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활칼럼

급변하는 문화의 홍수 속에서

급변하는 문화의 홍수 속에서


                                                                                                                                           윤 제 철


 사람들이 살아온 모양이나 방법을 돌이켜 보면 상당한 시간을 두고 답습을 해오다 새로운 것으로 바뀌어 쓰면 먼저 쓰던 것은 자연스럽게 없어지곤 하였다. 불편이 없으면 바꾸지 않고 그냥 쓰려고 애썼던 것이 관습이었다. 역사를 통하여 살아온 생활의 흔적을 보아도 짐작하고 남는다.

 돌이나 나무를 도구로 쓰기 시작하다가 불을 발견하였고 쇠붙이를 쓰면서 농기구와 무기의 발달이 가져온 생활의 변화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손으로 만들던 필수품들을 기계로 만들게 되면서 대량 생산의 기틀이 되었고 문화의 발전에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

 전기의 발명이 동력과 통신, 그리고 교통수단으로 사용되면서 더욱더 박차를 가하였고 세상은 좁아졌다. 경제의 발전과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 생활이 편리하게 되었고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지경이 되었다.

 이에 만족하지 않은 사람들은 컴퓨터의 출현으로 정보에 대한 경쟁시대에 돌입하였다. 사람들이 해결했던 일까지 기계가 처리하는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를 잊고 쉬운 일만 찾아하려는 풍조가 팽배하였고 일하는 것 보다는 즐기는 방향으로 의식구조가 바뀌었다.

 특히 부모들의 어려운 시절을 자녀들에게는 겪지 않게 하겠다는 의도에서 원하는 걸 모두  받아들여 과잉보호식으로 기를 살려준다는 것이 정도가 지나쳐 핵가족시대와 맞물려 버릇은 없어지고 위계질서가 물란 해졌다. 한참 자라야할 어린 나이에 알아서는 안 될 것까지 인터넷을 통하여 부모들 몰래 알아버리는 것은 물론 흥미 위주의 게임 등에 몰두하여 건강이나 정서, 그리고 학습에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다. 성적인 문제에 심각성은 말로 포현하기 힘들 지경이다. 성장과정에 따라 단계적으로 지도되어야할 단계가 야한 동영상을 보고 알아버리는 바람에 무너져 버렸다.

 사회적인 행동을 해야 할 청소년들은 개인적으로 생활하고 마는 상황이 되었다. 진학에 대한 준비 때문에 사교육에 치중하여 또래끼리 어울릴 시간도 모자랄 뿐만 아니라 엠피쓰리나 그밖에 개인별로 즐길 수 있는 기구의 남용으로 혼자서도 불편 없이 일상을 즐길 수 있다는 데서 오는 후유증이다. 결국 직장이나 어떤 단체활동에 적응하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는 현상을 보게 된다. 그야말로 자기 자신만의 존재의식을 추구하는 이기주의를 만나게 되었다. 공동생활을 위한 양보나 배려를 잊어버린지 오래되었다. 

 거기에다 인격을 존중해야한다는 명분 아래 학교에서 채벌을 금지한다는 감독기관에서의 선언이 학생들에게 역이용되어 지도를 해야 하는 교육 일선 교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발이라는 무기를 들고 맞서서 말을 들으려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감정을 앞세운 몽둥이의 개념이 아니라 잘못을 깨우치는 가르침과 함께 다시 반복해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다짐의 차원에서 사랑의 매로써 이용되련만 가당치 않은 말이 되었다.  

 급변하는 문화의 홍수 속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보수와 새롭게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 사이에 절충점을 찾아 밀고 당기는 과정을 거쳐 정책을 도입하는 모습으로 되풀이 되어 왔고, 문화는 그와 어우러져 춤을 추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점차적으로 조율에 어려움은 커져만 가고 의식수준의 향상으로 곤란은 가중되고 있다. 나보다는 남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가짐에서부터 재고 되어야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