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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안동문학기행(최성달 시인 출판기념회)을 다녀와서

안동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윤제철

 

 2012년 12월도 얼마 남지 않은 21일 오후 일행은 강변역 동서울터미날에 12시까지 서둘러 가야했다. 출발시간은 제대로 알지 못했으나 눈이 내리고 있는 바깥풍경은 지하철로 달리면서도 더디게만 여겨졌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였을 때는 눈이 제법 쌓여 있어 보행을 조심해야했다.

 점심식사를 간단히 하고 오후 1시에 출발하는 안동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여행은 창밖을 내다보면서 여유롭게 눈에 들어오는 자연을 마음에 담으며 우리네 일상과 비유되는 느낌으로 소화시킬 수 있어 좋았다. 일행은 윤지훈 사단법인 세계문인협회 사무총창과 최병영 사단법인 세계문인협회 감사, 석병천 사단법인 세계문인협회 이사, 그리고 필자가 참여하여 넷이었다. 버스는 눈길에도 아랑곳없이 예정 속도를 유지하여 달려주었다. 제천 간이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들렀다가 커피를 한 잔할 수 있었다.

 안동 터미날에 도착한 시각은 거의 오후 4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최성달 시인의 출판기념회는 오후 6시 30분으로 예정되어있어 여유시간을 버스를 이용하느냐, 택시를 이용하느냐를 관광지 안내 지도를 구하여 의논한 결과 택시로 안동땜 인근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차에서 내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안동민속박물관이었다. 지하 1층, 그리고 지상 2층 935평에 야외 박물관가지 포함하여 5만2천 평이나 된다. 천하대장군을 비롯한 야외시설물들은 눈에 덮인 채 마중 나와 주었다. 입장은 하지 않았고 월영교로 기는 방향으로 가다가 왼쪽 방향에 이육사의 광야(廣野) 시비가 부르고 있었다.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던 시인의 저항시로 얼려진 시가 귀를 울린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낙동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가 월영교(月映)였다. 넓은 폭을 지닌 강은 여유롭게 흐르며 바라다보며 손짓하고 있었다. 강 양족에 둘러 선 산은 강물위에에서 아래로 거구로 서 투영되어 대칭을 이루며 하나의 동양화를 펼치고 있었다. 강물 한가운데 위로 걸어가면서 날개라도 펼치며 날아가듯 떠오르고 있었다.

 그동안 안동을 여러 번 다녀왔어도 보지 못했던 귀한 곳이었다. 기억하기로는 하회마을이나 도산서원, 이육사 문학관 정도였었다. 안동을 찾는 발길이 많아진 것은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의 내한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안동을 가장 한국적인 곳으로 선정하여 초청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관광 안내도마다「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고 상부에 제목처럼 흰 글자로 쓸 만큼 자존심을 지니고 있었다.

 

 

 오후 5시 30분이 약간 지나「M컨벤션」2층에 있는「프라임 홀」인근의 식당을 찾아 저녁요기를 했다. 행사가 길어져 자칫 늦어질 식사에 대비한 것이었다. 출구에 서있는 최성달 시집 「안동한지」출판기념회와 송옥순 안동제비원 성주풀이 완창공연이라고 쓰여 있는 안내판이 보였다. 15분전 쯤 입장하여 저자의 사인을 한 시집「안동한지」를 받았다.

 하객이 지리하고 있는 홀은 더 넓게 보이게 하늘빛 조명으로 관객들에게 안전감을 주었다. 시낭송을 비롯 색소폰, 아코디언, 대금 등 연주와 뮤지컬「왕의 나라」중「여랑의 사랑가」, 「10월의 어느 멋진 날」, 살풀이, 그리고 화선무로 이어졌다. 성부풀이 보존회장 송옥순님의 완창을 두 제자 오민정, 고예인과 함께 들려주었다.

 

 

 필자는 축사를 통하여「안동에 도착하여 내린 눈을 보고 시집제목인 안동한지로 세상의 어둠과 아픔을 덮어준 것 같다」고 전재하고,「시집은 수록된 시의 편수만큼 쌓은 빌딩과 같은데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돈이 되지도 않는 고독한 일에 매달릴 수 있는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했다.「기쁨은 순간에 날아가지만 아픔은 오래도록 남아 아픔을 잊기 위해 시를 쓰는 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최성달 시인의 시「내 시는」은「고뇌의 산물, 눈물의 저장고/ 진짜 슬픔은 뜨거운 욕지기/ 그 뜨거움을 삼키지 못해/ 불방망이를 쏟아낸다」고 털어놓았다며 보다 더 노력하여 좋은 시를 쓰는 훌륭한 시인으로 성공을 빈다고 마무리하였다. 늦은 시간에 베풀어진 뒤풀이는 좌석수가 많은 노래방에서 이루어졌다. 일행은 성주풀이를 완창하신 송옥순님과 두 제자, 그리고 초대된 여러분들이 참여한 가운데 함께 어울려 하나의 연극을 연출하면서 아쉬움을 남기고 자리를 떠야했다.

 

 

 낙동강변에 위치한 리버스토리로 잡은 숙소로 돌아와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찜질방 마냔 뜨겁고 후끈후끈한 온돌방은 늦게 잠든 필자를 아침 7시쯤에 깨워주고 있었다. 옷을 챙겨 입고 박희익 시인과 강변 눈길을 걸었다. 뽀드득뽀드득 걸음마다 따라다니며 부르는 소리를 뒤로 하고 한국인의 역사관과 사고방식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오전 10시가 넘어 최성달 시인의 승용차로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봉정사를 다녀오기로 했다. 잠시 도심을 떠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극락전을 가진 자랑스러운 곳이며 이곳에 오면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등반 할 수 있어 심신의 피로를 다 잊어버리게 하는 곳이다.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신문왕 2년(682)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새를 만들어 날려 보냈는데,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극락전은 주심포 건물이며 그 옆에 대웅전은 다포식 건물이다. 두 건물과 삼각형 위치에 놓인 화엄강당은 스님들이 불교의 기초 교학을 배우는 곳이다. 경내에 있는 극락전과 대웅전을 17세기에 고쳐지었을 때 화엄강당도 함께 고쳤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웅전은 단청에 채색이 안 되어 나무재질이 드러나 있었다.

 봉정사를 들어가는 출구 만세루나 영샨암에 들어가는 출구 우화루에는 일반 사찰과는 달리 사대천왕상이 하나도 없었다. 이곳 암자는 불교의 수도처와 주거지로서의 기능이 절묘하게 융합된 곳이다. 중정의 마당을 세단계의 높이차를 이용하여 마당을 석등 앞, 왼쪽 산신각 앞, 그리고 배롱나무와 석등 앞 큰 마당 사이에 손바닥만 한 마당 하나, 모두 세 개를 만들고, 왼쪽 구석진 곳의 산신각까지 시선을 유도 하여 공간의 깊이 감을 만들어 주는 배치방법 또한 치밀한 계획에서 얻어진 결과였다. 출구로 내려오면서 직여문(直如門)으로 들여다 보이는 사찰건물이 수려하였다.

 

 

 사찰 인근에 놓인 식당「토담집」에서 점심식사를 나누며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시장하던 차에 공깃밥을 순식간에 먹고 있었다. 그리고 1박 2일간에 일정을 통하여 감사와 당부, 그리고 기대가 마주하는 시간이 흘렀다.「시세계」로 시를 등단하고「문학세계」로 희곡을 등단한 후 그는 뮤지컬「왕의 나라」라는 대형 무대를 통하여 각광을 받는 작가로 거듭 나고 있어 안동을 대표하는 문학인으로 성장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최시인은 안동역으로 오후 3시 15분차 청랼리행 무궁화호를 탈 수 있도록 차를 태워 마중해주었다. 고마움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행사 내내 호흡을 같이 해주신 일행 여러분과 일정 모두를 이끌어주신 윤지훈 사무총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열차가 출발하면서 무언가 가득 가슴에 담고 가는 안동, 다시 오라하며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