆에 쓰여진 짧은 구절 들이 예사롭지 않았다.「봄이 되었는데 봄이 오지 않으니 찾아나섰다네」나「정신(精神)은 부드럽고 뜻은 꾸밈없이 기르니 비온 뒤 맑은 날의 부드럽게 부는 바람이 봄을 부른다」를 기억하게 한다.

 

 

 

 

 

 

4.

 운현궁의 건축물들은 이로당, 노락당, 노안당, 수직사가 있다.

 이로당은 안채로 쓰이던 곳으로 여자들만 사용할 수 있도록 별도의 공간을 형성한 금남지역이다. 노락당은 명성왕후와 고종의 가례가 치러진 곳으로 잔치 등 중요행사를 준비한 곳이다 .명성왕후가 삼간택후 왕비수업을 받던 곳이다. 부엌의 상궁과 나인의 모습이 보인다.

 노안당은 사랑채로 쓰였던 곳으로 대원군의 일상거처라고 볼 수 있다. 노안당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몸채 동측에, 전면 쪽으로는 양칸(樑間) 1칸 도리칸(道理間) 4칸의 누마루인 영화루(迎和樓)가, 배면 쪽으로는 양칸(樑間) 3칸 도리칸(道理間) 3칸으로 된 온돌방과 툇마루가 이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T자형 평면의 건물이다

 수직사는 운현궁의 오른쪽에 있는 행각으로. 경비와 관리를 맡은 이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5.

 찾아보기도 어렵지 않은 곳인데 마음먹고 둘러보지 못한 것을 반성하며 관심을 가져야할 역사의 현장을 매화예찬 기획전시를 통하여 발길을 딛게 한 허명숙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뿌듯한 수확을 얻은 금요일 오후가 되었다.

 마음의 양식이란 일상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시야를 조금만 넓히면 윤택한 삶과 맑은 영혼을 구축하는데 어려움은 없으리라 여겨진다. 우연찮게 만들어진 기회에 보석을 한아름 안고 돌아왔다. 함께하신 회원님들께 고마움을 금치 못한다.

 

2014년 3월 14일 오후

운현궁에서 윤제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