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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탐방

한국의 100대명산 100번째 등정 - 청마문학관

한국 100대명산 100번째 등정 및 영공문학회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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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8월 19일


 출발 장소를 서울역과 영등포역으로 하고 아침 8시까지 서울역에 나와 최문구 회원, 영등포역에 8시 20분까지 모이는 이상호, 김창수, 김완기, 김항걸, 현일성 회원들이 8시 25분에 출발하여 서울에서 마산까지 가는 새마을호 열차를 타고 영등포역에서 8시 35분에 합류하기로 했다.

 서울역을 출발하려는 순간 이상호 회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김항걸 회원이 차가 막혀 당산역밖에 못 왔다는 것이었다. 기다려보다가 조치를 취하기로 하면서 열차는 출발하였다. 당산역에서 영등포역까지는 도로사정이 어쩐지 알 수 없었으나 급박한 상황이었다. 노량진역으로 지나치면서 전화를 넣으니 막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영등포역에 정차하고 4호차 21과 22는 나와 최문구 회원이 먼저 앉아서 왔고 23에서 27까지 좌석을 채워 앉으며 반가움을 나눴다. 김완기 총무는 준비된 깁밥을 나누어 주었다. 이번 영공문학회세미나는 이상호 회원이 그동안 집념을 갖고 돌파한 우리나라 100대명산 100번 쩨 등정을 함께 하려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다.

 예정은 19일 통영에서「청마 유치환시인」문학관, 조각공원, 통영시장을 들러「종이배」 펜션 1박, 20일 사량도 지리망산 등정, 남해 1박, 21일 상주해수욕장, 금산, 보리암으로 짜고 있었다.


1. 청마 문학관


 마산에 도착하여 버스로 통영으로 향했다. 통영버스터미널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나루호 발사를 앞두고 미리 중계를 하고 있는 장면이 텔레비전을 통해 눈에 들어왔다. 인근에 대형 이마트에서 저녁식사와 내일 아침 식사 준비를 하여 숙소인「종이배」팬션으로 택시를 타고 가야했다. 찾아가 짐을 넣고 다시 청마문학관으로 향했다. 문학관으로 들어가자 신권호 관장님이 반갑게 우릴 맞이하셨다.

 청마 유치환(1908-1967)시인의 문학정신을 보존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2000년 2월 통영시 정량동 망일봉 언덕 부지에 문학관(전시관)과 생가를 복원하여 개관한 곳이 청마 문학관이다. 전시관에는 삶을 조명하는「청마의 생애」와 생명추구의 시작을 살펴보는「청마의 작품 생애관」,사용하던 청마관련 평론서적 논문을 정리한「청마의 발자취관」,「시 감상코너 편」으로 구분하여 전시하고 유품 100여점과 각종문헌자료 350여접이 전시되어있었다. 관장님의 정성을 다한 안내에 감사드리며 일행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문학관을 나오면서 유치환의 대표 시로 많이 낭송되고 있는 시「행복」을 떠올리고 있었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봇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2. 조각공원과 통영시장


 통영시민문화회관 언덕에 설립된 조각공원을 보기로 했다. 4개의 모퉁이에 기둥처럼 생긴 사면체에 반사하는 면으로 회전이 되는 조각에 관심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리고 밑으로 내려오면서 바다와 아우러진 건물과 어선들이 아름다운 엽서처럼 다가왔다. 나신을 하고선 사나이들의 일 열로선 열병을 맞으면서 골목길로 내려갔다. 새로 개발하고자하는 목적으로 기존 건물들을 철거해가는 도중에 쉬고 있었다.

 통영시장으로 접어드는 횡단로에서 두 승용차끼리 추돌로 지나치는 사람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여러 종류의 횟감들이 널려있었는데 싱싱한 티를 내는지 부르는 값이 무척 비쌌다. 저녁꺼리는 이미 준비되었기에 구경으로 마쳤다. 주변의 다른 명소를 찾았으나 멀리 떨어져 부둣가를 돌다가 숙소로 이동하였다.


3.「종이배」팬션


 숙소는 바다를 가까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엇을 양식하는지 파란 바다위에 하얀 공처럼 나열되어 눈에 띄었다. 아래 층 두 칸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상호 회원이 밥과 찌개를 김창수 회원이 상추와 고추를 깨끗이 씻고 김완기 총무와 현일선 회원이 건너 방에서 각종 반찬과 삼겹살을 챙기고 최문구 회원은 밖에 잔디마당에 주인아저씨와 불을 붙이고 식탁에 수저와 젓가락을 정돈하고 나는 밖으로 왔다 갔다 하며 물건을 나르고 있었다.

 준비된 식사는 그야말로 가든파티나 다름이 없었다. 이상호 회원이 가지고온 복분자와 수삼을 숙성시킨 술을 내놓았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어두워진 주변을 등을 밝혀 우리 일행들을 조명으로 밝혀주었다. 늦게 들어오던 팬션의 투숙객들이 한참 넋을 잃고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다보며 올라가곤 했다.


4. 문학세미나


 늦은 시간이지만 10시부터 문학세미나를 하기로 했다. 나는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와 하관, 그리고 졸시 바람의 언덕과 탑돌이를 대상으로 시론이 펼쳐졌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그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 백리.


술 익은 마을 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나그네」전문


 구름 위에 달이 되어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길을 정처 없이 가는 나그네가 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우리 모두의 삶을 담고 있다. 이 시에서의 나그네는 쓸쓸함과 고달픔 그리고 체념과 달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랴했던 지난 어려운 시절 우리 민족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속을 드러내놓고 보여주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앉아있던 바람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언덕에 발을 디딜 때마다

안절부절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마음을 닦고 올라선 관광객이라도

거짓을 찾아내면 거칠게 몰아붙이는 바람

드라마 속에까지 날아가서 춤을 추고 돌아와

마음 상하여 언덕을 떠나지 못한다

 - 졸시「바람의 언덕」에서


 바람은 거짓 없이 속을 다 보여주는 바다와 있기만을 원한다. 거짓말을 하면 어던 것과도 같이 하려하지 않는다.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잣대를 나름대로 정해놓고 조금이라도 거짓이 묻어 있으면 사정없이 화를 내듯 바람을 불어 몰아내려한다. 바람 부는 언덕의 모습을 보고 왜 불어야만 하는지 의문을 풀어보는 바람과의 솔직한 대화이다.

 

 

둘째 날 8월 20일


1. 지리망산 등정


 아침 일찍 서둘러 사량도를 가기위해 가오치 항으로 늦지 않게 7시에 아침식사를 하였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으나 예상 보다 일찍 일어난 회원들에게 이상호 회원이 준비한 찌개로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사량도는 상도와 하도 사이에 해협이 길고 가늘게 꾸불꾸불 흐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9시 배를 승선권을 끊고 기다렸다. 배를 타고 가는 길에 일정계획이 없이 지리망산을 가려는 아줌마 일행과 합류하게 되었다. 사량터미널에 도착하여 짐을 회집식당에 맡기고 다녀와서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버스를 타고 돈지에 내려 물을 준비하여 지리망산 등정에 올랐다. 일행은 등산에 경력이 많지 않아 정산에 올라 다시 온 길을 내려오기로 하였다. 이상호 회원이 맨 뒤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힘겨워하였다.

 며칠 전 무리하여 명산을 등정한 것이 걱정이었다. 김창수 회원이 배낭을 교대하여 들었고 속도를 늦추어 오르도록 강조하였다. 그리고 군데군데에서 휴식을 갖게 하였다. 날씨는 오후 늦게 비가 온다하여 등산에는 별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구름이 끼어 있다가 햇살이 나왔다가를 반복하였다. 나무 그늘에서는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돌산을 지나칠 때는 안전이 제일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져 크게 다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중간 산봉우리에 올라섰을 때 높은 곳엘 올라서는데 자신이 없다던 현일선 회원이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일행은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올랐고 아줌마 일행은 김항걸, 김완기, 김창수, 최문구 회원과 앞서 갔고 그 뒤에 이상호 회원과 나는 따라가고 있었다. 

 500미터를 앞두고 쉬어가기로 했다. 경사는 더욱 가파르고 호흡은 거칠게 내몰아쉬고 있었다. 한 걸음씩 올라가 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호 회원이 100대 명산을 5년 동안 틈틈이 올라 오늘 100번째 명산을 영공문학회 회원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는 날이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면서 나는 이상호 회원과 뜨거운 포옹을 하였고, 미리 준비한 플랜카드를 펼쳐 정상 398미터를 나타내는 표지석 아래에 잡고 회원들이 함께 선 사진을 촬영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100대 명산의 사진첩을 발간할 때 표지그림으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동영상을 촬영해오던 최문구 회원은 일일이 회원들의 소감을 인터뷰하고 있었다.

 산 아래 바다는 구름이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내려가는 순서도 김항걸, 김완기, 김창수 회원이 내려갔고 나와 이상호, 최문구 회원이 그 뒤를 따랐다. 천천히 내려가던 나는 앞에 보여야할 선발대가 보이지 않아 속력 냈는가 싶어 큰 걱정은 안했는데 현일선 회원이 기다리는 곳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보이지 않아 먼저 내려갔는지를 묻자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바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핸드폰으로 김완기 총무에게 전화를 하니 길을 잘못 든 걸 확인했고 김항걸 회원과도 따로 떨어진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 내려다보고 낮은 봉우리로 내려오게 한 다음 이상호 회원이 기다렸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와 현일선, 최문구 회원은 먼저 내려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합류하여 식당으로 들어가 점심식사를 하였다. 일행은 모두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산 을 내려오는 길은 땡볕이 내려 쬐어 몸을 많이 태우게 되었다. 미리 주문한생선회를 내놓았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회원들은 맛있는 식사에 취하여 새로운 추억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2. 남해 태양관


 일행은 진주로 향했다. 남해로 가기 위해 진주를 거쳐 남해 가는 버스로 갈아 타야했던 것이다. 현일선 회원은 부산으로 가서 이틀 정도 여행을 예정하고 있었다. 진주에서 부산으로 가는 직통 버스가 있다고 했다. 부산행 버스가 바로 있어서 출발하여 아쉬운 헤어짐을 맞아야 했다.

 일행은 직행으로 남해에 가기 위해 기다려야했다. 남해에서도 상주해수욕장까지는 버스를 갈아 타야했다. 남해에 버스는 8시5분에 도착하였고, 8시 10분으로 잘못 알고 서둘러 007작전 인양 막차로 겨우 올라탄 버스는 8시20분발이었다. 일행은 상주해수욕장이 바라다 보이는 태양관 모텔을 숙소로 잡았다.

 지리망산에서 흘린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저녁식사를 위해 나갔다. 해물탕을 시켰으나 갈비집에서 시킨 거라 맛은 별로였지만 때울 수가 있었다. 들어가기 전에 상주해수욕장을 걷기로 했다. 시원한 바닷가 바람을 맞으며 고운 백사장 모래를 만져보았다. 생각 보다 사람들은 많지 않아 들어오는 길에 맥주 캔을 하나씩 마시고 숙소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