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는 어떻게 쓰나?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수의「꽃」전문
‘그’가 ‘너’ 로 되기, ‘나’ 와 '너‘ 로 관계 맺기, 서로에게 ’무엇‘ 이 되기, 그것이 곧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름을 부른다는 게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들에 꼭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꽃은 인생이 아름답되 짧고, 고독하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서로에게 꽃으로 피면, 서로를 껴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늦게 부르는 이름도 있고 빨리 부르는 이름도 있다. 내 꽃임에도 내가 부르기 전에 불려지기도 하고, 네 꽃임에도 기어코 네가 부르지 않기도 한다.
‘하나의 몸짓’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 이 되는 것.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꽃은 나를 보는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으나, 내가 본 가장 무서운 꽃은 나를 등진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다.
* 눈부처 :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
한 통 알맹이를/ 칼로 썰어내고 난 껍질을/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들고 나서다가
사올 때와 별 차이가 없는 무게를 느낀다.//
그릇이 모자랄 정도로 담아 냉장고에 넣었는데/
붉은 살과 검은 씨가 꽉 찼던 속이었는데
무게가 그렇게나 가벼운 걸까,//
두고두고 더울 때마다/ 입과 가슴을 시원하게 꺼내 먹는/ 청량음료 물바가지.
크기나 무게로 가늠하기보다/ 쓸모만큼 인기가 있는 세상.
억지로 모양을 고쳐 관심을 끌려 말고/ 줄무늬 얼굴로도 가치를 높이는 노력으로
인정받고 사는 너에게 얼굴 뜨겁다.
- 졸시「수박」전문
수박을 먹으려고 알맹이를 칼로 썰어내고 껍질을 들어보니 무게가 느껴져 알맹이가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에 비하여 너무 가볍고 수박의 겉모습조차 매끄럽지 않은 데도 환영을 받는 존재로 살아오는 것이 가치에 따라 인정을 받는 것이지 모양이나 무게에 따른 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다.
이미지는 결코 수박에 한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생활에서 비롯되는 사고방식을 놓고 화자의 생각으로 비판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시의 모호성을 살려 두루두루 해당되지 않는 것이 없다.
어거지로 얼굴을 뜯어 고쳐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을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이 시의 시상은 단순한 알맹이의 무게를 느끼면서 화자는 사람인양 대화를 나누고 나서 얻어진 작품이다. 일상의 모든 상황은 감각을 갖고 관찰하는 데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김영랑의「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전문
이 시는 운율감이 뛰어난 작품으로 유명하다. '-는, -같이, -고 싶다, 하늘' 등이 일정한 위치에 반복되어 리듬감을 줄 뿐만 아니라, 울림소리를 사용하여 가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울림소리란 'ㄴ,ㄹ,ㅁ,ㅇ'음을 말하는데 이 소리는 목이나 코를 울리는 음으로 울림소리가 사용되면, 리듬감이 생긴다.
동요로 더 알랴진 이 시는 읽으면서 그 노래를 부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어의 어울림이 아름다운 시로 손꼽는다. 이 시의 화자는 밝고 맑은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르고 싶은 '나'로 드러나 있다. 봄 하늘을 동경하고 갈망하는 '나'입니다.
「새악시 볼에 떠 오는 부끄럼같이」이 행은 시각적 심상이 드러난다. 부끄러워서 발그스레해진 새악시의 볼을 떠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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