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네 겨울
윤제철
따듯하기만 하던 겨울이 걸핏하면 폭설에다가
칼날 같은 추위로 세상을 후려치고
정신 못 차리게 한다.
경사진 산동네 길을 끼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제 눈발은 낭만 섞인 친구가 아니다.
검게 오염된 구석까지 가려려고
애쓰던 노력도 헛된 수고일 뿐
더 이상 반가워하지 않는다.
어울려 살아야할 상대가 저지른 작은 실수 하나
그냥 보고 넘어갈 수도 있으련만
끌어내려야 이문이 생기는지
자신을 드러내려는 얄팍한 심보로
이 동네에서 붙어사는 한
옛날 같은 겨울이 오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일은 마을버스가 다닐 수 있는
길을 터놓고서야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살았어도 이웃끼리 소통이 안 되어
작은 것 하나 해결 못하는
비좁은 마음속에서 꺼내는 어설픈 호흡으로
봄을 뿜어 세상에 내놓을 수가 있을까
평지에 산다고 달라질 것 없는 때 묻은 마음은
눈이 아무리 내려도 덮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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