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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강의(운문)

3. 감각적인 시 - 전봉건 시인

 

3. 시는 어떻게 쓰나?

 

 

 시 창작은 사물이나 사건의 벌어지는 형태나 동작을 보고 감각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비유하여 주제를 감추고 이미지화하여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표현하는 작업이다. 흔히 감각이라는 말은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하여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려 사물에서 받는 인상이나 느낌을 말한다.

  감각은 시를 쓰는 사람이 관찰을 통하여 많은 생각을 하는 과정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동기를 유발시킨다. 사물이나 사건의 형태와 동작을 비유한 시를 중심으로 창작의 실제를 설명하고자 한다.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 전봉건의「피아노」전문

 

  이 작품은 감각적인 이미지로 표현된 작품이다.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여인의 손가락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가락의 움직이는 모습을 물고기가 쏟아지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는 시구에서마치 그 피아노의 선율이 들리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청각적 표현을「물고기가 쏟아진다」로 나타내어 소리를 시각화하였다. 여기에「신선한 물고기」라는 표현을 통해 생동감을 주고 있다.

 「나」는 바다의 모습 중 가장 신나게 일고 있는 파도를 집어든다. 이것이 칼날로 보이는 것만큼 화자가 느끼는 감동의 힘이 강렬하다. 이 시는 연상에 의해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그 이미지는「피아노 선율에서 물고기로 다시 바다에서 파도로 그리고 칼날」로 연결된다.

 

대나무/ 잎사귀가/ 칼질한다. 해가 지도록 칼질한다/ 달이 지도록 칼질한다

날마다 낮이 다 하도록 칼질하고/ 밤마다 밤이 다 새도록 칼질하다가

십년 이십년 백년 칼질하다가/ 대나무는 죽는다.//

그렇다 대나무가 죽은 뒤/ 이 세상의 가장 마르고 주름진 손 하나가 와서

죽은 대나무의 뼈 단단하고 시퍼런/ 두 뼘만큼을 들고/ 바람 속을 간다.

그렇다 그 뒤/ 물빛보다 맑은 피리소리가 땅 끝에 선다/ 곧 바로 선다.

  - 전봉건의「피리」전문

 

 이 시에서 성장 과정과 멈춤 과정을 두고 이야기 한다고 본다. 성장이라 함은 대나무가 자라며 그 잎에 칼바람 세우고 살아가는 현실과, 멈춤을 통해 대나무가 죽은 그 이후의 다른 형태로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꿈으로써 나타나는 피리라는 사물을 강직하게 나타내고 있다.

 드러내지 않지만 시인은 자신의 모습을 시를 통해 그렇게 나타내고자 하는 의지라 본다. 피리소리 물빛보다 맑게 울리기 위한 그 인고의 과정을 통해 소리가 소리로써의 音을 간직하기까지의 삶이 바로 서 있는 詩라고 볼 수 있다.

 

여태껏 시치미 따고/ 초록빛 몸뚱어리로 살면서/ 언제 삼켜두었는지

짙은 분홍빛 꽃잎을/ 여러 겹 겨워냈구나,

가슴을 열고 하늘 맑은 물에/ 묽게 녹아내는 가을 인사말/ 어렸을 적 바라보던

부러운 옷 색깔을 / 들길 따라 입은 꽃

 - 졸시과꽃」전문 

 

 봄부터 무슨 색깔을 한 꽃을 피울지 어느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초록빛을 띤 잎 새와 가지만 싱싱하게 자랄 뿐이었다. 들길 가에 홀로 나름대로 꿈에 취했는데 그 빛이 짙은 분홍빛으로 겨워내듯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어릴 적에 잘사는 집 아이들이 입은 옷이 입고 싶어 부러워했던 그 색깔로 갈아입은 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어둠이 걷히고 가슴이 탁 트인 기분으로 아무에게나 인사를 거는 여유로운 마음은 가을이 다되도록 피어있다.   

 

커피 한 잔에서 나오는/ 따뜻한 김이 엮어내는 공간으로/ 나의 기다림이 들어앉아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낮아지는/ 그 공간이 비좁아질 때/ 나의 체온은 식고 있었다.

마주하고자 했던 상대가 없이/ 한 자리를 지키면서/ 얼마나 참을성 있게 지내온 건지

얼마나 아량 있게 대해온 건지/ 혼자 만지작거리며 측정해보는/ 내 마음의 깊이가

이렇게 얕았던가 보다./ 내 삶의 테두리가/ 이렇게 좁았던가보다.

쓰디쓴 커피는 식어서/ 나를 앉힐 공간 하나 없이/ 나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 졸시「커피 한 잔」전문

 

  어느 겨울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기다리면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다보았다. 높이 올라 넓은 공간을 만들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식어 좁아져가는 걸 느꼈다. 마주하고자했던 상대도 오지 않고 나를 앉힐 공간 하나 없이 떠밀려나오는 심정을 그렸다.

  그동안 지내왔던 상대에게 참을성 있게 대했는지, 아량 있게 대했는지 생활의 모습을 그려보며, 내 마음의 깊이와 내 삶의 테두리가 얕고 좁은 것을 반성하고 있다. 거피 한 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시의 소재가 되고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상상력에 대한 공감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를 쓰는 방법이 많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감각을 통한 상상력일 것이다. 창작은 상상력을 얼마나 발휘하느냐에 따라 성공여부가 가려질 수 있다. 상상력을 사용하면 할수록 날이 서서 예리해지지만 사용하지 않고 묵혀두면 녹이 슬어 제대로 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시간이 나면 쓰고 시간이 없으면 못 쓰는 활동 자세는 시인의 사명을 버리는 것이다. 항상 관찰하여 시상을 떠올리고 올바른 잣대로 냉철하게 비판하는 날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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