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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마산 문학기행(<시와 시비> 출판기념 및 문학대축제)을 마치고

마산 문학기행을 다녀와서

 

 

 

윤 제 철

 

 

 

 2012년 11월 23일 오후 1시 45분 서울역에서 마산행 KTX 열차로 마산문인협회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급히 서둘러 가야했다. 금요일인지라 조퇴를 하고 점심식사를 일찍 마치고 나왔다. 버스로 당산역에 나와 2호선, 1호선 전철을 갈아타며 달려야했다. 일행은 모두 필자를 포함하여 여섯 명이었다. 석병천((월간 문학세계 교육위원), 윤지훈(세계문인협회 사무총장), 이수화(세계문인협회 고문),정선교(문학세계문인협회장), 최병영(세계문인협회 감사), 그리고 필자였다.

 마산까지는 오후 1시 50분쯤 출발하여 오후 4시 45분이 좀 지날 무렵 도착하여 거의 3시간 정도걸렸다. 필자는 이수화 선생님과 함께 앉았고 다른 일행은 몇 좌석 앞에 떨어져 가는 동안 해어져야 했다. 차안에서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 가는 시간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산역 전역인 창원역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리고 있어 이지역의 이름을 실감하였다. 마산, 창원, 진해를 합친 지역이었다. 이름은 창원이었다.

 

 

 

 

 

 

 

 

 행사가 있을 3.15아트센타로 향하였다. 오후 5시가 넘자 저녁으로 기울어 아트센터는 조명을 밝히고 있었다. 일행을 초청한 김병수 마산문인협회 회장이 반겨주었고 친근한 이웃처럼 언제나 함께 한 박희익 시인이 손을 내밀었다. 회원의 손길이 바쁜 틈으로 멀리서 이야기와 마음으로만 정을 나누던 공정식 시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는 너무나 뜨거운 인사를 손대신 몸으로 나누었다.

 행사는 오후 6시 30분부터로 예정되어 있었다. 점심식사를 제대로 못한 분들이 계셔서 주최측에서 마련한 떡과 음료로 요기를 할 수 있었다. 행사는 정시에< 마산의 시와 시비 >출판기념회 및 문학대축제라는 타이틀로 시작되었다.

 마산 시비 건립의 배경에 대한 말씀을 마산문인협회 고문이신 이광석 선생님께서 해주셨다. 그리고 이한영 부회장의 진행으로 내빈소개가 있었고 김병수 회장의 2012년도 사업에 대한 회고와 시비의 의의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바로 이어서 이우걸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의 축사가 있었다.

 오늘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이수화 선생님의「정치시政治詩에의 관견管見」문학강연이었다.이방언의 하여가何如歌와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로 시작하여 김소월의 산유화山有花, 김지하의 오적五賊과 신경림의 농무農舞, 그리고 한용운의 착인錯認, 의심하지 마세요, 오세요, 진주의 부분을 예시로 들어 사회적 자아와 창조적 자아가 잘 융합된 삶과 시를 분석하여 결론을 맺은 보기 드문 강연이었다.

 식순에 따라 시낭송과 국악, 성악, 기악으로 이어진 공연은 한층 가을의 정취를 드높여 참석한 문인들을 즐겁게 하였다. 기획에서 행사를 마무리하는 모든 일을 해낸 마산문인협회 임원진께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마산의 문학이 근대한국문학의 메카로 자리매김 될 수 있었던가를 돌이켜보게 했기 때문이었다.

 축제가 끝나고 회식자리에서 문인협회를 이끄시는 분들을 만났다. 문학의 역사와 전통을 잇겠다는 열의가 묻어나는 대화로 넓은 식당은 후끈 달아올랐다. 일행은 그곳을 마무리하고 화정단의 안내로 조개 익는 집에서 한 잔을 더하며 오랜만에 만난 가족처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숙소에 돌아와서 일행은 행사후담을 대선을 앞두고 야권후보의 단일화에 대한 토론으로 불이 붙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마산항 부두에 나갔다. 일 년 내내 부는 싸늘한 바람이 나를 맞았다. 정박된 배와 해안 노변에 늘어선 횟집들이 외등만 깜박거릴 뿐 아직 잠들어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항구의 아침을 담았다. 아침식사는 서두르지 않고 오전 9시가 넘어서야 이루어졌고 김병수 회장님과 배종애 사무국장님이 합류하였다.

 

 

 

 

 

 

 

 

 

 

 

 

 

 마산을 둘러보기로 한 오늘 일정은 오후 7시에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를 마산역에서 탈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먼저 들른 곳은 마산박물관이었다. 통합시가 된 이후에 호칭에 대한 고심의 흔적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장원시립마산박물관이었다. 마산박물관에는 문신미술관도 함께 있었다.

 마산박물관은 전시활동 이외에도 유물의 수집 보존과 연구, 조사, 학술자료발간,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제공 등을 통해 마산지역의 전통문화유산 보존과 지역문화 창조에 충추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문신미술관은 제1전시관, 제2전시관, 야외조각전시장, 문신원형미술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각, 석고원형, 유화, 채화, 드로잉, 유품, 공구 등 총 3,900여점의 작품 및 자료를 소장하고 있었다.

 

 

 

 

 

 

 

 

 

 

 

 

 

 

 

 

 

 

 

 

 

 다음은 합포의 얼을 찾아볼 수 있는 산호근린공원이었다. 입구에는 예술의 동산 시의 거리라는 돌비가 섰었고 나란히 열을 선 시비에는 네 폭 병풍모양의 노산 이은상 선생의「가고파」가 서있고, 김용 시인의「오월이 오면」, 천상병시인의「귀천」, 이석 시인의「봉선화」, 김세익 시인의「석류」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의「고향의 봄」과 이일래 님의「산토끼」가 비로 서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만들어진지 오래되어 보이는 흔적이 마음을 포근하게 끌어안아주는 듯 상기된 시간이었다.

 

 

 

 

 

 

 

 

 

 

 

 

 

 

 

 

 

 

 다시 일행은 입구에 돌에 새긴「시가 있는 거리」비가 기다리는 국립 3 · 15 민주묘지로 올라갔다. 이곳 시비는 315와 연관된 내용의 시를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이곳은 모두 4개 묘역에 80위를 안장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으며, 2006년 5월 현재 26위가 안장되어 있다. 안장대상은 3·15의거 때 사망자와 3·15의거 때 부상당한 뒤 사망한자, 3·15의거 유공건국포장 수상자로서 사망한자 등이다. 위에 오르면 315의거 기년시비가 서있었는데 병풍처럼 세운 돌로 깎은 책갈피마다 시가 새겨져있었다. 김춘수, 김태흥, 정공채, 김용호, 이석, 김세익, 정영태, 조정남 시인 등의 시가 보인다.

 그 앞 발치엔 조각가 김동숙 님이 만든「역사의 장」이란 조각은 투쟁하던 어느 학생의 모습이 열어놓은 책자 좌우측에 양각,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교모 옆에 누어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처한 절은 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숙연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정병산 깊은 자락에 농장 운영을 하시며「아리랑 움막」안에 낙월전시관과 집필실로 쓰고 있는 공정식 시인의 초대로 찾게 되었다. 번잡한 도심을 잠시 떠나 산새소리, 이름 모를 들꽃들에 묻혀 사셨다. 점심식사 대접을 하신다면서 고기를 삶아 안주삼아 술 한 잔을 내놓으셨다. 일행은 안으로 들어가 방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 출구가 있는 그 곳은 보물이 잔뜩 들어 있었다. 정성이 깃든 병풍 글씨, 인내를 요하는 한 글자를 빽빽하게 적어 넣기 등으로 만든 작품들이었다. 그리고 그의 생활철학이 밴 삶의 체험담을 듣는 동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돌아오는 길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을 해주셨다. 더구나 인근 관장님의 도움을 얻어주어 마산역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게 배려해주셨다. 1박 2일의 일정이 길게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빈 가슴에 많은 선물을 받아들고 나서는 고향집만 같았다. 문학의 진정한 색깔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아무런 이해타산이 없이 순수하게 맞아준 김병수 회장님과 박희익 시인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행사하던 날부터 다음날까지 시간을 아끼지 않고 마음 쓴 배종애 사무국장님과 공정식 시인께도 감사드린다. 또한 항상 좋은 말씀을 잊지 않고 들려주신 이수화 선생님과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하고 마무리될 때 까지 인솔해 앞장서주신 윤지훈 (사)세계문인협회 사무총장님, 그리고 함께한 일행 여러분께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