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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탐방

춘천 김유정문학촌을 다녀와서

 

 춘천 김유정문학촌을 다녀와서


 11월 1일은 개교기념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동작문인협회 행사로 가는 춘천 김유정 문학촌에 갈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더구나 오후엔 대학동기인 임낙호 님의 장남혼사가 있는데 망설이다 참석하게 되었다. 평소 모임에도 다른 일이 겹치곤 하여 찬석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아침 7시30분 사당역 남현동편 우리은행 옆에 여행사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회원문인들이 자리를 이미 거의 채우고 있었다. 몇 분 만 도착하지 못해 기다리고 있었다. 구인환 회장님을 비롯해 늘 뵙던 정다운 얼굴들이었다. 은학표 사무국장이 분주하게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여전하였다.

 버스 안쪽에 들어서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오랜 문우 곽광택 시인께서 얼굴을 마주했고 그 앞자리에 조태현 수필가 옆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맨 뒤 자석엔 이오례 시인과 광명문인협회 회원 네 분과 함께 참여해주었다. 이오례 시인은 사랑방시낭송회에서 같이 활동해온 분이고 네 분 중에 김기진 시인은 안면이 있는 분이었다.

 식수, 김밥 등 준비를 철저히 해줘 불편함이 없었다. 최근에 월간 문학세계로 필자와 인연을 맺은 윤원희 수필가와 인사를 나눴다. 뒤 늦게 등단하셔 궁금한 게 많아 질문을 여러 가지 해주셨다. 그리고 자주 접하지 못했던 조 수필가와 문학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작문인협회는 창립된 지는 얼마 안 되나 회원들의 노력으로 열성적인 활동을 전개해왔다. 은학표 사무국장과 임원들의 협조로 기동성을 발휘하여 다른 서울지역 문인단체 보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이루어진 문인 낭송회는 시인뿐만 아니라 수필가, 소설가들까지 참여하는 모습은 참여도를 높이고 화기애애하였다. 시첩을 손에 들고 자작시 낭송을 감상하며 복잡다난한 일상을 탈출하고 있었다.

 

  구곡폭포로 오르는 산길은 단풍으로 물들어 향긋한 가을을 마시게 하였다. 높다랗게 매달린 위에서 쏟아지는 폭포수를 바라다보며 가슴을 시원하게 씻을 수 있었다. 활짝 핀 문인들의 얼굴엔 즐거움이 가득하고 이곳저곳에서 탄성을 금치 못했다.

 폭포로 들어가는 입구에 놓인 식당에서 술 한 장 할 분들은 밖에서 그리고 여자문인들은 안으로 들어가 식사를 하였다. 막걸 리가 잘 익었다. 몇 잔을 들이키며 일행 중에 장승기 부회장님과 박근원 전 재정국장께서 나눠주신 이야기에 빠져 옛 정취를 되찾을 수 있었다.  서로 통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 문이 열린다는 말처럼 글을 쓰기 위해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꺼내 끊이지 않은 대화를 나누었다.

 막간을 이용하여 필자에게 시에 관한 이야기를 부탁받아 시낭송에 대한 견해와 최근에 쓴 시 세 편「단추」,「빈집」,「얼굴 잊은 월급봉투」에 대한 창작이야기를 곁들였다.


옷고름이나 끈 대신 매달아놓은 단추는

두 폭을 오므리기 위하여 하나라도 떨어져나가면

몇 개의 모양이 모두 같아 이빨 빠진 것 마냥 흉해

찾기 전에는 헤벌어져 짝을 찾아달라며

볼썽사납게 울부짖는다.

옷 한 벌 버리자니 아깝고

짐작 가는 자리를 이 잡듯 뒤졌지만

눈에 띄지 않아 답답한 냉가슴.

단추 하나 포기하고 모두를 떼어 바꾸어 달까

이래도 저래도 마음에 차지 않아

짊어진 무거운 짐 하나.

누가 주어도 누구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해

쓸모없이 버려질 한 조각이지만

가리고 싶은 속을 겉으로 드러낸 부끄러움

두 손으로 가려보아도 어쭙잖은 일이다.  

    - 졸시「단추」전문


 춘천에 있는 김유정 문학촌에 도착하여 짧은 생애를 보냈지만 문학사에 남긴 큰 업적을 기리고자 생가를 중심으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현지 건물이나 장소를 보존하려고 애를 쓴 노력이 보였다. 올해가 김유정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가 배경으로 해서 작품활동을 펼쳤던 실레마을, 명작의 고향을 탐방하게 된 것이다.

 생가와 김유정 문학촌을 들러서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금병의숙, 봄 봄길, 동백꽃길, 흘림길(주막길), 과수원길(금병도원), 산골짜기길로 돌 수 있다.

 그는 1908년 춘천시신동면중리(실레마을)에서 태어나 휘문고를 졸업하고 박록주에게 구애의 서신을 보내나 이루지 못하고, 연희전문을 다니다가 출석미달로 제적을 당하였다. 그 후 고향에 내려와 야학과 농우회를 조직하여 농촌계몽활동에 힘을 쏟으며 1935년 조선일보에 「소낙비」가 당선되어 폐결핵으로 고전하면서도「봄 봄」,「만무방」,「동백꽃」등 30여 편의 소설을 남기고 아깝게도 1937년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되면 보기로 한 양수리 연꽃전시를 두물머리가 바라보이는 강가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시기로 보아 늦긴 했어도 물 위에 떠오르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화사하게 웃고 있는 여러 모습의 연꽃을 둘러보았다. 말이나 글로서 표현하기 힘든 신비스러운 꽃잎을 바라보며 필자 역시 꽃이 되어 물 위에 띄워본다.

 여러해살이 수초로서 연못에서 자라거나 논밭에서 재배하며 뿌리줄기가 굵고 옆으로 뻗어간다. 잎은 뿌리줄기에서 나와 잎자루 끝에 달리며, 꽃은 7-8월에 또는 흰색으로 핀다. 잎과 열매는 약용하고 뿌리는 식용으로 쓰인다.

 북한강 줄기와 남한강 줄기가 머리를 마주하고 만나는 곳이라 하여 양수리, 두물머리라 불린다. 차편으로 들어오려면 구 양수대교에서 두물머리로 들어 올 수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와서 제대로 문학기행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였는데 맑게 개여 높은 가을하늘 아래 빛나는 자연을 벗하여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하루였다.

 서울로 돌아와 이수역과 사당역에서 내려 해산하는 일정의 끝까지 질서를 잘 지켜주시고 목적하는바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주신 모든 회원과 동참해주신 광명문인협회 회원들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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