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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강의(운문)

9. 님의 시 - 한용운 시인

9. 시는 어떻게 쓰나?

 

노랑, 발강, 주황색으로

변하는 걸 보니/ 변덕스러운

꽃인가 봐

화장품 연지 곤지 만들고

벼 관절에도 좋다지

노랑, 발강, 주황색 (알록달록)

옷감에 염색하고 예쁘다고

자랑하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걸

(말을 안 해도) 난 알아

- 김옥자의「홍화꽃」전문

 

 한 가지 색으로 피지 않고 여러 색깔로 변하는 게 변덕스러워 보이는 꽃이다. 연지 곤지로 화장품이나 관절에 좋다는 효용이 있는데 옷감에 까지 물을 들여 예쁘다고 자랑하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모습을 말을 안 해도 너무 잘 알듯한 홍화 꽃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화 꽃을 사람으로 놓고 이롭기는 하나 변덕스럽고 자신을 드려내려 하는 존재로 비유하고 있는 시다. 보고 느낀 대로 숨김없이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이미지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훈풍에 돛단배

시야에 흐리더니

 

청풍(淸風)의 따사로움에

미소 짖는 꽃망울도/ 촌음(寸陰)속에 가리운 채

 

아지랑이 안무(按舞)하는(춤추는) 쪼약 볕에 (뜨거운 볕에)

농부의 식은땀도 아랑곳없이

 

가을 춘풍(秋風)에 힘없이

주저앉은 낙엽을 벗 삼아

 

한풍우(寒風雨)에 은(언) 몸

태양 볕에(양지에) 몸 녹일 새

백설 친구 찾아들어

옷깃 여며 둥지 속에 잠드는가 보다

- 이석남의「사계(四季)」전문

 

*훈풍 : 첫 여름에 부는 훈훈한 바람 *청풍 : 부드럽고 맑게 부는 바람.

*촌음 : 아주 짧은 시각 *안무 : 음악이나 연기에 맞는 춤을 창작하고 구성함

*조약 볕 : 한낮에 쬐는 뜨거운 햇살

 

 네 계절을 순서대로 표현하여 한 해를 이미지화 하려 많은 생각을 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봄과 겨울에 대한 애착이 여름이나 가을에 대한 감정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또한 한자와 함께 우리말이 어우러져 자연스러울 수 없으면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각기 다른 성격을 띤 바람들이 무언가를 비유하고 상징되어 있다고 여겨지나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애매모호한 결말을 얻을 수 있다.

 

하늘에는 달이 없고 땅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소리가 없고 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우주는 죽음인가요

인생은 잠인가요

 

한 가닥은 눈썹에 걸치고 한 가닥은 작은 별에 걸쳤던

님 생각의 금실은 살살살 걷힙니다

 

한 손에는 황금의 칼을 들고 한 손으로 천국의 꽃을 꺾던

환상의 여왕도 그림자를 감추었습니다

 

아아, 님 생각의 금실과 환상의 여왕이

두 손을 마주 잡고 눈물의 속에서 정사한 줄이야 누가 알아요

 

우주는 죽음인가요

인생은 눈물인가요

 

인생이 눈물이라면

죽음은 사랑인가요

- 한용운의「고적한 밤」전문

 

 한평생 하루도 ‘님’을 여의고 살아 본 일이 없는 만해. 이 민족적 애국지사로서의 만해가 평생을 바라고 생각하며 지켜보던 대상은 일반이 알다시피'님'이었다. 그 자신의 말대로 ‘님’이란 그에게 있어서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뉘앙스를 갖는 것이 사실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생각하는 ‘님’만이 님은 아니었다. 석가모니가 생각하는 님을 중생이라 한다면, 만해가 생각하는 님은 중생의 한 부분인 겨레요, 조국이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혹은 불교, 혹은 문학, 만해가 추구하는 대상이면 무엇이든 다 ‘님’일 수가 있는 것이다.

 

*금실 ; 거문고와 비파가 서로 어울리는 모양처럼 잘 어울리는 부부 사이의 두터운 정과 사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