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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구미, 문경 문학기행

구미, 문경 문학기행

 

순수한 마음과 자연의 순리를 배우지 않으면 기술과 재주는 아무 소용이 없다

 

1.들어가는 글

 

  오늘은 박병구 시인이 정년퇴임을 앞두고 월간 문학세계 임원들을 초대한 날이었다. 다음 주 월 화 수 출판사 휴가로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 시첩을 당겨서 오전까지 마무리하고 시창작 강의를 부랴부랴 오후 2시 반에 마치고 오후 4시 차로 출발하려고 서울역에 가기 위해 윤 실장님과 왕십리역에서 만나 동행하였다.

  온양에서 올라오신 신영철 시인과 합류하여 출발시간이 남아 더운 날씨를 뒤로 하고 카페에서 시원한 차 한 잔을 나눴다. 신 시인의 건강을 염려했던 터에 다시 찾은 밝은 미소에 반가움을 배가하였다. 일행은 최근의 어두운 터널을 뚫고 지나온 듯 사태를 수습하고 안도의 숨을 쉬어야 했기 때문이다.

 

2.구미문학세미나

 

  구미에 5시 반쯤 도착하여 마중 나온 박병구 시인과 황의습 시인, 그리고 김창호 시조시인을 만났다. 반갑게 만나 마치 한식구가 오랜만에 떨어져 있다 만나는 냥 맞아주었다. 짐을 숙소에 내려놓고 인근 식당으로 장소를 옮겼다. 이곳에서 박시인의 직장 실장님께서 자리를 함께 하였다.

  윤실장님의 진행으로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말씀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모두가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뜻있는 자리였다. 특히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박시인의 인생철학이 느껴지는 알뜰살뜰한 삶의 필살기를 비롯한 실장님과 이룬 손발호흡이 담긴 이야기, 김창호 시조시인의 다수의 마라톤 완주와 산티아고 순례길 그리고 문학관, 신영철 시인과 윤실장님, 필자가 겪은 공동으로 겪은 어려움을 극복한 무공담은 모두를 긴장시켰고 폭넓은 활동내용과 위트 넘치는 황의습 시인의 말씀은 일행을 공감시키는데 충분하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방을 찾았다. 황의습 시인의 재치로 몇 곡을 먼저 부르면서 분위기가 살아났다. 명품 가수는 단연코 윤실장님의 몫이었고 평소에 감추고 있던 끼를 발산하는 자리였다. 필자도 감기 기운으로 목에 가래가 겼었는데 열창으로 날려 보냈다. 서로를 가깝게 해주는 마력을 지닌 자리였다. 숙소로 돌아와 간단한 음식을 놓고 나누는 정담은 끝이질 않았다. 지난번에 다녀온 이후 궁금했던 주변의 모습들을 주고받으며 밤 12시가 넘어 다음날 오전 2시가 넘어 잠자리로 들어갔다.

 


3.아침식사

 

늦게 잔 탓인지 아침 6시 반에 일어났다. 어제 밤에 하지 못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니 산뜻한 마음으로 숙소 발코니 밖에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15층 최고층이어서 모두 시야에 들어왔다. 한쪽 방향은 산과 연결되어 산책코스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아파트 단지 공기가 맑게 느껴졌다.

댁에 들렸다 오시기로 한 박시인은 오전 9시에 도착 예정이었다. 아직 취침 중이어서 다시 잠깐 누웠다. 얼나 안되어 하나 둘씩 일어나 인기척을 주었다. 먹다 남은 자두와 포도를 다시 씻어 나눠 먹으며 담소를 즐겼다. 그러다 보니 오전 9시가 금방 되었다.

인근에 식당으로 이동하여 아침식사를 해야 했다. 처음 찾은 식당에서 15분쯤 기다려야 한다기에 다른 곳을 갔더니 한 시간이나 기다린다 하여 다시 먼저 식당으로 가다가 더 좋은 기사식당을 찾았다. 청국장, 김치찌개, 비지찌개를 시켜 식성대로 10시 반에야 늦은 아침을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음식 맛은 나무랄 데 없었다

 

 

4.문경 주흘요(主屹窯) 탐방


 


  박시인의 안내로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590-3에 자리하고 있는 주흘요를 찾아 월파(月波) 이정환 선생님을 뵙게 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자 사모님, 그리고 월파선생님께서 나오셔서 반겨주셨다.

  주흘요(主屹窯)는 지난 1992년에 지금의 주흘산 자락, 국도에서 문경새재로 가는 나들목 맞은편에 연 도자기 가마다.고려다완을 재현하기에 계속 몰입하여 35년 만에 완성을 해냈다. 그 후 일반도자기에도 심혈을 쏟아 지난 2002년엔 찻사발매화 잔을 개발하여 특허를 냈다. 식음료의 탄산가스와 반응해 기포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특성을 지녀 각광을 받고 있다. 맥주를 따르면 매화꽃잎 피어올라 운치를 더해 줌은 물론, 맥주 맛마저 순하게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도를 닦는 수행자와 같은 덥수룩한 수염의 그가 아닌 모습으로 일행을 맞으셨다. 근래에 수염을 깎고 내가 없어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전시실 옆 차방 테이블에 들러 앉은 모두의 앞에 찻잔을 나눠주시고 연달아 보이차를 끓여 따라주셨다.

  필자는 질문을 통해유럽의 왕궁에 중국도자기가 진열되었는데 우리 도자기는 찾지 못했다고하자 당시의 사정을중국은 당대 세계 제1의 무역국이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더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 궁궐에서나 사용하는 정도였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많은 도공들이 납치되면서 무역에 눈을 뜬 일본이 많은 부를 가져왔고 그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기반이 되었고 그로 인해 다시 복구하는 원천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없었고 우리가 무역에 눈을 일찍 떴다면 세상판도는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도자기 가마는 예전에는 흙이 좋고 땔감이 많은 곳이 유리했으나 교통이 발달되면서 달라진 상황이었다. 주흘요(主屹窯)는 지난 1992년에 지금의 주흘산 자락, 국도에서 문경새재로 가는 나들목 맞은편에 연 도자기 가마다.고려다완을 재현하기에 계속 몰입하여 35년 만에 완성을 해냈다. 그 후 일반도자기에도 심혈을 쏟아 지난 2002년엔 찻사발매화 잔을 개발하여 특허를 냈다. 식음료의 탄산가스와 반응해 기포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키는 특성을 지녀 각광을 받고 있다.

  맥주를 따르면 매화꽃잎 피어올라 운치를 더해 줌은 물론, 맥주 맛마저 순하게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마실 때는 잔을 두 손으로 공손히 들고 마주 들고 상대와 손등을 맞대어 서로 교차하여 마시는 게 좋다고 했다.

  나오면서 월파 선생님은 준비하신 매화 잔(梅花 盞)을 선물로 주셨다. 바로 그 특허를 내신 차 그릇(茶碗)이다. 잔 하나의 작품에서 작품에 임하는 그의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공은 흙과 불을 대하는 순수한 마음과 자연의 순리를 먼저 배우지 않으면 기술과 재주는 아무 소용이 없다. 또한 욕심이 없는 마음으로 흙을 빚어야 하며, 수련의 연륜을 쌓아야 하는 강한 내공으로 당당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잠깐의 시간동안 오랜 수련을 쌓고 산을 내려오는 수도자와 같이 마음이 가다듬어져 맑고 정갈하여 훨씬 가벼웠다.


 

5.점심식사

 

 

 월파 선생님과 식사를 함께 하시길 권하였으나 손님이 오신다하여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귀가하는 열차 역은 구미역이었다. 그곳 가까이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찾은 곳은 유촌포자 집이었다. 만두전문집이었으나 날씨가 더워 콩국수를 별식으로 내놓는단다. 친절하고 서비스가 만점이었다.

  콩을 직접 갈아 걸쭉한 국물이 구수하였다. 아삭아삭하는 고추가 맛을 더해주었다. 거기에 만두 하나를 추가하여 유촌포자 집의 명예를 드높였다. 웬만하면 남기는 콩국 물을 거의 다 마시고 말았다. 서울행은 313분쯤이었다. 아직 20여분이 남은 상태였다. 아쉬움을 남기고 헤어져야 했다. 9월 중순에 아산에 볼일이 있다며 운을 띄우고 악수를 남겼다.

 

6.나오는 글

 

  문학기행은 언제나 소통을 터전으로 삼아야 했다. 소통이란 한쪽에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듣고서 상대의 답이 오는 것을 말한다. 허공에서 메아리만 돌아오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첫날의 식사를 하면서 돌아가며 나눈 대화의 의미도 세미나로 손색이 없는 무게를 싣고 있었다. 서로를 이해하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갖춘다는 것이다. 둘째 날의 월파 선생님 탐방은 높은 경지에 오르신 분의 깨달음의 경전이었다.

  좋은 시간을 맞을 수 있었던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워져 있었던 한쪽 가슴을 보람으로 채워 내공을 쌓는데 일익을 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순수한 마음과 자연의 순리를 먼저 배우지 않으면 기술과 재주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경종을 울려주셨다.


201984일 늦은 오후

윤 제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