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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강의(운문)

11.안전을 위한 시 - 필자

11. 시는 어떻게 쓰나?

 

윤 제 철

 

1.보고 싶어도 기다리고

2.가슴 두근거리며 만났는데//

3.무엇을 하고 살까? 번개도 쳐보고

4.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까 천둥도 쳐보았다

5.떠오르는 것은 없어 하염없이 비만 주룩 주룩 뿌렸다//

8.욕심 부리다 집, 밭, 차까지 물에 잠기게 하고

9.화가 난다고 산사태까지 나게 했다//

6.내가 웃기만 해도 행복해하는

7.그에게 왜 고통만 주었을까//

10.이제는 사랑만 하려했더니 헤어지잖다

11.다시 만나면 기뻐하지 않을 것처럼

- 이옥희의 장마 전문

 

  시 속에서 화자는 장마가 된다. 번개도 쳐보고 천둥도 쳐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궁금하다. 별 생각 없이 비만 뿌렸다. 나를 좋아하는 그에게 집, 밭, 차까지 잠기게 한 과오를 뉘우친다. 이제는 사랑만 하려했으나 다시 만나도 기뻐하지 않을 것처럼 헤어지잖다.

  입장을 바꾸어 말하면 농사짓는 이에게 비가 필요하지만 너무 지나치면 성화를 부리는 원수가 된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존재가 된다. 어절 수 없이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라 해도 참을 수가 없다. 비가 사는 법을 뒤 늦게 깨달았으나 아쉽기만 하다.

 

매미는 왜 아침부터/ 처량하게(서둘러서) 울까…

어미 고양이와 새끼가/ 서로 찾느라고 밤새도록/ 야옹 야옹…

옆집 강아지 새 주인 만나/ 낯설어 하루 종일/ 깨갱깨갱…

우는 입장에서 보면/ 사연이 있겠지만

듣는 쪽은 (울음소리만 만나) 짜증나고/ (듣지 않아도 될 소리)

(그쳐주길 바라다 성급한 마음) 혈압 올라가지

- 김옥자의「울음소리」전문

 

  매미가 울거나 어미와 새끼 고양이가 서로 찾느라 울고, 새 주인 만난 강아지가 낯설어 우는 소리는 어떤 사연을 모르는 입장에서는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정도가 지나치면 짜증나고 혈압이 오른다.

  시는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한다. 읽고 나서 너무 뻔한 이야기로 단정되어서는 안 된다. 궁금증을 해결하는 요소와 말하고자하는 분명한 주장이 있어야 한다.

 

1.나무(가) 숲(에) 어우러진 저녁노을

4.마음껏 뽐내(고) 2.진한 색깔(녹색)을 띄운

3.옷자락 날리며 5.자리다툼이나 하듯이

6.얼크렁 설크렁(얽히고설켜) 너울댄다

7.짓궂은 장마에 참았던 매미는

8.엉덩이 들썩이며 박자에 맞춰

9.하소연인가 자랑인가 아랑곳없이

10.하나가 시작하면 12.떼거지로 울어댄다

11.(서울 숲 모두가 제 집 인양)

 - 김정희의「서울 숲 메미」전문

 

*얽히고설키다 : 이리저리 복잡하게 꼬이다

 

  나무가 숲에 어우러져 진한 녹색 옷자락을 날리는 서울 숲이다. 매미는 짓궂은 장마에 참았던 매미가 박자를 맞춰 많은 매미들이 일시에 한 마리가 울 듯 세차게 운다. 화자는 매미가 너무 시끄럽게 울고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숲의 나무들을 서로 잘 어우러져 흥이 겨운데 이를 해치는 매미가 미운 것이다. 모두가 한꺼번에 세상이 떠나가라 울어대는 게 못마땅하여 서울이 네 집이냐 묻고 싶은 것이다. 유독 서울 숲의 매미가 미운 것은 서울 숲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를/ 혼자만 만나는 냥

겪어야 했던 많은 일들마저//

하룻밤의 꿈처럼 묶어져/ 한 편의 영화 속에서

늘 주인공으로 산 기억 하나일 뿐//

세월이 아무리 흘러갔어도/ 다시 보이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만이/ 앞에 나타나 나를 반긴다.//

벌써 고희역에 오다니/ 고비마다 붙여진 역 이름들을 뒤로 하고

한 생애 도중에 지나가는/ 또 하나의 커다란 역이다.//

내가 이루어 놓은 것들과/ 함께 만든 사람들이 모여 앉아

지나간 날들을 축하하며/ 다가올 날들의 축복을 비는 오늘은

여정의 안전한 주행을 준비하는 날이다.

- 윤제철의「고희역(古稀驛)에서」전문

 

  화자는 고희를 맞은 김정희님이다. 지나간 시간은 겪은 일 모두가 하룻밤의 꿈처럼 스쳐지나갈 뿐이다. 다만 다가올 시간만 나를 반긴다고 했다. 일생을 열차를 타고 가는 여행으로 비유하면, 고비마다 이름을 붙인 역들이 나열되어 오던 중 오늘 선 역은 고희역이다. 여기 까지 온 것이 놀랍게만 여겨진다.

  내가 이뤄놓은 것들과 함께 일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지나간 날을 축하하고 다가올 날을 축복하는 오늘을 고희역에서 즐기자는 권유가 있다. 결국 다가올 날을 위한 함께한 모든 이들의 사랑이 담겨있다. 그리고 여정의 안전한 주행을 염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