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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탐방

강릉 허난설헌 문학관 - 사랑방시낭송회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사랑방시낭송회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1. 들어가는 글

 

 

 아침 일찍 일어나 광화문역에 오전 7시 40분까지 가야했다. 버스가 8시에 강릉을 향해 출발해야했기 때문이다. 허난설헌 문학관, 오죽헌, 경포대를 문학기행하기 위해서였다. 참가예정 인원이 31명이었으나 당일 아침 출발시간까지 도착한 회원은 모두 24명이었다.

 김건일 회장님은 참석하기로 한 모두가 오기를 역에서 가까운 버스 앞에서 서서 기다리셨지만 끝내 이루지지 않았다. 필자도 나중에 출발하면서 박일소 총무님의 이야기를 듣고 실망하셨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발하고 나서 얼마 후 인사말씀을 통해서「 - 참석하기로 했으면 참석을 해야지 아무런 연락도 없이 빠질 수는 없는 일이지만 참석하신 회원들은 소중하게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랑방시낭송회가 가야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기회의 자리가 되어주길 바라며 참석하신 분들의 역할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2. 시낭송회

 

 

 필자는 매월 하던 대로 223회 시낭송회를 진행을 했다. 시첩에 게재된 순서대로 하기로 했다. 참석시인은 김건일 회장님과 노선관님, 이옥천님, 오운교님, 최정은님, 김봉균님, 이명재님, 오만환님, 홍기연님, 홍윤희님, 박일소 총무님, 이오례님, 최주식님, 전용숙님, 임상섭님, 우재호님, 송동현님, 포공영님, 김희진님, 정창희님, 김경자님, 정금자님, 최길순님, 그리고 필자였다.

 중간에 여주휴게소에 잠시 쉬었다가 계속 진행되었다. 시낭송회가 마무리되면서 필자는 별러오던 습작시절의 경험담을 통하여 보다 질적으로 향상된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역설과 김전일 회장님의 관심과 노고에 대한 기억을 되새겼다. 그리고 회장님의 시창작에 관한 귀한 말씀이 이어졌다. 그리고 몇 분의 문학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셔 창작의욕을 고조시켜주었다. 김건일 회장님께서 긴급제의로 둔내에 있는 농장 근처 횡성한우로 저녁식사를 내시겠다는 약속을 하셔서 기쁨을 주셨다.

 강릉 허난설헌 문학관에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기로 예약한 오전 11시 30분이 지나 순서를 바꾸어 경포대 바닷가를 들러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죽헌을 들러 허난설헌 문학관을 보기로 변경하였다.

 

 

 

 

 

 

3. 동해안 산책

 

 

 버스에서 내려 날씨 화창한 동해안은 일행의 마음을 가볍고 즐겁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파란 바다는 흰 거품을 품은 채 백사장을 넘나들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자유롭게 끼리끼리 기념하는 사진을 찍는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그야말로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이 후회할 만한 분위기였다.

 

 

 

 

 

4. 점심식사

 

 

 초당순두부집에서 준비해놓은 점심식사를 위해 모두가 들어 갈 수 있는 큰 방으로 들어갔다. 한자리에 앉아 노선관님의 건배제의에 따라 사란방시낭송회를 위하여를 외치면서 즐거운 식사가 시작되었다. 광화문나무까페에서 만나 석정에서 만나는 모임과는 달리 고향에 온 그런 자리가 편하고 좋았다. 식사 후 외부에 만들어진 휴식공간에서 커피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었다. .

 

 

 

 

 

 

 

5. 오죽헌

 

 

 오죽헌은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가 많아 권처균이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지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율곡 이이선생의 생가였다. 훌륭한 어머니가 훌륭한 인물을 만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셨던 신사임당은 그의 어머니였다.

 용인 이씨는 친정어머니 최씨가 병이 나자 간호를 위해 강릉에 머물러 있을 때 오죽헌에서 사임당을 낳고, 사임당은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강릉에서 지내다 오죽헌에서 율곡을 낳았다. 시집은 갔어도 어머니를 모시려는 효 때문에 사임당과 율곡이 오죽헌에서 태어난 것이다.

 오죽헌은 주선 초기에 지어진 별당 건물이다. 이곳 몽룡실에서 율곡이 태어났다. 문성사는 율곡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본래 어제각이 있던 자리를 정화하면서 옮기고 새로 지었다. 문성은 인조임금이 내린 율곡 선생의 시호다.

 율곡매는 수령이 600년 되는 홍매다. 높이가 7m 정도이고 3월 초순 전후에 꽃이 핀다. 매화가 장식된 율곡의 벼루가 남아 있다. 사랑채는 바깥주인이 외부손님을 접대하며 거처하던 곳이다. 정조대왕이 율곡이 쓴 격몽요결과 사용하던 벼루를 보고 책에는 머리글을 벼루 뒷면에는 글을 새겨 소중히 보관 하랴는 명을 보관하고자 지은 집이다. 오죽헌의 역사와 신사임당, 율곡 이이 등 오죽헌과 관련된 인물들의 연면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6. 허균, 허난설헌 문학관

 

 

 우리나라 고전문학의 향기가 흩날리는 기념공원이다. 허균(1569-1618)과 누이 허난설헌(1563-1589)이 그 주인공이다. 이곳 유적지는 초당 허엽이 살던 곳으로 허난설헌을 낳았고 허균이 살았다. 지명인 초당은 허엽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토담과 주변 솔밭이 조화를 이룬 명당이다.

 허균은 조선 중기에 개혁을 펼치던 사상가이다.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었다. 호는 교산이다. 그는 소설작품,·한시,·문학비평 등에 걸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문집에 실려 있는 그의 한시는 많지는 않지만 국내외로부터 품격이 높고 시어가 정교하다는 평을 받는다. 시화(詩話)에 실려 있는 그의 문학비평은 당대에는 물론 현재에도 문학에 대한 안목을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품으로 전하는 〈홍길동전〉은 그의 비판정신과 개혁사상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적서차별로 인한 신분적 차별을 비판하면서 탐관오리에 대한 징벌, 가난한 서민들에 대한 구제, 새로운 세계의 건설 등을 제안했다.〈엄처사전〉,·〈손곡산인전〉,·〈장산인전〉,·〈장생전〉,·〈남궁선생전〉등은 그가 지은 한문소설인데, 여기서는 주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의미 있게 살아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남다른 삶의 모습과 사상을 기술했다.

 허난설헌은 본명은 초희다. 친정집에는 옥사(獄事)가 있었고, 동생 허균도 귀양가버리자 삶의 의욕을 잃고 시를 지으며 나날을 보내다가 27세로 요절했다. 시 213수가 전하며, 그중 신선시가 128수이다. 그녀의 시는 봉건적 현실을 초월한 도가사상의 신선시와 삶의 고민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으로 구별된다.

 후에 허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시를 보여주어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발간되는 계기가 되었고 유고집으로 〈난설헌집〉이 있다. 두 오누이의 사상과 문학을 중심으로 영상자료와 국조시선, 하곡조천기, 난살헌집, 석란유분 등을 전시하고 있다.

 

 

 

 

 

 

 

 

 

 

 

 

 

 

 

 

 

 

 

 

 

 

 

 

 

 

7. 저녁식사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횡성축협한우프라자 둔내점에 들렀다. 한우로서는 두말할 필요 없이 그 맛을 알아주는 횡성 한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곳은 김건일 회장님의 농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약령시장 입구에 정우당약국을 운영하시는 회장님은 많은 환자들이 약효를 받아 소문을 통해 메스커뮤니케이션 등에 널리 알려진 분이다. 주말이면 농장에 내려오셔 농작물 재배에 여념이 없으시다.

 사랑방시낭송회를 위해서 오랜 기간을 회원 모두가 자신들의 임무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이끌어주셨고, 그 성과가 실로 놀라와 국내 유수의 시낭송회로 성장하였다. 오늘도 농장에 오시면서 수고한 회원 모주에게 한우 저녁식사를 내셨다. 건배제의를 포공영님께 사양하시고 기쁨을 함께 하였다.

 이곳저곳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못 다한 시 이야기를 꽃 피우며 문학기행의 마무리를 해야했다. 회장님은 농장으로 일행은 모두 버스에 올라 아쉬움을 남기면서 서울로 향해야했다.

 

 

 

 

 

8. 나오는 글

 

 

 창작은 세상을 놀라게 해야 한다는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거듭 새로운 사고의 방향과 각도를 나름대로 확립해야 할 것이다. 좋은 작품으로 말하는 시인으로 지속적인 탈바꿈을 시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의 작품도 많이 읽어야한다. 이미 남들이 이야기한 내용들을 답습하거나 표현한 방법을 자신이 처음 시도한 것으로 알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이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정제된 시로 창출되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것을 알고 정신적인 의식면에서 선구적인 역할로 앞서나가 새로운 생각을 제시해야한다. 부단한 노력이 없이 일반인들 보다 뒤처지는 의식세계를 지니고서는 시인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뜻있는 사랑방시낭송회 문학기행을 위해 힘써주신 회장님과 총무님, 그리고 참석하신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또한 안전하게 이동에 정성을 다하신 운전기사님께도 감사드린다.

 

2014년 6월 15일 오후

윤제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